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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3년 만의 신작 <이중간첩> 프라하 촬영현장
2002-10-12

이방인,보헤미아의 땅으로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는 것, 모든 나라들은 이러한 희생의 유혹을 알고 있었다. 체코인들의 적이었던 독일인들과 러시아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민족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영광, 그들의 중요성, 그들의 보편적인 사명에 열광한다. 체코인들이 조국을 사랑했던 것은 조국이 영광스러워서가 아니라 작고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커다란 연민이다.”- 밀란 쿤데라 <향수> 중비행기는 파리 드골공항을 떠나 프라하 루즈네공항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쿤데라가 최근작 <향수>에서 율리시스의 그것에 빗대어 ‘위대한 귀환’이라고 일컬었던, 20년 전 조국 체코를 등지고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레나의 귀환과 동일한 루트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스메타나가 찬미했던 그의 조국은, 그러나 소외된 이방인들의 고독을 양분삼아 살찌워진 곳이었다. 조국에 대한 사랑만큼 증오도 연민도 컸던 사람들. 체코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자 독일어로 글을 써야 했던 ‘검은 까마귀’ 프란츠 카프카도, 조국을 등지고 프랑스어로 존재의 가벼움을 이야기했던 밀란 쿤데라도 프라하의 동서를 가르는 블타바강의 상공을 영원히 순환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영혼을 타고났다. 이 보헤미아의 작은 땅이 남에도 북에도 속해질 수 없었던 가련한 운명의 이방인, ‘이중간첩’ 림병호를 불러들인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80년대 베를린을 재현한 세트

프라하 최고의 관광상품인 카렐다리를 봉쇄시켰던 올해의 수해는, 여전히 도시 이곳저곳에서 끊임없는 복구작업의 소음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800년 만의 자연재해도 앗아갈 수 없었던 1, 2차대전의 포연 속에서도 가리워질 수 없었던 이 도시의 도도한 아름다움은 수해의 흔적마저 엽서에 담겨져 여행객의 호주머니 속 몇십 코루나를 훔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여름의 푸른빛을 벗고 색색의 단풍으로 물든 블타바강가에서는 누군가에게 보내질 엽서를 깨알 같은 글씨로 채우고 있는 배낭여행객부터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 마주잡은 손만으로도 믿음이 느껴지는 백발의 노부부까지 ‘동유럽의 심장’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더운 기운을 저마다의 자유로운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구시가와 바츨라프광장으로 대표되는 프라하1구역에서 다리를 건너 15분쯤 차를 타면 닿을 수 있는 프라하 7구역의 홀레쇼비체(holesovice)로 들어선 뒤 펼쳐지는 풍경은 시대와도 계절과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어떤 것이었다.

99년 <텔미썸딩> 이후 오랫동안 차기작을 골랐던 한석규의 복귀만으로도 제작 초기부터 관심을 모은 <이중간첩>. 동서독의 검문소와 바리케이드 등을 포함, 총 8천만원 가까이의 제작비를 들여 지어진 대규모 오픈세트는 관광상품이 되기엔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흩뿌려졌던 냉전시대 동베를린, 그 시대의 스산하고 날선 공기까지 완벽히 재현해내고 있었다. 로버트 레드퍼드와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스파이게임>에서 한 남자를 서독으로 망명시킬 임무를 띤 브래드 피트가 작전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뒤 홀로 통과하던 체크 포인트 장면을 찍기도 했던 이곳은 어둠이 찾아들자 조명을 위해 바닥에 뿌려진 물에 뿌옇게 안개까지 더해지며 마치 누아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이 영화의 도입부이자 전체 8분가량이 소화될 예정인 프라하 촬영은 지난 9월25일부터 시작된 총 7회차 촬영이 벌써 5회차에 접어든 탓인지 영어와 체코어, 한국어가 뒤섞인 가운데서도 조용히, 그리고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총 3대의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80년 6월 림병호(한석규)가 일본인으로 위장하고 동베를린의 검문소를 통과해 주독 미군이 지키는 체크 포인트 찰리를 빠져나가는 장면을 찍는 이날 신에는 시민 60명, 동서독 군인 14명, 미국 헌병 10명 등 총 80명이 넘는 현지 엑스트라가 동원되었고 차 추격신 등의 안전을 위해 체코 경찰이 촬영장 주변을 밤새 지키고 있었다. “지그재그로 걷고, 카메라를 보지 말라고 이분들에게 말해주세요.” 북한 요원들의 추격을 피해 인파를 헤치고 달려가는 장면을 찍기에 앞서 현지 엑스트라의 동선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한석규의 목소리에서는, 오랜만에 필드로 복귀한 노련한 배우의 낯선 흥분이 묻어나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

