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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컴퓨터 VS 퍼스널 컴퓨터,<프릭 스타일>
2002-09-25

컴퓨터 게임

처음 등장하던 시절에는 컴퓨터가 그리 개인적인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50년대에 이미 수백만 달러를 호가했던 컴퓨터는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할 정도로 덩치는 커 가지고, 일반인은 접근할 수 없는 대학 연구실에 자리잡고 공식 출입 허가증을 가진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가까이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후에야 ‘퍼스널’ 컴퓨터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그리고 또 30년이 지난 지금, PC는 이름 그대로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 노릇을 하고 있다. 아직도 여전히 업무 이외의 용도로 PC를 사용하는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대부분 인터넷과 게임이다. 새로 나온 게임을 해보려는 게 아니라면 산지 일, 이 년밖에 안 된 컴퓨터의 램이나 비디오 카드를 업그레이드할 필요는 사실상 없다.

PC가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게임기 제작사인 닌텐도는 자사 최초의 본격적 게임기를 출시했다. 이 게임기에는 ‘패밀리 컴퓨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인이 자신의 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온가족이 거실로 나와 TV 앞에 모여앉아 즐기자는 게 닌텐도가 밀어붙인 이미지였다. 닌텐도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세가와 소니가 차례로 참여해 비디오 게임의 전성 시대가 열렸다. 흥미롭게도 PC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비디오 게임에 참여하기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퍼스널’과 ‘패밀리’라는 슬로건은 PC와 비디오 게임의 차이를 정확하게 집어낸다. TV는 대개 거실이나 안방에 있다. 그리고 아무리 작은 TV라도 게이머와 화면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게임을 시작할 때는 앉아 있지만 점점 눕게 된다. 배 위에 게임 패드를 올려놓고 손이 닿는 위치에 과자 봉지를 놓는다. 그 앞으로 쉴새 없이 사람들이 오고 간다. 빨래 걷으러 가는 어머니 때문에 화면이 가려서 목을 길게 빼야 할 일이 생기고 게임하다 말고 심부름을 다녀오는 일도 심심찮게 있다. 비디오 게임은 이른바 ‘파티 게임’이 많다. <컬드 셉트> 같은 여럿이 하는 보드 게임이 발달해 있고, <프릭 스타일>이나 <진삼국무쌍>처럼 구경꾼이 더 흥분하는 게임이 많다.

반면 PC는 방에 있고, 모니터가 게이머 코 앞에 붙어있다. 의자를 바짝 당기고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 위에 손을 똑바로 올려놓고 게임을 한다. 게임 패드나 스틱을 동원해 봤자 기껏해야 책상에 다리 올려 놓을 정도의 여유밖에 더 생기지 않는다. 식구들이 들어왔다가도 같이 구경하기는커녕 게임에 빠져 있는 모습에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하고 도로 나가 문을 닫게 된다.

비디오 게임기는 생활 속으로 들어간다. 반면 PC 게임은 생활로부터 게이머를 분리시킨다. 그렇다고 어느 게 더 좋다고 얘기하기는 곤란하다. 게임 커뮤니티에서 비디오 게임이 좋으냐, PC 게임이 좋으냐는 싸움이 잊을 만 하면 끈질기게 일어난다. 게임이란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입장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두의 골프> 같은 게임이라면 여럿이 왁자지껄 하는 비디오 게임기 쪽이 좋을 것이지만 <플레인 스케이프> 같은 사색적인 롤 플레잉 게임이라면 파리 잡겠다고 화면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강아지가 없는 편이 나을 것이다. 둘 사이를 오고 가는데 곤란한 점이라면, 어렸을 때 게임할까봐 PC를 안 사주던 부모가 있었다면, 어른이 된 후에는 게임은 PC로 하면 되는데 뭣하러 게임기까지 사려고 하냐는 친구가 있다는 것뿐이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