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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불온한’ 젊은 피 - 프랑수아 오종 영화제
2002-09-30

프랑수아 오종 영화제 10월3일부터 17일까지 하이퍼텍 나다에서프랑스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젊은 작가영화가 한국을 찾는다. 10월3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프랑수아 오종의 장편과 중편, 초기 단편들을 모아 프랑수아 오종 영화제를 연다. 오종은 카트린 드뇌브와 에마뉘엘 베아르, 버지니 르도엥, 이자벨 위페르 등 프랑스의 A급 여배우들을 기용한 <여덟 명의 여자들>로 화제를 모은 서른다섯의 젊은 감독. 한국에선 아직 낯설지만 국제영화제를 통해 단편영화 시절부터 일찌감치 주목을 끌었다. 1967년 파리에서 태어난 오종은 파리 제1대학에서 영화과 학사학위를 취득한 뒤 명문 페미스에서 영화를 공부한 엘리트다. 10대 시절부터 슈퍼 8mm카메라를 사용할 줄 알았던 오종은 <어떤 죽음> <썸머 드레스> 같은 단편들로 칸과 로카르노영화제 등을 두루 섭렵했지만, 그 주제와 형식은 프랑스영화 중심에 선 스스로의 전통으로부터 몇 발자국쯤 떨어진 것이었다. <사이트 앤 사운드>가 평한 대로라면 오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물 같은 성(性)적 긴장과 루이스 브뉘엘의 얼음장 같은 회의, 중산층을 조롱하는 존 워터스의 악취미에 뿌리를 내린 감독이었다. 금기는 쳐다보지도 않는 듯 자유롭게 성생활을 탐색했던 오종은 한편으로 이해 못할 본능이 부르는 범죄에 주목했으며, 단단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삶 이면의 균열을 불러내는 데 능숙했다. 찬성과 반대가 격렬하게 엇갈리는 첫 번째 장편영화 <시트콤>을 건너, 좀더 많은 이들과 공감한 <사랑의 추억>에 착륙한 오종. 98년부터 장편작업을 시작한 그는 파스빈더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아내며, 침착해진 자신의 영화와는 반대로 빠르게 골목길을 질주하는 듯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 상영되는 영화 중 <시트콤>은 오종의 첫 번째 장편이면서 파졸리니의 우화 <테오레마>를 닮은 기묘한 작품이기도 하다. 엘렌은 교외에 사는 부유한 프랑스 가정의 주부다. 완벽한 가정을 꾸려가며 자족하던 그녀는 남편이 실험용 흰쥐를 집안에 가지고 들어오면서 파란에 휩싸인다. 영리한 아들 니콜라는 자신이 게이라며 커밍아웃하고, 매혹적인 딸 소피는 갑자기 2층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되고 만다. 남편은 가족들 내부에 들끓고 있던 욕망이 뛰쳐나오는 이 아수라장 앞에서도 그저 무심할 뿐이다. <시트콤>은 중산층 가정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찬사와 함께 재능있는 젊은이가 길을 잃었다는 혹평을 동시에 받은 작품. 그러나 실망을 감추지 않은 <사이트 앤 사운드>도 오종이 뛰어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는 점만은 높이 샀다.<크리미널 러버>는 오종의 짧은 경력 중에서도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헨젤과 그레텔>을 현대적인 분위기로 각색한 듯한 영화. 사건의 원인과 결과, 과정, 그 틈새에 도사린 공허한 욕구를 뒤섞은 이 영화는 형식적으로 서툴면서도 타고난 반항의 에너지가 관객을 자극할 만하다. 시골 고등학교에 다니는 앨리스는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성적으로 불능에 가까운 동급생 뤽을 이용해 아름다운 권투선수 새드를 살해한다. 새드는 앨리스와 섹스하고 싶어하던, 그녀 역시 이끌리고 있던 소년. 앨리스와 뤽은 난자당한 새드의 시체를 묻기 위해 숲을 찾지만, 숲 속에 혼자 사는 사냥꾼에게 생포당해 공포와 수치의 생지옥을 경험한다.오종이 조금씩 일치된 평가를 얻어내기 시작한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은 중산층의 권태와 그 권태가 잉태한 파멸을 다룬다는 점에서 전작들과 비슷한 영화다. 그러나 냉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시선만은 이전보다 한층 성숙한 자의식을 드러낸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스무살의 미소년 프란츠와 쉰살의 남자 레오폴드, 그 각각의 옛 연인들이 뒤엉켜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이 한 발자국 떨어진 관찰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영화. 애정이 억압이 되는 아이러니를 파스빈더가 열아홉살 때 쓴 극본의 토대 위에 차갑게 얹어놓았다.

<사랑의 추억>은 박스오피스에서 크게 성공한 <여덟 명의 여자들> 직전의 작품으로, 저예산영화임에도 불구하고 60만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 수확을 거뒀다. 겉으로 보기에 한점 티끌도 없어 보이는 마리와 장 부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찾은 바닷가에서 장이 실종된 뒤, 마리는 별다른 동요없이 파리로 돌아온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생활을 보내지만 장은 어둠 속에 가라앉은 아파트 안에서만 모습을 드러낸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시선과 뜻모를 위안을 받던 마리는 어느 날, 장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바닷가 경찰서의 전화를 받는다.<사랑의 추억>은 남편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는 중산층 여인의 고집이 물리적으로 공간적으로 힘을 얻어 주변을 장악하는, 슬프면서도 섬뜩한 그림자를 밟아간다. 구태여 설명하지도 결말을 맺지도 않는 한 사람의 내면 그 자체. <사랑의 추억>은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은 오종의 여백을 보여주는 듯 텅 빈 겨울철 모래사장에서 끝을 맺는다. 권선징악의 믿음을 뒤집는 충격적인 중편 <바다를 보라>와 장편의 시초를 발견할 수 있는 단편모음 역시 오종의 불온한 영화세계를 탐색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기초코스다(문의: 동숭아트센터 02-3672-0181).김현정 para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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