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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시리즈 종영에 부쳐(1)
2002-09-19

안녕! 세기말의 아이콘이여

※ 옛날이 아닌 현재, 미국의 연방수사국 지하실에는 외계인과 돌연변이, UFO를 쫓는 부서가 있고, 이들은 외부에 좀처럼 새어나가지 않는 기밀을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 부서는 기이한 현상을 잘 믿는 요원과 잘 믿지 않는 요원 둘이서 늘 툭탁대면서 아직도 운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X파일>은 확실히 <전설의 고향>같은 괴기성 드라마로 시작했다. 들으면 코웃음칠 내용. 외계인, 돌연변이, 귀신, 주술. 그러나 X파일 사건들은 황당한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있을 법했다. 비현실적, 혹은 의사과학적인 내용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두 FBI 요원의 모험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인식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지금이야 상상이 안 가지만 처음 나올 당시, 박봉에 걸맞은 조촐한 옷차림과 외모에서 그다지 튀지 않는 두 수사관의 모습은 리얼리티 그 자체였다.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에도 나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도저히 주인공이라고 믿을 수 없는 요원들이 수사하는 상황 상황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사건진행은 제대로 된 설명도 불가능한 데다가 심지어 사건 결말을 흐리거나 폐기하기까지 했다. 시청자들은 화면과 대사 군데군데에 포진해 있는 암시를 통해서 정보를 얻어야 했고, 심지어 해석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해석을 하기 위해 인터넷과 PC 통신으로 모여들었고, 한 드라마 아래 모인 TV 시청자들의 움직임은 한 시대를 드러낼 만한 힘을 갖게 되었다.

컬트의 모든 것

드라마 <X파일>은 우연에 우연이 겹쳐 만들어낸 필연적 기적이다. 컬트는 말 그대로 컬트일 때는 살아남지 못하고 단명하는 법이다. 주류가 컬트라고 인식할 정도의 일정 규모가 모여야하고, 지속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작품성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훌륭한 제작진과 배우가 있어야 했다. <X파일>은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의 조류를 파악할 줄 아는 훌륭한 작가진, 뜻이 맞는 제작진, 훈련된 감독진, 능숙한 배우진, 그리고 이들을 알아 볼 안목을 갖춘 팬, 이 팬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회.

‘담배피우는 남자’ 역의 윌리엄 데이비스는 <X파일>을 가리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패턴이 바뀌는 순간에 존재하면서 양쪽을 만족시키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X파일의 다스베이더에 걸맞는 명쾌한 분석력이다. 인터넷 세대는 인쇄매체라는 ‘권위적이고 일방통행적인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근거는 부족해도 개방적인 매체’ 모두에 익숙한 존재였다. 일반적 지식을 거스르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권위성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세대였다. 근거부족이라 주장해도 진실은 은폐할 수 없고 존재한다.

그러나 진실의 존재 의의에 비해 주인공이라고 하는 멀더와 스컬리는 죽도록 고생을 하고서도 얻는 것은 없고 상처투성이로 남겨진다. 팬들은 주인공들의 댓가 없는 진리추구에 현대인의 절망감이란 면에서 공감을 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는 혹은 존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에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허구라고 생각하고 도외시해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위협한다고 해서 순순히 굴복하지 않는 존재, 멀더와 스컬리 자체가 진리를 향한 빛이 되었다.

<X파일>이 놀라운 점은, 시대를 반영하고 소화했을 뿐더러, 그 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색깔을 유지할 방법을 알았다는 점이다. 90년대 초반까지도 TV시리즈는 좀 유치해도 되는 종류였다. 아무리 뛰어나봤자 TV시리즈였으며, 즐기는 사람들조차 저급하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X파일>은 그 암묵성을 깨 버렸다. TV는 영화보다 못할 이유가 없었다. TV 시청자들은 일회성이 아닌 정기적인 지적 유희를, 탐구심을 넘어선 숭배대상을 만나게 되었다. 초기에 <X파일>이 불러일으킨 ‘그거냐 아니냐’의 논쟁은 녹록치가 않았다. 깊이를 요구했다. TV 주제에 지성과 과학을 요구했다. 초반부터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의사과학 혹은 자연과학적인 해석을 동원해야 했다. 또한 <X파일>이 외적으로 보여주는 현상- 컬트적 인기, 90년대 반영 등의 사회과학적 논쟁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적 설명이나 초자연에 대한 지식은 점점 ‘X파일이니까 그렇지’의 관습으로 굳어가면서 논쟁도 바닥이 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X파일>에게는 예상치 못하던 면이 있었다. <X파일>은 한마디로, 드라마의 작품성이 너무나 뛰어났다. 그냥 TV이기를 거부했다. 주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TV계의 아카데미, 에미상도 TV계의 이단아 <X파일>의 작품성만은 무시할 수는 없었다. <X파일>은 세 번째 시즌에서 에미상을, 네 번째 시즌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함으로서 드라마적 실력을 인정받았다. 여느 영화도 못 따라갈 자기반영적인 에피소드를 내놓는가 하면, 어떤 안건에 대해서 정치적 해석을 열어 놓고, 치밀한 인간상의 모습을 드라마 안에 녹여 놓는 솜씨는 천의무봉이었다. 그렇게 되어 <X파일>을 둘러싼 토론은 끝나지 않고 드라마 자체를 해석하는 ‘인문과학’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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