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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가 꼽은 걸작 공포,추리소설 10편(1)
2002-09-19

얼굴 없는 살인,마음 없는 살인자

<검은 집>기시 유스케 지음/ 창해 펴냄

'이 사람에게는 마음이 없다!' 정말로 연쇄 살인마에게는 마음이 없는 것일까?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즉 마음이 없는 인간. 그들은 머리 한번 쓰다듬는 것처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인다.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에 등장하는 '마음이 없는' 연쇄살인마는 한니발 렉터처럼 개인적인 결단이나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게 아니다. 소설 속 인물인 범죄학자 가나이시의 말을 빌리자면 마음이 없는 자는 새로운 종, 일종의 돌연변이다. '우연히 인간과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게 된 다른 종류의 생물'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생명보험회사에서 일하는 신지는 보험계약자의 부탁으로 '검은 집'에 찾아간다. 불길한 분위기가 감도는 검은 집에서 신지는 목을 매단 어린 소년의 시체를 본다. 경찰은 자살로 판정했지만 신지는 의붓아버지를 의심한다. 함께 아들의 시체를 목격했을 때, 그 묘한 눈초리와 이상한 행동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수사하는 동안 보험금 지급을 미루던 신지는 이상한 협박에 시달리게 된다. 신지는 자신이 엄청난 '어둠'과 맞닥뜨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 보험금이 지급되고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검은 집'의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일본에서 공포소설 대상을 받은, 끔찍한 공포가 밀려오는 작품이다.

<백야행>히가시노 게이고 지음/태동출판사

오사카의 한 낡은 건물에서 전당포 주인 기리하라 요스케가 살해된다. 경찰은 기리하라가 치근덕거리던 중년 여인 후미요를 의심한다. 술집을 경영하는 후미요에게는 애인도 있다. 그러나 수사망을 좁혀가던 중 후미요는 자살하고, 애인은 사고사한다. 사건은 어떤 의혹도 남지 않고 무난하게 마무리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진짜 '역사'가 시작된 것은 그 순간이다. 완전범죄를 성공적으로 치른 요스케의 아들 료지와 후미요의 딸 유키호의 '백야행'은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다. <백야행>은 추리 소설이지만, 어떤 사건의 범인을 추적해 가는 스타일은 아니다. 이미 범인은 알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치밀하고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다. <백야행>은 과정에 주목한다. 담담하게 쫓아간다. 그 범죄들의 이유를 구태여 찾는다면 '사랑'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그리고 모든 이들을 파멸로 몰아가는 지독한 사랑. 그 사랑에 매혹되고, 또 소름 끼쳐 하면서 20년을 뒤따라가다가 "줄곧 나는 하얀 어둠 속을 걸어왔어. 태양 아래서 걸어보는 게 내 유일한 소망이야"라는 탄식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은 뒤집혀 버리고 <백야행>의 어둠에 짙은 슬픔이 배어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아웃>기리노 나츠오 지음/

중년 여인 네 명이 토막 살인을 한다. 아니 살인을 하고 시체를 토막낸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 여자가 살인을 하고, 다른 세 여자가 토막을 낸다. 거기에 연루된 위험한 남자 하나가 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야요이는 도박과 여자에 미친 남편을 우발적으로 죽인다. 야요이는 도시락 공장에서 친하게 지내는 가토리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한다. 가토리는 다른 동료 둘과 함께 토막을 낸다. 큰 이유는 없다. 일종의 동질감이다. 가토리는 적막하게 자신의 삶을 유지해 가는 43살의 주부다. 남편은, 세상은 물론 그녀와 아들에게까지 문을 닫고 지낸다.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아들은 반항적으로 그녀의 금 밖에서 맴돈다. 가토리에게는 절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냥 일상을 견디어 나갈 뿐이다. 거기에 '토막살인'이라는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고, 일상을 지탱하던 아주 가늘고 희미한 선이 끊겨버린다.

여성 작가가 쓴 여성 소설답게, <아웃>의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 자신의 원칙을 지키며 집단 이기주의를 거부한 가토리는 젊음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에서도 외면당한다. 버림받은 가토리를, 기리노 나츠오는 정말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녀 마음 속의 어둠을 그릴 때 기리노 나츠오의 시선은 부드러워지고, 그녀와 함께 분노한다. 또한 세상에서 '아웃'당한 사람들의 절박하면서도 담담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지옥과, 그들이 빨려드는 '죽음에 이르는 섹스'의 박진감 넘치는 묘사는 인상적이다.

<게놈 해저드>쓰카사키 시로 지음/ 프리즘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죽지 않고, 나의 존재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을까. <게놈 해저드>의 출발은 초현실주의적인 사건이다. 아내의 생일, 밤늦게 집에 돌아가자 거실에는 17개의 촛불이 켜져 있다. 바닥에는 피를 흘리는 아내의 시체.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당신이야. 나 지금 친정에 있어.' 명랑한 아내의 목소리가 머리 속을 관통한다. 현관 벨이 울리고, 경찰이라는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친다. 도리야마 도시하루는 정신없이 도망다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계속된다. 자신이 기억하는 집주소에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있고, 친정이라고 믿었던 곳에는 그런 이름의 가족이 없다. 일러스트레이터인 도리야마는 갑자기 어려운 화학식을 줄줄이 외고, 영문 잡지까지 능숙하게 읽어낸다. 나는 누구지? 대체 나란 인간은 누구일까? 아니 나라고 믿었던 도리야마 도시하루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게놈 해저드>는 '불로불사'를 둘러싼 수수께끼와 추적과 반전이다. 트릭과 필사적인 도주는 숨이 가쁠 만큼 긴박하지만, 결코 서두르지는 않는다. 사실 불로불사라는 개념도 <게놈 해저드>에서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게놈 해저드>가 역점을 두는 부분은 주인공의 절박하고, 허탈하고, 씁쓸한 마음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주인공의 혼돈과 독특한 개성의 주변 인물들의 심정을 생생하게 울리게 하는 탁월한 문장력이 돋보인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결말을 읽으면 쉽사리 책을 덮을 수 없다

<브라운 신부>G, K. 체스터튼/북하우스/전 5권

추리소설 복고 열풍에 힘입어 출간된 고전 추리 소설의 걸작. 캐드펠 시리즈보다 한발 앞서 '성직자' 탐정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여 기발하고 유머러스한 사건들을 놀라운 추리력으로 풀어낸다. 브라운 신부의 능력은 홈즈나 포와로에 뒤지지 않는다. 다만 브라운 신부는 자신을 내세울 줄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외모에서는 별로 비상한 데가 없다. 혹자는 에스패닉으로 착각할 정도로 까무잡잡하고 못생겼으며, 통통하고 키도 작다. 잔인무도한 범죄자들에게 대항하는 탐정의 면모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브라운 신부의 그런 용모는 오히려 범죄자들을 방심하게 만든다. 절대로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적수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브라운 신부는 편견과 선입견에 미혹되지 않는 맑은 눈과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브라운 신부는 거의 직관적으로 사건의 본질까지 한순간에 파고 들어간다. 브라운 신부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은 수십 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지금 읽어도 정갈한 느낌이 든다. 단편에 걸맞게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에 반전과 아이러니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명작이다.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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