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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 감독의 <맨하탄>
2002-10-23

도시를 끌어안다

Manhattan 1979년, 감독 우디 앨런 출연 우디 앨런EBS 10월26일(토) 밤 10시

“영화란 건 멋진 장면 몇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워드 혹스 감독의 이야기다. 그의 말을 곱씹으면서 <맨하탄>을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찰리 채플린, 페데리코 펠리니, 잉마르 베리만 등이다. 우디 앨런은 코미디언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유럽영화의 자양분을 자신의 영화로 끌어들였다. 브레히트식 연출기법을 영민하게 소화하고 희비극을 자유롭게 다룸으로써 영화세계를 넓힌 것이다. <맨하탄>은 분류하자면, <애니 홀> 이후 우디 앨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영화로 논할 수 있다.

<맨하탄>엔 아이삭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혼경력이 있는 방송작가 아이삭은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전처는 과거의 결혼생활에 대해 쓴 소설을 발표해 아이삭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리고 아이삭은 10대 소녀 트레이시와 데이트를 시작하는데 조숙한 고등학생인 드레이시와의 관계에서 차츰 아이삭은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의 취향에 대해 경멸을 감추지 않던 메어리와 사랑하게 된다.

“그는 이 거리를 사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현대 문화의 황폐함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맨하탄>은 우디 앨런의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애니 홀>에서 그랬듯, 우디 앨런은 이제 뉴욕이라는 도시의 열렬한 예찬자가 되었다. 고든 윌리스가 촬영한 영화 속 풍경이 수려하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도시의 조형미를 가장 빼어나게 담아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밤에 질주하는 자동차,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마차를 타고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 그리고 실내에서 은은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춤추는 남녀의 실루엣까지. 흑백영화인 <맨하탄>은 질서정연하며 이상화된 뉴욕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영화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도시를 포용하듯 울려퍼지는 거쉰의 음악은 <맨하탄>을 현대 도시에 관한 영화이자 재즈영화로 묶을 수 있도록 하는 키워드가 된다.

<맨하탄>에서 우디 앨런 감독은 변함없는 고민을 투영한다. 여러 여성들과의 관계 속에서 혼란과 방황을 거듭하는 남성을 직접 연기하고 있다. 영화 결말에서 우디 앨런이 연기한 아이삭은 10대 소녀에게 오히려 충고를 듣는 경험을 한다. <애니 홀>에서처럼 여성은 영화 속 우디 앨런에게서 벗어나고 사랑은 과거시제로 환원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물들 관계가 좀더 복잡해진 것 정도라고 할까 코미디와 로맨스의 융합, 대중문화에 대한 은근한 비꼬기의 시선도 여전하다. <맨하탄>은 영화 구조면에서도 흥미로운데 인물의 대화, 그리고 휴지기의 반복적인 구조는 영화의 감미로운 리듬감을 배가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