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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제3차 INCD 연례회의
2002-10-22

“원칙은 바뀐 것이 없다”스크린쿼터를 유지한다는 기본 정책은 어떤 흔들림도 없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나 문화부문을 포함한 양허요청안을 WTO 사무국에 이미 제출한 정부의 답변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철회되지 않는 한, 여타 분야의 실리를 위해서 스크린쿼터는 제거되어야 할 장벽으로 남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경우, 앞으로 정부의 한국영화 지원 또한 자유로운 경쟁을 방해하는 불공정 플레이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각국의 문화다양성 보존을 위한 세계문화협정이 절실하다”는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의 주장은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던져졌지만,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한 국내 정부 정책에 대한 엄중한 항의이기도 하다. 지난 10월11일부터 13일까지, 37개국 186명의 NGO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 타운에서 열린 제3차 INCD(International Network for Cultural Diversity,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 제3차 연례회의에 참석, 문화다양성협정을 마련하기 위한 토의에 나선 양기환 사무처장의 기고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가고오는 데만 꼬박 51시간30분이 걸렸다. 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남아공 투쟁의 상징인 만델라 전 대통령이었다. 노벨평화상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가 감옥에서 보낸 18년은, 백인 통치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정부를 만들어내기까지 남아공이 걸었던 인고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백인들의 식민주의와 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해온 토착민들의 뿌리 깊은 문화운동이 오늘날의 남아공을 가능케 한 진정한 뿌리임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문화운동의 끈끈한 저력이 느껴지는 남아공에서 INCD 총회가 열린다는 것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1915년, 백인을 위한 박물관으로 건축된, 그러나 지금은 남아공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케이프타운 서적센터에서 진행된 INCD 총회는, 문화사적으로 커다란 사건이었다. 그 현장에는 남아공의 배우이자 문화활동가이고 만델라 전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재팬 므셈부(Japan Mthembu), 미국 워싱톤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문화유산정책 책임자인 제임스 에어리(James Eariy), 유럽방송연합(EBU)을 대표하는 스위스의 미셸 와그너(Michel Wagner) 등 186명의 대표들이 함께했다. 이번 회의 결과는 곧 바로 INCP에 보고되어 문화 NGO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요구되어질 것이고, 회의 기간에 수렴된 의견을 바탕으로 문화협정 수정안이 공개될 것이다. 캐나다 오타와에 본부를 두고 52개국 300개 단체가 가입되어 있는 INCD는, 이미 2000년 그리스 산토리니와 2001년 스위스 루체른 총회를 통해 개별 국가들이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고 촉진할 수 있는 국제법적인 강제력을 갖는 ‘문화다양성에 관한 새로운 협정’(NIICD)을 창설하자는 각국의 지지의사를 모은 바 있다. 따라서 이번 총회의 주요 목적은 문화다양성을 위한 ‘문화협약’ 초안을 토론하고 확정하는 것이다. INCD의 주문, "준비 철저!"

