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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2주년 맞은 <전원일기>,어제와 오늘
2002-10-23

양촌리 사람들에게 박수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도에는 없는 마을. 그러나 “그곳에 누가 사느냐”고 묻는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정답을 맞힐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곳. 김 회장이 세명의 며느리를 맞아들이고 영남이와 복길이가 태어났으며 이 노인이 죽어 묻힌 땅. 한국인들의 영원한 고향인 ‘양촌리’가 오는 10월20일로 탄생 22주년을 맞는다.

양촌리는 1980년 극작가 차범석씨와 연출가 이연현씨가, 당시 농촌에 살면서 수필을 쓰던 실존인물 김성제씨를 모델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탄생 이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는데, 첫 방송 제목인 <박수칠 때 떠나라>가 당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던 전두환씨를 겨냥한 것처럼 비친다는 이유로 뜻밖의 ‘정치적 탄압’을 받은 탓이다.

마을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독특한 성격과 이력을 부여해 양촌리를 더욱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만든 사람은 <전원일기>의 두 번째 작가인 김정수씨다. 1981년 김정수씨를 처음 소개받은 출연진들은 “저렇게 새파란 작가가 농촌드라마를 쓸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감추지 않았단다. 당시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만큼 경험이 풍부한 작가가 차범석씨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여겼던 까닭이다. 그러나 김정수씨는 자그마치 10년 동안 <전원일기>를 집필하면서, 양촌리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매만져 이 드라마가 이후 10여년의 세월을 거뜬히 버티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주었다.

“나이들고 지친 나무에 정성껏 영양분을 공급하는 심정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현재 ‘양촌리 중계방송’을 맡고 있는 MBC 드라마국 권이상 부장은 22주년을 맞은 <전원일기> 연출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강산이 두번 변하는 세월이면 드라마도 나이를 먹는 법. <전원일기>는 참신한 기획과 소재로 안방 시청자들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청년기’와 잔잔한 감동이 주는 강한 흡인력을 자랑하던 ‘장년기’를 거쳐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전원일기>의 ‘노년기’는 양촌리 노인들의 모습이 그러하듯 결코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다. 일요일 오전 8시50분이라는 최악의 시간대에 편성된 뒤에도, 탄탄한 고정시청층에 힘입어 꾸준히 10%대의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고향에 가고픈 마음을 달래주어 고맙다”는 해외동포들의 편지와 “수해를 입은 농가의 애환을 다뤄달라”는 농촌 시청자들의 요청, “숙이는 분명 전미선씨였는데, 지난 방송에서는 왜 김소이씨가 숙이로 출연했느냐”는, 열혈 시청자들의 결코 싫지 않은 항의도 여전하다.

그러나 20여년을 버텨온 <전원일기>의 기초체력은 쭉쭉빵빵 청춘스타와 자극적인 소재로 무장한 신세대 프로그램들과 경쟁하기엔 역부족이다. 시청자들이 여가를 보내는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방송 시청률이 전반적으로 낮아진데다 위성방송과 케이블TV까지 가세해 요즘 방송사 시청률 경쟁은 유례없이 치열한 형편이다.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송하면서 평균 17∼19%를 기록해 일요일 오전 방송 시청률로는 최고였던 <전원일기>는, 타방송사가 같은 시간대에 쇼프로그램을 편성한 뒤 방송 시간이 지금의 8시50분으로 바뀌었다. 경쟁사의 일요아침드라마와 맞붙은 것인데, 결과는 물론 <전원일기>의 승리였다. 웬만큼 맷집이 있는 드라마가 아니라면 <전원일기>의 22년 관록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별히 큰 투자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손쉽게 경쟁자를 물리친 셈이니, 이것도 ‘편성의 묘수’라 해야 할 것인가.

양촌리, 지난한 시련의 세월

양촌리가 세파에 시달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배추 파동이니 돼지 파동이니 하는 ‘위험 소재’를 다루려다 된서리를 맞은 건 오히려 점잖은 축에 속한다. 첫 번째 시련은 한국방송의 <대추나무사랑 걸렸네>가 <전원일기>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보였던 1996년, 평일 저녁에서 일요일 오전으로 방송시간을 옮기면서 시작됐다. ‘달수 시리즈’ 등으로 소시민들의 일상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오현창 PD가 “<전원일기>를 좀더 현실적이고 경쟁력 있는 드라마로 탈바꿈시키라”는 특명을 받고 대대적인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김 회장집 부엌이 입식으로 바뀌고, 마당에 있던 펌프가 사라졌다. 집집마다 세탁기를 들여놓으면서, 빨래터 입방아가 자취를 감추었다. 가장 큰 변화는 5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뛴 것. 복길이와 영남이를 비롯한 ‘양촌리 3세대’들이 꽃 같은 청춘남녀로 변신해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일요일 오전 방송이라는 점을 감안해 가볍고 발랄한 분위기를 내야하는 데다, 젊은 세대로 시청층을 확대해야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복길이가 크면 어떤 사람이 될 것 같아?” “어떻게 바꿔도 욕을 먹을 텐데….” <전원일기> 리모델링 당시, 숱이 많지 않은 머리를 긁적이며 끊임없이 입속말을 하는 오현창 PD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들린다.

