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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남녀 에피소드 다룬 SM3 광고 두편
2002-10-23

화성남 금성녀의 후일담

제작연도 2002년광고주 르노삼성자동차 제품명 SM3 대행사 웰콤 제작사 매스메스에이지(감독 박명천)

‘멋진 녀석이 노래도 부르네. 노래할 때 정우성의 표정 연기, 캬∼ 죽이는구먼. 어라 이번엔 고소영이 카드를 긁네. 그럼그럼, 남자만 돈 내라는 법 있나 여자도 쓸 땐 써야지.’(삼성카드 광고) ‘군더더기 없는 영상미 좋고,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란 슬로건도 기억에 잘 박히는군. 근데 가슴을 때리는 무언가가 좀 부족해. 왠지 혼자 잘난 체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대단하긴 해. 다른 금융권 광고들이 너도나도 픽토그램을 활용해 단순미를 살리며 이 CF 흉내내기 바쁘잖아.’(굿모닝증권 광고) ‘비주얼 하나는 끝내주네. <델라구아다> 공연을 보는 것 같아. 벽 뚫고 달리고 점프하고, 붕 날고…. 정말 ‘Free to move’군. 아무렴, 괜히 칸 광고제(2002)에서 금상을 준 게 아니겠지.’(리바이스 광고)

요즘 브라운관을 누비고 있는 광고에 대해 사견을 전제로 자유롭게 내뱉은 ‘종알종알’의 일부다. 산고 끝에 탄생했을 남의 창작물을 놓고 즉각적인 인상으로 트집 잡고 감탄하는 게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TV를 보면 입이 간지러운 나머지 버릇처럼 미주알고주알 혼잣말을 늘어놓곤 한다. 그런데 이 CF를 마주한 다음엔 잠시 말을 잃었다. 대단한 충격을 받아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아니다. 광고가 발산하는 느낌을 조용히 음미하고 싶었다. 마치 갑갑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시골로 나들이 갔을 때 심호흡을 하며 맑은 공기를 만끽하듯 말이다.

중형차 시장에 돌풍을 몰고온 SM5의 아우브랜드인 준중형차 SM3 론칭 CF가 오감을 환기하고 있다. ‘남자’편과 ‘여자’편으로 이뤄진 이 광고는 어느 남녀의 실연 그뒤 스토리를 병렬 배치해 눈길을 끈다. 배경음악은 그룹 퀸의 <Too Much Love Will Kill You>다. 먼저 ‘여자’편. 청명하면서도 애절한 프레디 머큐리의 힘찬 목소리를 따라 쫓아오는 남자친구를 뿌리친 채 차를 몰고가는 여자가 등장한다. 표정을 보니 몹시 골이 난 것 같다. 집에 돌아온 그는 샤워기 밑에서 몸을 적시며 분노를 떨쳐내겠다는 듯 몸부림을 친다. 이때 비오는 차 안에서 안락함과 쾌적함을 맛보며 드라이브를 즐기는 상상장면이 겹쳐진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 SM3 덕분에 그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파고든다. 다음은 ‘남자’편. 여자친구와 이별한 남자는 방 안에서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며 아픈 가슴을 달래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다. 이번엔 방 안 오디오의 볼륨을 한껏 높여본다. 순간 카오디오의 소리를 최고로 올린 채 도심을 질주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 SM3 때문에 그의 입가에도 마침내 편안한 웃음이 자리잡는다.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이고 함축적인 영상으로 실연남녀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CF는 대구(對句)를 이루는 소재를 통해 슬로건의 키워드인 전환이란 메시지를 매끄럽게 전달하고 있다. ‘여자’편에서 샤워기의 물과 비, ‘남자’편에서 방 안의 오디오와 자동차 내의 오디오 등이 완결성을 돋우는 의도된 연결장치들이다. ‘여자’편에서 샤워기의 물방울이 눈부시게 방사되며 머리를 흔드는 여인의 몸짓과 어우러지는 대목은 촉감을 자극할 정도로 생생하다. 말없는 영상이 실연을 겪은 여자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훌륭하게 대변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스타일이란 게 볼 때는 멋지지만 뒷맛은 허기지기가 십상인데 시각적인 멋에만 그치지 않고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정서를 품고 있다는 점이 단연 눈에 띈다.

새롭게 시장에 나온 신차 CF답지 않게 메시지의 과욕을 세련되게 절제했다는 부분도 돋보인다. 이 광고는 특장점으로 삼을 만한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멋진 풍광을 배경으로 질주하는 자동차의 매끈한 외양을 담는 보편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차의 감성적인 역할론에 주목했다. 목표소비자인 24∼34살을 대상으로 사전 리서치를 진행한 제작진은 타깃에게 자동차가 교통수단을 넘어 사색 혹은 기분전환의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바뀌는 차’란 컨셉은 ‘우리 우울한데 드라이브나 갈까’ 같은 일상 언어의 광고 버전이랄 수 있다. 빗길을 달리는 차, 심금을 울리는 카오디오의 음악 등 광고 스토리에 녹아든 상황도 소비자의 공감지수를 극대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의 후일담엔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엿보여 흥미롭다. 이 광고는 ‘여자’편을 동적으로, ‘남자’편을 정적으로 구성했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더 매몰차게 이별하고, 화끈하게 실연을 극복한다. 하루에 2회씩 방송을 타는 1분 분량의 CF에는 금성녀와 화성남의 변별성은 더 두드러진다. 1분 길이의 광고에는 남녀의 회상신이 추가돼 있다. 남자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연인의 얼굴을 추억하는 반면, 여자는 남자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뿌리치며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되새김질한다. 사랑이 지나가면 남자는 연인과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에 남기지만, 여자는 지긋지긋했던 순간을 떠올린다는 연애의 법칙을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이 광고가 침묵의 여운을 남긴 것은 카타르시스의 영상이 매혹적이기도 했지만 사랑에 관한 개인적 상념을 자극했기 때문인 것도 같다.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