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궁금증을 못 이긴 아이의 질문에 어른들은 수수께끼같은 은유로 화답하거나 아예 회피한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욕망도 부풀어오른다. <내 마음의 비밀>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홉살짜리 소년이 어른들이 간직해온 비밀의 영역으로 한발두발 조심스레 다가드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
시골집의 어머니 방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소년 하비의 세계엔 어른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없다. 아이는 빈 집에서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망자의 고백이라고 믿거나 봄날을 맞은 강아지들이 서로 얽히는 광경을 보면서 ‘개들이 왜 싸우는 걸까’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어놓은 금기의 선을 넘은 뒤 하비는 아주 조금씩 커튼 뒤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의 관계, 아버지의 사망 원인, 빈 집의 유령, 마리아 이모와 로사 이모의 갈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어른들의 진실’은 앞으로 하비가 비밀로 간직해야할 것들이기도 하다. 하비는 “비밀은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 “용기의 비밀은 무섭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어머니의 말을 새기며 감당하기 어려운 침묵의 고통과 힘겹게 맞선다. 아이는, 항상 그렇듯, 어둠과 함께 비로소 성장하며, 그의 영혼엔 이제 그늘이 마련된다. 그런게 성장이다. 그래서 그의 성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영화가 끝날 무렵의 하비는 유년의 비늘을 벗고 성숙해진 것만이 아니다. 자신의 아내를 자살로 내몬 친구 카를로 아버지의 트럼펫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는 어른들의 질서 속으로 끼여들게 된다. 세상은 늘 어둠을 재생산하고, 어둠과 불화하지 않는 방식이 성장의 이름으로 보호되는 것이다.
<내 마음의 비밀>의 가장 큰 매력은 하비 역을 맡은 아역배우 안도니 에르부루의 존재다. 이 작품을 통해 데뷔한 에르부루는 총총한 눈망울과 가식없는 연기로 보는 이의 마음을 촉촉하게 한다. 그는 이 영화로 스페인의 영화상인 고야상에서 최우수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 <내 마음의 비밀>은 1997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유럽영화·TV아카데미가 주는 ‘블루엔젤’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문석 기자 ssoon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