리모델링은 소재가 고갈되고 선도가 떨어진 <전원일기>에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지만,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촌리에 IMF 한파가 불어닥친 것이다. 제작비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마을 사람들 중 15명이 마을 밖으로 밀려났다. 이후 사업에 실패하고 귀농을 선택한 상태네(임현식·김자옥)와 동생인 병태네(최종환·조현숙) 등 새로운 인물이 합류했지만, <전원일기>의 오랜 팬들은 이들 이주민에게 쉽사리 정을 느끼지 못했다.

1990년에 이어 지난 1999년 다시금 메가폰을 잡은 권이상 PD는 IMF 때 사라졌던 마을 주민들을 불러모으고, 양촌리에 끝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상태네 부부를 떠나보냈다. 어엿한 처녀가 된 복길이를 위해 따로 방을 마련하고, 김 회장네 맏아들에게는 군청 산림과장이라는 ‘사회적 지위’를 감안해 승용차를 한대 선물했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달리던 김 과장의 뒷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됐지만, <전원일기>는 지난 22년 동안 이처럼 작은 변화들을 어렵사리 결정하면서 ‘현실’과 ‘이상향’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성실하게 살다가, 아름답게 떠나리

요즘 양촌리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제작여건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촬영 장소가 문제다.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서울 근교에는 양촌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한주에 두편씩, 그것도 하루 만에 촬영을 끝내야 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적합한 촬영지를 찾기가 어렵다. 제작팀은 평소 양수리에서 주로 촬영을 하고, 두달에 한번씩 벼르고 별러 경상도, 전라도 등지로 ‘외유’를 떠난다.

여느 드라마에 비해 등장인물이 훨씬 많은데 제작비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도 제작진을 곤혹스럽게 한다. 곰곰 따져보면, <전원일기>만큼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드라마를 찾기도 어렵다. 최불암, 김혜자, 고두심, 유인촌 등 중견 연기자들은 물론, 김지영과 임호 등 1996년 가세한 청춘스타들의 몸값은 ‘시세’대로 치자면 결코 녹록지가 않다. 권이상 PD는 “다른 드라마 출연료의 3분의 1 수준인 <전원일기> 출연료에 대해 불평 한마디 안 하는 출연자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얼마 전 양촌리 사람들은 올 여름 수해로 큰 타격을 입은 마을에 들러 서둘러 한회분을 촬영해 방송했다. 예정대로라면 미리 촬영해놓은 메밀꽃 화사한 마을이 방송될 차례지만, 수마가 할퀴고 간 농촌의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체 할 수는 없었다. “메밀꽃을 방송했다고 큰 비난을 받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전원일기>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거든요.”

권이상 PD는 새삼스럽게 “농촌을 살리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충격적인 상황을 만들어 아슬아슬한 재미를 주는 것도 <전원일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단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잔잔하고 성실하게, 양촌리 사람들의 삶을 중계방송할 겁니다. 욕심 같아서는 제 손으로 <전원일기> 마지막회까지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전원일기>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박수 한번 크게 쳐주세요.” 오는 일요일, 내친 김에 22번째 생일을 맞은 양촌리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주는 건 어떨까. 너무 늦기 전에. 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

< 전 원 일 기 > 주 요 연 보

1980년 10월21일 첫 방송 <박수칠 때 떠나라>

1981년 50회분부터 10년 동안 작가 김정수씨 집필.

1981년 금동이 양자로 들어옴

1981년 한국방송대상 국무총리상 수상

1982년 용식과 순영 결혼

1983년 일용 결혼

1981년 100화 <흙바람>으로 한국방송대상 극본상 수상

1984년 수남과 복길 탄생

1981년 <NHK> 특별상 수상

1986년 11월 <배추> 방송 취소

1991년 1월8일 500회 특집 <고향을 떠난 사람들> 방송

1981년 제작팀과 출연진, 방송 10주년 기념 여행

1994년 순길 탄생

1996년 일요일 오전 11시로 방송시간 변경

1981년 5년을 뛰어넘어 복길, 영남, 수남이 성인으로 등장

1997년 금동이 성인으로 등장, 상태네와 병태네 이주

1999년 3월21일 900회 특집 <새끼손가락> 방송

1981년 상태네 이주, 병태 친구 남수 등장

2000년 10월29일 방송 20주년 특집 방송

2001년 금동과 남영 사이에서 딸 인경 탄생

1981년 3월4일 1천회 특집 <양촌리 김회장댁> 방송

1981년 이 노인 역을 맡은 연기자 정태섭 사망

2002년 일요일 오전 8시40분으로 방송시간 변경

1981년 응삼과 쌍봉 재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