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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학 판> 출판잔치를 가다
2002-09-19

문학판과 뒤풀이판

‘만남이 기적을 낳는다’는 종교적이지만 ‘오래 살고 볼 일이다’는 생활의 지혜고, ‘만나봐야 안다’는 것은 엄정한 과학적 진리다. 이인성이 <식물성의 저항>을 열림원출판사에서 펴냈을 때만 해도 나는 좀 뜨아했었다.

이인성의 산문이 소설에 비해 제법 읽기가 수월키는 하지만, 열림원은 돈과 친한 ‘보드라운’ 출판의 대명사요 이인성은 어렵기로, 독자를 학대하기로 ‘작정한’(?) 소설의 대가 아닌가. 그런데, 계간 <문학 판>의 발행인과 편집인(이란 말도 사실 이인성에게는 안 어울린다)으로 술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마주앉으니 열림원 대표 정중모의 우람하고 잘생기고 푸짐한 의리가 그렇게 ‘정중’할 수 없고 이인성의 예리하게 각진, 잘생겼다고는 할 수 없으나 어쨌든 ‘유미주의적’인 외모가 그토록 자상한 ‘인성’을 발하는 것이 또한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편집위원을 보면 김예림은 얼굴이 아버지 김병익(문학평론가)을 빼다 박았는데, 놀랍게도 너무 여성적이라 유전학적 고찰을 요할 정도고, 박철화(문학평론가), 성기완(시인), 함성호(시인)는 각각 한국문학의 한 첨단영역을 개척한 개성파들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고려식, 조선식, 해방정국식으로 ‘머슴살려고’ 작정한 태도지만, 이들을 대충 만만히 보려다가 팀장 양선희와 눈이 마주치면 깜작깜짝 놀라게 된다. 마감날짜 되면 어김없이 성실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전화를 걸어 ‘원고 다 되셨지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다는 듯 ‘문의’를 하는데 시작도 안 한 처지로서는 그만한 협박이 없다.

어쨌거나,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 겨우 빚을 갚은 만큼 더욱 흡족한 마음으로 3개월에 한번씩 술을 마시다보니 처음에는 다소 ‘민폐’스러웠지만 4번째에 이르러 문학하는 친구들과는 3개월에 한번 정도 만나는 게 적당할 듯싶고 활발한 계간지들이 문학의 만남을 그렇게 규정했는지 원래 그 정도가 적당해서 계간지들이 활발해지게 된 건지 생각하면 어지로운 채로 즐겁다.

4번째 <문학 판> 잔치는 한정식집 ‘도초’의 예약석을 넘칠 정도로 필자들이 성황을 이루었다. 그렇게 ‘유서깊을’ 문학잔치 하나가 생겨난 듯하다. 1차 음식과 술값, 그리고 2차 노래값과 술값은 으레 그렇듯 정중모가 냈고 몸이 약한 이인성이 귀가했으니 젊은 실업자들 술값은 내 차지였다. 내가 더 먹자고 우겼으니(나는 항상 이게 문제다) 억울할 것도 없다.

젊은 날에는 공짜로 얻어먹는 술이 그렇게 귀하고 맛이었다. 모든 계간지들이 계간 ‘잔치’를 벌이면 안 되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