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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수 상 받던 한글날 국립극장
2002-10-18

돈과 상

신문기자라는 자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대체로 주의를 요한다. 입조심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외모가 별로 아니라서 찍히지 않게끔 역시 주의를 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몸조심을 더 해야 한다. 모두 현장에서 뼈대가(아니 어깨가) 굵은 경우라 술김에서 어영부영 시비걸다가는 얻어맞고도 동정은커녕 미련하다는 핀잔듣기 십상이다. 하여, 신문사를 가는 일이 있으면 빈자리가 있더라도 혹시 사진기자, 특히 사진부장 자리가 아닌가 꼭 확인해보고 앉는 게 좋다.

박용수(한글문화연구회 회장)는 그 이름도 전설적인 허바허바사진관 사진사 출신으로 노조운동을 하다 쫓겨난 뒤 70년 말부터 데모와 단식, 그리고 분신자살 현장을 누비며 스스로 옥고도 치르면서 사진을 찍어왔으니 정말 사진기자 중 사진기자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개)민주화운동 사진 중 50% 이상이 그의 손과 눈을 거쳤다. 청각장애인에 고희가 코앞인데 경찰과 사복형사들의 만류를 어영부영 못 들은 척(사실 못 듣는다), 오히려 고래고래 야단까지 치면서 우겨 기어이 찍을 사진을 딱 찌고서야 물러나는 걸 보면 거의 장애를 낙()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그는 사전편찬자로 더 유명하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이게 언제 얘기냐). 그가 편찬한 <우리말 갈래사전>을 선물로 들고 갔고 당시 김일성 주석은 ‘남북한 통일사전’을 만든다는 합의서를 만들어주었고, 그뒤로 박용수는 사진을 찍고 틈틈이 글을 쓰는(그는 <바람소리>라는 우수한 시집을 한 권 냈다) 시간말고는 오로지 사전 편찬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한글날 유공자로 ‘대통령상’을 받는다 했을 때 개근상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런 ‘경장한’ 상인데 하객이 많겠군, 뭐 나까지, 그런 생각이었다가, 아니 ‘대통령상’이란 걸 우리 주변에서 받아본 사람이 없으니, 생소해서 하객이 너무 없을지도 모르겠군,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국립극장은 좌석이 낮고 편안하고, 박용수는 맨 앞줄에 흔쾌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들리지 않는 귀로 축하연주를 듣고 무용공연을 보았다. 일행은 조촐했다. 김별아(소설가)와 홍일선(시인)과 친지 서넛. 역시 오길 잘했군…. 상을 받았으니 당연히 점심은 ‘족발집’보다 한급 높은 데로 잡았다. 그리고, 상장이야 뭐 그렇고 그런 공무원 문투겠고, 일행은 당연히 부상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정말 놀랍다. 그 안에는 족발 한 그릇 값도 안 되는 시계 하나가, 당당하게 들어 있다. 어허, 큰일났군. 밥값은 가져오셨나

김정환/ 시인·소설가 maydapoe@thrun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