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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시네마:주목할 만한 신예감독들을 만나다
2002-10-18

교복을 찢어라!세상으로 나와라!

<> La Cienaga

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 ┃ 출연 메르세데스 모란, 그라시엘라 보르헤스 ┃ 2001년 ┃ 아르헨티나 ┃ 103분

찌는 듯한 여름을 맞아 도시에 사는 탈리네 식구들은 교외에 있는 탈리의 사촌 메차의 집으로 놀러온다. 각각 네명의 자녀를 둔 이 두 가족은 여느 가정 못지않게 속사정이 번잡하다. 메차의 집안은 몰락해 풀장의 물이 썩어가지만, 메차는 부르주아 조상의 습성이 남아 하녀에 대한 불만을 남발한다. 딸은 하녀와 사랑하는 사이이고, 남편의 정부는 아들과도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암시된다. 탈리의 가정은 그보다는 덜하지만 두서없기는 마찬가지다. 두 가족 구성원 각자가 겪는 며칠 동안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이렇다할 인과관계가 없다. 불균질하면서도 사실적인 디테일들을 엮어 그곳 중산층 가정의 내면을 서늘하게 중계하는 어법이 독특하다. 단편과 TV시리즈를 만들었던 루크레시아 마르텔(36)의 장편 데뷔작으로 98년 선댄스영화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돼 일본과 프랑스 자본으로 제작됐다.

<언러브드> Unloved

감독 만다 구니토시 ┃ 출연 가게야마 미쓰코, 나카무라 도오루 ┃ 2001년 ┃ 일본 ┃ 117분

멜로드라마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상류계급인 커플이 허다하다. 여자의 삶이 남자에게 종속되어온 불평등한 사회사의 반영일 수도 있다. <언러브드>의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의 짝짓기도 결과는 같지만 그 속엔 경쟁에서 이기고 진 결과치로 인간들을 서열화시키는 사회에 대항하는 힘든 싸움이 담겨져 있다. 미츠코는 시청의 하급 공무원이다. 에이지는 대기업 간부로 성공한 이혼남이다. 히로시는 기술고등학교를 졸업한 운반용역직이다. 미츠코는 신분상승 욕구없이 지금 그대로의 자기를 존중한다. 에이지와 만나다가, 경쟁질서에 충실한 그를 떠나 소박한 히로시와 사귄다. 이번엔 히로시가 문제다. 패배자 소리를 듣는 게 싫은데, 지금 모습대로 살자는 히로시가 싫어진다. 우월감 아니면 열등감을 내치지 못하는 남자들과 그런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힘들게 자신을 지켜가는 여자, 셋 사이의 줄다리기만으로 2시간 가까이 내달리지만 지루하지 않고 감동적이까지 한 사랑 이야기다. 감독 만다 구니코시는 구로사와 기요시 초기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다가, 40대 중반에 이 영화로 늦게 데뷔했다.

<모델링 타이완> Modeling Taiwan

감독 황팅푸 ┃ 2000년 ┃ 대만 ┃ 78분

“늙은 여자 모델을 그리다가 흥분해서 사정을 해버렸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거기에 감동을 받았다. 위대한 이벤트를 본 것처럼. 모델은 오브제가 아니다. 그들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느낀다.” 한 화가의 전언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작가 황팅푸가 95년부터 5년간 대만의 여성 누드 모델들을 쫓아다니며 찍은 그들의 삶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들은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몸의 권리를 회복하려 하고, 사회의 편견과 화가들의 편협한 미학에 은근히 반기를 든다. 모델들끼리 모여 만든 퍼포먼스 공연에서 한 모델이 말한다. “나를 한 인간으로 그리지 않는다면, 그들(화가들)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감독 데이비드 고든 그린 ┃ 출연 캔다스 에바노프스키, 도널드 홀든 ┃ 2000년 ┃ 미국 ┃ 89분

노스 캐롤라이나의 가난한 동네에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무리지어 놀면서 사랑싸움도 벌인다. 13살의 흑인 소년 조지 워싱턴도 그중 하나다. 여름 어느 날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한 아이가 사고로 죽는다. 남은 아이들은 죽은 친구의 부모에게 혼날 게 두려워 시체를 숨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은 친구들끼리의 관계가 돈독해지지만, 죄의식과 공포와 대면하면서 각자가 변화를 겪게 된다. 28살의 신인 데이비드 고든 그린은 그 변화를, 몸으로 성을 느끼기 직전인 유년기의 끝을 통과하면서 겪는 성장 의례에 오버랩시키면서, 이 특이한 일탈을 감싸안는다. “올해 가장 매혹적인 독립영화”(짐 호버먼)라는 평단의 격찬과 함께 미국 비평가협회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웰컴 투 콜린우드> Welcome to Collinwood

