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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형식의 코미디 <YMCA야구단>의 장점과 한계
2002-10-10

왜 직구로만 승부하나

<YMCA야구단>(감독 김현석)은 보기 전의 기대와 보고 난 느낌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영화다. 영화가 뒤집어지도록 웃길 거라는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한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장르를 규정하자면 단순 코미디라기보다 표준적인 극영화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요컨대 생각보단 덜 코미디인 대신 기품있고 독창적이라는 것이 <YMCA야구단>을 보고 난 첫 번째 소감이었다.

이 영화가 택한 위와 같은 입지는 여러모로 진귀한 자리다. 그것은 우선 충무로 혹은 한국영화계의 자의식 분열상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계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같은 괴담이 하나 떠돈다. 내용인즉 1∼2년 안에 영화산업의 IMF가 닥칠 거라는 전망이다. 이는 아마도 급팽창한 영화산업의 규모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는 기대와 과연 쉽게 지켜질까라는 불안심리의 틈새에서 태어나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년의 흥행작들이 주로 조폭영화 계열이라는 데서 조금 더 꼬인다. 흥행작들을 안정적으로 내놓아야 할 필요성은 절실한데 하필 조폭들이 영화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다니! 양식있는 영화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씁쓸한 딜레마가 바로 이것이다. 최근에는 제작비 회수율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블록버스터의 흥행 참패를 잇따라 겪으면서 위기지수가 조금 더 높아졌다.

이때에 불끈 뛰어나선 저 선비를 보라! 동글넓적한 얼굴과 밤톨처럼 깎은 머리에 아래로는 면으로 만든 다소 후줄근해 보이는 도포를 떨쳐 입고 45도 각도로 돌아서서 소나무 야구방망이를 땅에 짚고는 ‘내가 요런 거 하고 있을 줄 몰랐지?’라고 묻는 듯한 저 환한 미소! 아, 정녕 그는 한국 영화산업의 조울증을 치료해줄 진정한 4번타자가 될 것인가?(이 대목은 영화 속 하일송(임현식)의 목소리로 읽어주시기 바란다)

이호창(송강호)이 타고난 4번타자로서 게임을 승리로 이끌 운명이었던 것처럼 <YMCA야구단> 또한 성공을 예고하는 몇 가지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이호창과 민정림(김혜수)을 비롯한 영화 속 ‘Y팀’이 20세기 조선 관객의 희망을 꿰뚫고 있는 것처럼, 김현석 감독과 심재명 제작자를 비롯한 영화 밖 Y팀 또한 21세기 한국 관객이 기대하는 바를 잘 아는 선수들이다. 흥행영화의 공식이 익숙함과 새로움의 적절한 조합이라고 한다면, <YMCA야구단>은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

첫 번째 소감 - 소재와 시대적 배경이 새롭다

<YMCA야구단>은 소재와 시대적 배경에서 새롭다. 근년의 한국영화가 손대기를 꺼려하는 스포츠영화와 사극이라는 주변부로 과감히 치고 들어가 매끈한 주류 상업영화를 이끌어낸 이들의 솜씨는 향후 한국영화에 적잖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좀더 다양한 도전을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멜로 코드에 기반을 둔 뚜렷한 줄거리와 코믹 터치는 한국영화 부동의 흥행 공식이다. 거기에 감동까지 얹어낼 수 있으면 게임 끝. 21세기의 Y팀은 20세기 Y팀 이야기를 이런 작업 원칙에 따라 매만졌다. 송강호는 여기에 믿음직한 안전판이 되어준다. 아마도 시나리오에 “공을 태화관 마당에 일부러 차넣은 뒤 야구하는 선교사들을 찾는 호창”, “들켜서 당황하는 호창”, “정림이 주는 마패를 애정의 표시로 오인하는 호창” 이런 식으로 한줄씩 적혀 있음직한 장면들 속에서 그는 매번 영화의 톤과 어울리는 개성적인 코믹 연기를 엮어낸다.

전체 이야기와 장면에 군더더기도 없는 편이다. 하모니카나 학, 마패와 같은 복선과 비유, 카메라의 지시 기능과 대사를 번갈아 활용한 설명 등의 기본기를 통해서 복잡한 시대를 배경으로 적잖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이끌어간다.

하나의 장면을 예로 들면, 전차 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운드와 함께 손잡이를 꽉 붙잡고 있는 노인의 손이 클로즈업 되는 첫 번째 숏이 보여진다. 카메라가 손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호창의 아버지(신구) 얼굴이 나타나고 옆에 탄 친구가 “자네 아직도 어지러운가”라고 묻는다. 하지만 깐깐한 전통 선비풍의 호창 아버지는 결코 어지러운 표정을 드러내보이지 않는다. 곧이어 야구하는 조무래기들이 그의 시점 숏으로 보여진다. 신식 학교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새로운 풍조라는 설명을 들은 그는 “쌍것들”이라는 한마디를 툭 내뱉는다.

전주영상위원회의 도움과 함께 1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다는 종로통 전차장면이 바로 이것인데, 전차와 야구, 사진, 영화 등 일본이나 서양을 통해 들어온 근대의 모든 것들에 대하여 어지럼증과 당혹, 매혹과 경멸을 동시에 느꼈을 당대 조선 사람들의 심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앞으로 벌어질 호창과 호창 아버지의 갈등을 예고하는 복선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YMCA야구단>은 코미디로 보기엔 기품있는 정극 냄새가 나고, 사극으로 보기엔 새로운 소재와 가벼운 감성을 담은 영화가 되었다. 아마도 야구라는 주재료를 송송 썰어서 달콤한 코미디 양념으로 버무린 뒤 휴머니스틱한 온도에 익혀 시대극의 밥상에 차려놓은 퓨전 요리쯤 되지 않을까?