INCD는 총회 참석 전부터 NGO 대표들에게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문화, 개발 그리고 문화다양성’이라는 아젠다로 개최되는 이번 회의 쟁점사항을 거듭 확인하는 것은 물론, 자국 내 문화분야에서 충분히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회의에 참석하라는 것이다. 한국 또한 이를 위해 영화 쪽 대표격인 스크린쿼터문화연대를 비롯 방송, 애니메이션, 출판, 연극 등 문화 각 분야를 대표하는 16개단체들이 지난 5월 ‘세계문화기구를위한연대회의’를 출범한 뒤 논의를 진행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일방적인 세계화에 딴지를 거는 또다른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마쳤다.이번 총회에 던져진 질문은 “새로운 문화기구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여기에는 무역협정과 WTO 그리고 IMF 같은 국제기구들이 예술가들과 문화생산자, 문화단체들을 지원하는 개별 국가들의 역할을 제한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음을 환기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시청각서비스 분야 중 일례로 영화의 경우, 유통시장의 거래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문화영역도 무역규범을 적용받아야 한다는 할리우드의 파상적인 압력은 대다수 나라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영화들을 질식케 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문화는 곧 국민의 생명이다…개별 문화를 무시하고서 이들의 노래와 화술을 빼앗는 것은 곧 삶을 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첫째날 기조연설에 나선 캐나다의 배우이자 문화활동가인 톰슨의 발언은 실제 케이프타운 행을 택한 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전제이기도 하다. 우리 또한 지난 98년 이후 한미투자협정(BIT) 과정에서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라는 미국의 요구에 맞서 전 국민적 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지 않은가. 한국에서 일어난 ‘특별한’ 사건은 지금 은 더이상 한국적 사건에 머물지 않는다. 정말 그러냐고 묻는다면, 1946년 프랑스, 1968편 브라질, 1993년 멕시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1998년 이후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둘러싼 상황을 더해보라.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4조에서 인정하고 있는, 말하자면 WTO마저도 인정하는 국제경제법상 합법적인 제도였던 스크린쿼터를 두고, 미국은 투자협정을 빌미로 우리의 문화정책을 포기하도록 수차례 강요한 바 있다. 다시 말하자면, INCD가 던진 질문에 대해 문화정체성과 다양성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 또렷하게 드러난다.쿼터 위협, 안팎 연대로 맞선다

그렇다면 이같은 파상 공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답은 안팎에서의 끊임없는 연대활동이다. 내부적으로는 부문별로, 외부적으로는 개별 국가들끼리 힘을 모으면 된다. 남반구와 북반구, 개도국과 선진국에 따라 각각 차이는 있겠으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인해 문화의 정체성과 다양성이 파괴되어가는 현실을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면, 국제법의 성격을 띤 문화다양성 협정을 마련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98년, OECD 국가들이 추진했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이 문화다양성을 이유로 결렬되면서부터 국제사회에서 문화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고, 연이어 INCP(International Network on Cultural Policy·세계문화부장관회의)와 INCD가 만들어진 것도 이처럼 위기 국면에서 모색한 연대의 활동이 가시화한 경우다.이번 총회의 토의를 간추리면, 표현의 자유 등 문화창작자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킬 수 있는 권리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고 여기서 나아가 개별 국가의 정부 또한 문화적 다양성을 지원할 수 있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들고 나서야 한다는데 맞춰졌다. 연대를 바탕으로 개별 국가들의 적극적인 ‘커밍아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편, INCD는 문화협정을 통해 국제사회의 공동목표인,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별국가, 정부의 노력에 법률적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47개국 문화부 장관들의 모임인 INCP와의 공조가 뒷받침되기에, INCD의 주장은 실현가능성 없는 구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밖에 모든 나라들이 문화협정의 창설이라는 논의의 장에 나서도록 대륙별, 지역별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키는 방안도 총회에서 제기됐다. 홍콩의 무대감독인 대니 융은 “홍콩의 경우, 협회를 창설하는 과정에서도 정부가 운영하는 문화단체와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면서 “아시아 블럭을 위한 NGO 단체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나아가 정부와 그 산하 기관들의 적극적인 태도와 참여에 대한 주문도 이어졌다. 개별 국가 정부간에 문화협정 문안에 대한 합의와 조인이 이루어졌을 때만이 비로소 국제법적인, 강제력을 갖는 효력 발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배경과 쟁점을 가지고 논의된 ‘세계문화협정’ 초안에 대한 검토는 각국 NGO들의 다양한 의견을 한데 모으는 과정이었다. 결국 우리가 왜 국제협약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 안에는 무엇이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국가간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한국 정부는 어디로 갔나이번 회의의 결실을 더욱 값지게 하는 것은 세계문화협정 창설을 문화 NGO들과 각국 장관들이 함께 검토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이런 역사적인 자리에 대한민국 정부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천년 문화민족, 문화대통령 운운이 순간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WTO에 가입한 지 채 1년밖에 되지 않은 중국 정부가 문화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국제연대에 적극 나서는 것과 비교하면 더더욱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정부는 내년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제4차 INCD 연례회의에 이어 같은 곳에서 개최될 INCP 자리에 과연 나설 것인가.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