1980년, 북한 대남 사업본부 최우수 요원으로 남조선 혁명과업을 부여받고 남한으로 위장귀순한 림병호는 ‘귀순용사’라는 이름 아래 남쪽 정보기관 내 대공정보분석실로 배정되면서 이중간첩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3년 동안의 철저한 위장을 통해 서서히 남쪽의 신뢰를 쌓아가던 어느 날, 림병호는 고정간첩의 딸로 태어나 고정간첩으로 살아가는 지령전달책 윤수미(고소영)로 부터 북쪽의 첫 번째 지령을 전달받게 된다. 자연스러운 접촉을 위해 윤수미와 연인관계처럼 지내던 림병호는 한번도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선택할 수 없었던 윤수미에게 동질감과 함께 사랑인지 모를 연민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한쪽에서 림병호를 작전실패의 희생양으로 지목하면서 윤수미와 림병호는 남한도 북한도 선택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스릴러에서 첩보, 멜로까지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는 <이중간첩>은 이미 분단이라는 소재가 추억거리가 되어버린 독일과는 달리 냉전의 철조망이 여전히 물리적으로도 남북을 가르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한석규의 표현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만 만들어질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이중간첩> 촬영에 필요한 크루와 엑스트라 모집부터 장소 헌팅, 식사를 책임지는 캐더링서비스까지 현지진행을 맡은 체코의 엑스맨프로덕션(Axmanproduction)은 사회주의 시절부터 카툰 관련 영화일을 해오던 이바나 엑스마노바가 대표로 있는 고정멤버 5명 정도의 소규모 프로덕션이다. 그러나 지난 2000년에 설립된 짧은 역사치고는 다큐멘터리 <Will to Dance>와 노르웨이와 합작한 극영화 <Drift> 같은 자체 영화제작뿐 아니라 <이중간첩>의 경우처럼 여러 국가에서 온 촬영팀의 현지진행을 돕기도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바나의 딸이자 엑스맨프로덕션의 프로덕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카를라 스토야코바는 밀로스 포먼 등을 배출한 체코 최고의 영화교육기관인 FAMU에서 영화학을 공부한 재원으로 매년 프라하에서 열리는 FEBIO라는 국제 영화·TV·비디오 페스티벌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하는 스물여섯의 강단있고 똘똘한 아가씨다. “체코의 영화계는 점점 쇠락하고 있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콜리아>의 얀 스베락이나, 얀 흐제벡 같은 감독이 있긴 하지만 한국영화의 발전에 비하면 절망적인 수준이다. FAMU에서 함께 공부하던 한국 친구를 통해 처음 한국영화를 접했고 지난해에 부산영화제를 찾았다. 또한 이런저런 영화제를 통해 <와이키키 브라더스> <무사> 등 다양한 한국영화를 많이 접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 공부한 <나비>의 문승욱 감독을 만났다. 그는 체코영화사에 대해 놀랄 만큼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올해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의 김기덕 감독 특별전도 흥미로웠다. 이외에도 한국의 많은 감독들과 교류하고 싶다”며 스토야코바는 한국영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드러냈다. “스탭들이 굉장히 열성적이다. 시간제 노동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한국 스탭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다음 촬영지는 포르투갈

강대국의 스파이에서 첩보가 세계무대를 오가는 ‘게임’이었다면, 한반도의 간첩들에게 그것은 ‘생존’이었다.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80년대의 간첩 이야기를 굳이 21세기에 다시 불러들인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6월11일 크랭크인한 <이중간첩>의 촬영팀은 프라하 촬영을 마치자마자 바로 포르투갈로 날아갈 예정이다. 림병호와 윤수미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라스트신을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담고나면 영화의 총 60%가 마무리되는 셈이다. 그리고 2003년 설쯤 가려진 삶을 살아간 한 가련한 연인의 사연을 관객에게 들려줄 것이다. 안개낀 홀레쇼비체가 어슴푸레 밝아오던 10월3일 새벽. 12년 전 베를린에서는 굳게 드리워진 장벽을 향한 웅장한 망치소리가 시작되고 있었다.프라하=글·사진 백은하 lucie@hani.co.kr

발란도프스튜디오(Barrandov studio)체코영화의 요람

프라하 중심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프라하 5구역, 경치 좋은 고지대에 위치한 발란도프스튜디오는 1931년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의 삼촌인 밀로시 하벨에 의해 세워진 체코 최대의 영화제작 스튜디오다. 사회주의 시대에는 공영으로 운영되던 이곳은 민주화되면서 사유화되었고 현재는 460명 정도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11개의 크고 작은 스튜디오를 비롯, 야외에 만들어진 대규모 세트장, 주제별, 소재별, 시대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의상 및 소품실의 규모도 꽤나 큰 편. 방문 당일엔 <밴 헬싱>(Van Helsing)이라는 할리우드영화의 촬영을 위한 세트가 지어지고 있었고 야외세트장에는 워너브러더스의 신작 <사운드 오브 선더>(A Sound of Thunder)의 촬영을 위한 대형 지하철세트가 마련되어 있었다. 스튜디오 안내를 맡은 발란도프스튜디오의 마케팅디렉터 마토시는 “프라하 시내의 지하철은 홍수 때문에 운행이 중단되었는데 이곳에 물에 잠기는 지하철세트를 만들고 있다”며 “아이로니컬한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이곳 스튜디오에서는 광고나 TV물을 비롯 1년에 20편 정도의 체코영화가 제작되고 대부분 유럽 및 할리우드영화들이 제작되고 있다. 비교적 저렴한 로케이션 비용과 아름다운 자연풍경, 또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갈수록 많은 영화사들이 선택한다는 체코의 발란도프스튜디오는 올해만 해도 <블레이드2> <트리플X> <본 아이덴티티> 등의 많은 할리우드영화의 산실이 되었다. <이중간첩> 또한 이곳을 통해 냉전시대의 의상 및 소품을 대여했고 촬영러시를 보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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