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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엘리어트의 <One Minute Man>
2002-10-10

15타수 무안타의 이유

미시 엘리어트(Missy Elliott)의 싱글 <One Minute Man>의 비디오는 그 노래말만큼이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작품이다. 노래와 군무(群舞)가 어우러진 힙합 비디오의 전형적 틀 안에, SF적인 상상력의 배경 세트와 목을 쑥 뽑아내는 하드고어형 특수효과와 의례적인 수준의 섹슈얼리티를 조금씩 부어넣고 휘저어낸 그 스타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혁신적이라거나 실험적인 방향과는 거리가 있지만, 기존 ‘장르의 규칙’ 안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인 수준에 속한다고 할 만한 완성도니까 말이다.

여기서 쟁점은, <One Minute Man>이란 작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뮤직비디오에 대한 가치판단 기준이란 것의 애매함을 엿볼 수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단서는 지난 8월29일(현지시각) 뉴욕의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거행된 ‘2002 비디오 뮤직 어워드’(Video Music Awards 이하 VMA)가 제공해주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올해의 VMA에서는 에미넴이 네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최다관왕이 되었고 신인 록밴드 화이트 스트라이프스(White Stripes)가 세 부문 석권으로 그뒤를 이으며 파란의 주인공에 등극했다. 하지만 <One Minute Man>으로 모두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던 미시 엘리어트는 에미넴이 네개의 트로피를 가져가느라 자신의 몫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확인하고 돌아가야 했다. 그나마 그녀에게 위안거리가 있었다면 ‘예년과 다를 바 없는 결과일 뿐’이라고 자위할 여지가 있다는 점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오히려 그녀의 입장을 더더욱 극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시 엘리어트는 지금까지 3회에 걸쳐 총 15번이나 VMA에 노미네이트되었지만 수상은 단 한 차례도 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의 집 어딘가에 두개의 트로피가 놓여져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것들은 영화 <물랑루즈>의 삽입곡 <Lady Marmalade>의 프로듀서이자 게스트 뮤지션 자격으로 ‘얻어오다시피 한’ 것에 불과하다. 그 곡은 엄연히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핑크, 릴 킴, 마이야 등 4인의 이름으로 협연된 것이었고, 그 뮤직비디오 역시 젊고 쌩쌩한 그 네 여인의 속옷바람 열연으로 화면을 가득 메운 것이었다.

미시 엘리어트는 당대 최고의 여성 래퍼인 동시에 가장 재능있는 힙합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뮤지션이다. 게다가 언제나 ‘눈에 띄는’ 클립들을 제작해서 호평을 받아온 것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렇기에 VMA에서 기록한 ‘15타수 무안타’ 기록은 그녀에게 불운 이상의 무언가가 암암리에 작용했다는 심증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선은 뮤직비디오의 생래적 정치성이 가진 한계를 떠올릴 수 있다. 화려하고 현란하거나, 신비롭고 불가해한 이미지들 속에 빛나는 스타의 모습은 뮤직비디오의 가장 근본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미시 엘리어트의 외모는 온갖 조명발과 화장발로도 극복하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그녀는, 매력적인 댄서들만을 비디오에 담음으로써 시청자들을 오해시키며 스캔들을 일으켰던, 시앤시 뮤직 팩토리(C+C Music Factory)처럼 ‘약점’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애초에 “작곡가와 프로듀서로만 활동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레코드사 경영자의 ‘충고’를 거부하고 뮤지션으로 당당히 나섰을 때 이미 확인된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VMA의 애매한 후보자 선정 및 시상 기준이다. 그래미를 위시한 음악상들이 ‘뮤직비디오 부문’을 시상하는 것과 뮤직비디오를 통해 음악적 성과를 검증하(겠다고 하)는 VMA의 의도간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VMA는 결국, 음악과 비디오 양단 사이 어딘가에 점을 찍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지만 그 판단배경의 좌표는 뮤직비디오의 속성만큼 애매한 것이다. ‘상’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들이 공정성의 시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를 타고난 것이긴 하지만 VMA의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여기 <One Minute Man>의 뮤직비디오는 그에 대한 또 하나의 리트머스이다.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mymusic.co.kr 대표 bestles@my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