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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 신보 <A Rush Of Blood To The Head>
2002-10-07

나긋하게,장엄하게

지구를 지켜라! 거창한 외침이 들려온다. 한데 이게 웬일. 정작 지구 수호의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는 주인공 병구 역의 신하균은 양봉할 때 쓰는 모자를 쓴 채 꿀병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꿀이 외계인의 침략을 막는 비밀병기인가 하면, 이것도 완전히 헛다리 짚는 얘기다.

강원도 영월군 함백산 웃자락에 차려진 <지구를 지켜라!>의 촬영장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답게 늦여름 햇살만으론 시린 팔뚝을 가리기 어려운 곳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쳐들어온다고 믿고 있는 병구가 외계인으로 의심되는 강 사장(백윤식)을 납치한 뒤 벌이는 소동을 담는 블랙코미디. 영화의 주배경인 이곳에는 1억2천만원을 들였다는 병구네 집 세트가 지어져 있었고, 벌통 50여개도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 이날 촬영분은 강 사장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는 추 형사(이재용)가 병구를 의심하면서 대결을 펼치는 내용.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추 형사를 제거해야 하는 병구가 선택한 무기는 바로 꿀이다. 병구가 뿌린 꿀을 얼굴에 뒤집어쓴 추 형사는 벌떼들의 습격에 놀라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단편영화 을 통해 자신을 존 레넌이라고 착각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 장준환 감독은 장편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비슷한 망상을 가진 사내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황당한 상상력은 전작과 닮은꼴이지만,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재 60% 이상 촬영한 이 영화는 10월 하순 크랭크업해 컴퓨터그래픽 등 후반작업을 거쳐 2003년 초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글 문석 ssoony@hani.co.kr

♣ 탕! 탕! 탕! 추 형사가 날린 총탄을 피해, 병구가 벌꿀통 사이로 날렵하게 피한다. 신하균은 “병구라는 캐릭터는 한신 안에서도 감정이 자주 바뀌어야 한다는 게 어렵긴 하지만, 어둡거나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점에서 내가 원래 좋아하는 정서의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아, 그래서 지구를 지킨다는 거예요, 뭐예요?”라는 질문에 장준환 감독은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예의 어눌한 말투로 “그거 가르쳐주면 마케팅팀한테 혼나요”라며 도망을 친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는 휴대폰도 새근새근 잠재울 정도의 첩첩산중, 해발 1000m 고지에 차려진 병구네 집 세트는 촬영장이라기보다 실제 산골 오두막 같은 인상을 줬다.

♣ 벌의 ‘조련’을 맡은 스탭들은 시종 바쁘다. 수백 마리의 벌 중 얌전해 보이는 놈을 골라 침을 발라가며 벌침을 뽑으랴, 이재용의 얼굴에 수십 마리의 벌을 붙이랴, 살아 있는 벌의 뒷정리까지, 벌 서는 느낌 아니었을지.♣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병구집 세트엔 1억2천만원이 들었다. ‘돈값’을 하는 건지, 다행히 지난 수해에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겉보기와 달리 내부까지 실제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다.♣ <친구>와 소주 CF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재용은 꿀벌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이는 고난도(?)의 연기를 펼쳐야 했다. 안전을 위해 스탭들이 벌침을 일일이 핀셋으로 뽑았건만, 야무진 벌에게 한방 쏘인 그는 아픔을 꾹 참은 채 연기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