두 번째 소감 - 새로운 사극의 탄생 가능성을 점친다

여기까지가 <YMCA야구단>에 관한 첫 번째 소감을 둘러싼 이야기다. 두 번째 이야기 또한 호창의 얼굴을 그려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눈앞에 나타난 적이 없는 종류의 캐릭터다. 바로 이 점, 그러니까 새로운 사극의 탄생 가능성이 개인적으로는 <YMCA야구단>에서 느낀 가장 흥미로운 측면이다.

사극은 한국영화에서 명맥이 희미해진 장르다. 그러나 역사란 이미 끝난 채로 닫혀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과 사건들이 남긴 흔적을 오늘날의 누군가가 더듬어 메운 다음 하나의 서사로 완성시켜 들려주는 일이라는 관점을 취한다면 사극은 언제든지 신선한 얼굴로 부활할 소지가 있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득한 거리감, 화면 안에 무엇을 채워야 할지 막막한 빈틈 등 사극이 가지고 있는 허점이야말로 다양한 상상력과 다양한 내러티브가 춤출 수 있는 무대인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가 보는 사극은 영화든 TV드라마든 대개 도식적인 이데올로기와 관습적인 상상력에 의존한다. 조선시대라면 인습으로 인해 고통받는 주인공을 보여주되 동시에 한국적인 미의식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재현하기, 궁중을 무대로 남성들의 권력욕이나 보수적인 여성상을 투사한 변형된 정치드라마 혹은 가족드라마, 서민적인 영웅의 성공담 등이 주를 이룬다.

일제시대로 내려오면 이야기는 더 단조로워진다. 항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이데올로기 그 자체인 사람은 없고,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구체적인 인간이다. 따라서 이야기가 추상적인 이데올로기나 거대한 담론에 묶여 들어갈수록 영화 자체는 텅 비게 된다. <YMCA야구단>에 대하여 질문을 던져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애초에 <YMCA야구단>이 기대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시대와 소재가 새로웠기 때문이다. ‘개항기와 일제시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벗어나지 못하던 무겁고도 지루한 정치담론을 떠나 무언가 신기한 걸 보여주겠단 말이지. 흠….’ 이때의 새로움은 단지 낯선 것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전복적인 것에 대한 기대를 부추겼다. 역사라는 말이 주는 지루함, 일제시대라는 말이 주는 무거움을 뒤집어엎고, 매번 봐오던 그 빤한 이야기와 이미지들을 휘어지게 만드는 무엇. 이호창의 야구방망이에 기대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다큐멘터리적인 필름 조각들로부터 시작된 영화의 첫머리는 우리를 그 시대에 관한 새로운 느낌으로 안내한다. 초당 16프레임으로 찍혀 동작이 툭툭 끊기고 누렇게 바랜 흑백 무성영화 특유의 느낌 속에, 고뇌에 빠진 왕이나 독립운동가 혹은 간악한 일본 군인 대신, 웬일인지 신이 나서 웃고 춤추고 때로는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일에 몰두한 평범한 조선 민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더니 공놀이를 하는 <YMCA야구단>의 배우들이 마치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인 양 슬며시 따라붙는다. 이어서 돼지오줌보로 만든 풍선 같은 축구공을 차고 노는 송강호로 연결된다. 영화는 이같은 느낌을 살리기 위해 끝까지 호박색 혹은 세피아 톤을 유지했다.

판에 박힌 내러티브, 패착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성을 가진 사극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면서도 수많은 사극들이 반복해온 패턴을 벗어나기. 이것이 첫 장면이 거둔 효과이며 영화의 전반부는 이같은 기조 위에서 잘 전개된다. 그런데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YMCA야구단>의 내러티브는 우리가 그토록 반복적으로 보아온 어떤 이야기와 이미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그때부터 야구단은 항일 독립운동이라는 거대 서사를 수행하는 집단적인 인격체로 돌변한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YMCA야구단>의 패착이다.

관객 반응을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이 하나 관찰된다. 기자 시사회든 극장 상영이든 객석에서 가장 크게 웃음이 터지는 순간은 민공의 장례식장에서 호창의 연서가 유언장으로 오인돼 낭독되는 장면이다. 가장 진부할 뻔한 장면이 가장 극적으로 휘어지는 이 순간에 대해 관객은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요란하게 웃어준다.

그런데 영화 분위기가 독립만세풍으로 돌아가는 순간 극장 분위기는 썰렁해지다가 ‘오우 제법인데’ 하는 선에서 수습된다. 더구나 스포츠가 모든 갈등을 해소하는 용광로 역할을 한다는 설정, 특히 도피 중에 하는 민정림의 대사는 지난 6월의 월드컵을 너무 의식한 혐의가 있다. 원래 시나리오가 그랬다면 한발 늦은 일이다.

사극을 휘어지게 만들 수 있는 회심의 소재를 붙잡았으면서도 마치 휜공치기를 거부하는 이호창처럼 판에 박힌 메타 내러티브로 직진해버린 것. <YMCA야구단>이 보여주는 이같은 아쉬움은 사극에 있어서 소재와 고증만이 아니라 시각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김소희/ 영화평론가 cafe.daum.net/cw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