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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디렉터 부문- 장 뤽 고다르 근작
2002-10-18

현재의 대가,여전한 기대주

장 뤽 고다르의 최근 작업에 대한 글들을 모아놓은 <시네마 얼론>이란 책에서 이 책의 편집자인 마이클 템플과 제임스 S. 윌리엄스는 고다르의 프로젝트는 항상 신선한 주제와 형식을 찾고 있다며 그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고다르는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영화계의 가장 총명한 기대주들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까지도 열정적으로 영화작업을 하고 있는 그를 보건대 분명 이건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는 누벨바그, 아니면 여기서 조금 더 시기를 확장해봤자 60년대에 속하는 과거의 인물로 여겨지는 경향이 없지 않다. 국내의 경우에 이건 고다르의 최근 영화와 사고들이 거의 소개도 되지도 않은 채(물론 60년대 영화의 경우에도 별 차이는 없지만) 영화사 책 속에만 담겨 있는 화석화한 어떤 것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마스터 디렉터’ 섹션은, 현재까지 40여년을 오로지 영화에만 몰두해온 이 ‘현재의 대가’가 80년대 이후에 내놓은 중요작 4편을 모았다. 이 작품들은 고다르 영화세계의 현재를 보여줄 뿐아니라 ‘(우리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고 있다.

70년대에 비디오 작업에 매진했던 고다르는 80년대에 ‘영화의 대륙’으로 귀환하면서 과거에 존재했던 작품들을 각색하는 작업에 관심을 보였다. <카르멘>(1982), <리어 왕>(1987) 등과 함께 <마리아에게 경배를>(Je vous salue, Marie, 1985)은 그와 같은 80년대 고다르의 한 경향을 보여주는 영화다. 제목에서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마리아에게 경배를>은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의 ‘처녀 수태’ 이야기를 기초로 만든 것이다. 고다르는 이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놓는다. 영화 속에서 마리는 주유소의 점원이고 농구선수이고 그녀의 연인 조셉은 택시 운전사이다. 가브리엘로부터 수태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뒤로 마리와 조셉은 각기 다른 이유로 번민에 빠져든다.

<마리아에게 경배를>은 개봉 당시 종교관련자들로부터는 ‘신성모독’에다가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사실 이것은 그저 신을 모독하는 영화가 아니라 영혼과 생명의 기원 등에 대해 사고하고 초월적인 것에 경도된 진중한 영화이며 추한 영화가 아니라 아름다운 영화이다. 한편으로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이 판치던 시대에 그것과는 초연하고자 하는 고다르의 꽤 원대한 계획이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여기서 고다르가 시도하는 것은 기원으로 돌아가 발생 과정에 있는 순수한 이미지/기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구도 만지지 않고 또 누구와도 동침하지 않은, 즉 어떤 식으로든 매개를 거치지 않은 마리는 그런 순수 이미지를 보여주는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당시 고다르의 영화들이 종종 ‘이름 이전의(Pr -nom)’ 것, 혹은 언어로 지칭되기 이전의 순수한 존재를 보여주고자 했음을 상기해보자).

영화의 역사에 대한 사고와 그 비평은 사실 고다르의 모든 프로젝트들(영화뿐 아니라 글쓰기도 포함해)에 스며 있는 관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사>(Histoire(s) du cinema, 1999)는 20세기의 영화에 대한 고다르의 비평적 입장이 총괄적으로 담겨 있는 대담한 프로젝트라고 부를 만하다.

1998년에 총 4부 8편(각장은 A와 B 두편씩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완성된 <영화사>의 출발점은 대략 1978년 몬트리올에서 고다르가 한 연속 강의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이 강의 중 일부를 수록한 책 <영화의 진실한 역사를 위한 서설>에서 고다르는 ‘진실된’ 영화의 역사란 일러스트레이션이 삽입된 텍스트들이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들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썼다. <영화사>는 바로 이런 자신의 확고한 생각에 따라 실제 영화 속 이미지들과 사운드의 조각들을 몽타주해 만들어낸, 지극히 고다르적인 20세기 영화사의 기록이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프로젝트의 원대함이란 측면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 맞먹을 것이라고 평가한 고다르의 <영화사>는 20세기 영화사 최고의 사건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편 이 ‘마스터 디렉터’ 섹션에는 고다르식의 부조리 코미디인 <오른쪽에 주의하라>(Soigne ta Droite, 1987)와 보스니아 사태와 영화 만들기의 문제를 함께 다뤄 “최근에 나온 영화들 가운데 가장 사려 깊은 정치영화”(세르주 투비아나)라는 평을 들은 <포에버 모차르트>(For Ever Mozart, 1996)도 함께 상영된다.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