감독 앤서니 루소, 조셉 루소 ┃ 출연 샘 록웰, 윌리엄 H. 메이시 ┃ 2002년 ┃ 미국 ┃ 82분

<오션스 일레븐>이 A급 선수들의 드림팀이 벌이는 근사한 한탕을 그린다면 <웰컴 투 콜린우드>는 몹시도 궁상맞은 버전의 <오션스 일레븐>이라고 할 만하다. 아니나 다를까 제작자도 조지 클루니와 스티븐 소더버그다. 그들이 기용한 신인 형제 감독 앤서니, 조셉 루소는 이탈리아 코미디 <마돈나 거리의 큰 건수>에서 데뷔작의 스케치를 빌려왔다. 소동의 불씨는 자동차 좀도둑 코지모가 종신 복역수로부터 입수한 생애 최대의 건수라 할 만한 정보. 욕심이 동한 코지모는 애인 로잘린드를 시켜 자기 대신 돈받고 옥살이를 해줄 사내를 구하지만, 구인이 여의치 않아 클리블랜드에서 가장 한심하고 경쟁력 없는 건달들이 꼬리를 물고 연루된다. 뭘 하기에도 늙고 허약한 사내, 갓난애를 들쳐업고 전전긍긍하는 남자, 계획에 없던 사랑에 빠지는 아마추어 권투선수 등이 어울린 포복절도하는 캐릭터코미디와 낭비없는 시추에이션 구성력이 맞물려 영화의 절반 이상이 여름날 청량음료처럼 단숨에 넘어간다. 2002년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 소개됐다.

<하나코> Hanako

감독 사토 마코토 ┃ 출연 이마무라 하나코, 이마무라 치사 ┃ 2001년 ┃ 일본

하나코는 보통 사람처럼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22살의 교토 처녀다. 어머니 치사는 6년 전 어느 날 딸이 다다미 바닥 위에 생선, 과자, 야채 등의 남은 음식물로 집요하게 형상을 만들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딸의 유희를 아름답다고 느껴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한다. 오가와 신스케, 하라 가즈오의 맥을 잇는 일본의 다큐멘터리 작가로 불리는 사토 마코토는 하나코의 '잔반(殘飯)예술'에서 불행을 기쁨으로 반전시키는 마법을 본다. 그러나 <하나코>는 독특한 예술가의 작품을 나열하는 도록 이상이다. 까다롭지만 행복한 하나코, 동생과 아빠를 미워하지는 않지만 때가 됐음을 느껴 집을 떠나는 언니 모모코, “하나코와 있으면 결코 지루하지 않다”며 딸의 장애와 온화하게 화해한 낙천적인 어머니 등 이마무라 가족의 조촐한 정경이 하나코의 작품들 사이로 조용히 떠오른다. 요절한 사진작가 고조 시게오의 궤적을 뒤쫓은 사토 마코토의 <셀프 앤 아더스>도 함께 상영된다.

<학위수여식> Rasganco

감독 라켈 프레이레 ┃ 출연 리카르도 아이베오, 아나 브랜다오 ┃ 2001년 ┃ 포르투갈 ┃ 100분

오랜 역사의 대학 도시 코임브라. 과정을 수료하면 친구들이 달라붙어 교복을 찢는 ‘라스강소’ 의식이 벌어지고 있는 캠퍼스에 매혹된 표정으로 한 청년이 들어선다. 대학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는 에드가는 코임브라를 예찬하는 여학생 안나 리타와 기숙사 직원, 권태에 빠진 심리학자 등 세 여자의 연인 노릇을 하며 코임브라에서 잠잘 곳과 일자리까지 얻어내지만, 무식하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연신 해고당하고 선망하는 학생 공동체에는 끼어들지 못한다. 얼마 뒤 캠퍼스에는 여학생들을 납치해 강간한 뒤 가슴에 칼로 글자를 새겨 벌거벗긴 채 내버리는 연쇄범죄가 발생한다. 형이상학을 “눈 먼 자가 눈가리개를 하고 어둠 속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일”에 비유하는 대사가 나오는 <학위수여식>은 여성의 누드와 선혈이 가득한 정념의 서스펜스 스릴러인 동시에, 거절당한 외톨이의 복수를 통해 아카데미의 오만과 자신들의 젊음과 유망한 미래에 도취돼 있는 젊은이들의 배타성을 드러낸다. 데뷔 감독 프레이레는 이 영화를 배고픔과 폭력의 미학을 주창했던 시네마 노보의 리더 글라우베르 로차에게 헌정했다.임범 isman@hani.co.kr·김혜리 verme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