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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은 누구인가?
2001-04-13

소유냐 관리냐, 이것이 문제로다

■영화 판권 둘러싸고 투자사와 제작사 신경전, 현실적 대안 마련할 때

영화의 주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투자사인가 아니면 제작사인가. 혹은 감독인가. 얼마 전 영화계에서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 불릴 만한

일이 있었다. 영화계의 거대 투자배급사와 신생제작사가 계약 과정에서 영화 판권을 놓고 맞붙은 것. 투자사는 “해당 작품의 판권을 영구히

넘기라”는 조건을 달았고, 제작사는 “5년이 지나면 영화 판권을 돌려받아야겠다”고 맞섰다. 신생제작사인데다 여러 투자배급사를 전전했던 경우라

초강수를 뒀던 투자배급사로서나 몇몇 작품의 판권을 돌려주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제안한 제작사로서나, 이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결국

계약이 무산됐고, 해당 제작사가 다른 투자사에 둥지를 틀면서 잠잠해진 상태지만, 이번 일은 판권을 둘러싼 투자사와 제작사의 갈등이 언제든

발발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판권 개념이 영화계에 등장한 건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90년대 중반 이전만 하더라도 제작사들은 지방 배급업자에게 미리 돈을

받아쓰거나 비디오 판권을 미리 팔아 마련한 돈 등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그때는 제작사가 곧 투자사였다. 그러다 삼성영상사업단, 대우, SKC

등 대기업이 93년부터 충무로에 입성했다. 한때 삼성영상사업단에 몸담았던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는 “대기업이 등장하면서 판권 개념이 등장했다고

보는 게 맞다. 삼성영상사업단의 경우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제작사로부터 영구히 판권을 넘겨받았다”고 말한다. 대우, SKC 등도 처음과

달리 삼성영상사업단을 뒤쫓아 판권을 소유화했고, 제작사 역시 안정적으로 영화제작 자본을 마련하고 수익을 배분받는 선에서 대기업과 판권문제를

해결했다.

판권은 곧 저작재산권

사실 판권은 정확한 용어가 아니다. 일본에서 출판권, 혹은 저작권이라고 부르던 것을 국내 업계에서 변형, 통칭해 부르는 용어다. 넓게는

영상물의 저작권을 좁게는 저작재산권을 의미한다. 한결법인의 조광희 변호사는 “저작재산권은 저작권 중 하나로 양도될 수 없는 저작인격권과

달리 저작자 일신에 전속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양도, 상속할 수 있으며 남에게 자기 저작물의 이용을 허락하고 그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라고 설명한다. 제작사와 투자배급사 사이에서의 ‘판권’은 저작재산권에 가깝다.

투자배급사에 있어 투자작에 대한 판권 확보는 필수적이다. 누가 풍부한 라이브러리를 보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회사의 자산 가치가 달라진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황우현 이사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있어 브랜드 가치는 매우 중요한데, 얼마나 콘텐츠 판권을 보유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말한다. CJ엔터테인먼트의 석동준 한국영화팀장은 “투자배급사가 판권을 갖고 있는 작품의 경우 위성방송, 유료TV 등 새로운 윈도가 본격화할

때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투자배급사에 버금가는 전문 인력과 노하우를 갖고 있거나 갖출 만한 여력이 있는 제작사들이

국내에 몇이나 있느냐”며 투자사가 판권을 갖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판권이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서 투자배급사가 판권을 맡아 관리하는 것이 제작사 입장에서도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제작사들은 전문적인 투자배급사가 판권을 운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일정 기간이 끝나면 판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획시대 유인택 대표는 “투자배급사는 단지 유통사일 뿐이다. 일정한 수익을 얻기 위해 투자한 만큼 최대 수익이 가능한 시점이

지나면 판권을 제작사에 돌려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투자배급사가 예전의 대기업처럼 판권을 갖고 있다가 중도에 해체되면 제작사로서는

판권을 되찾을 길이 묘연하다는 점도 제작사가 판권 귀속을 주장하는 이유다. 대기업이 영화사업에서 철수한 뒤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제작사들이

해당 작품을 되살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삼성영상사업단만 하더라도 한국영화 14편이 판권 소유자가 공중분해되면서 꽁꽁 묶여 있다.

수익분배라는 이해 관계 때문에

하지만 CJ, 시네마서비스, 튜브 등의 투자배급사들은 대기업처럼 해체되지 않는 한, 판권은 투자사의 몫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시네마서비스의

경우 씨네2000, 좋은 영화 등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제작사의 작품에 대한 판권을 공동 소유하는 대신 발생한 수익을 지분에 따라

배분하고 있다. 최근 구체적인 계약서를 만들기 위해 제작사들과 논의하고 있는 시네마서비스는 만약 해체시엔 계약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점은 고려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갈등의 씨앗이 완전히 제거된 건 아니다. 시네마서비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판권은 제작사로부터

양도받았다기보다는 우리가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요즘 개별 작품당 평균 제작비가 웬만하면 20억원이 넘는다. 그만큼 리스크도 커졌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제작사가 책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정부분 투자가 되었는데, 돈을 더 달라고 해서 제작사에게 그만 두자거나 대충 찍자고

말하는 투자사가 어디 있겠는가. 계약서상에는 분명 제작사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지만,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는 없다. 5년 뒤에 판권을 돌려달라는

주장도 그렇다. 만약 돌려준다고 치자. 판권을 돌려주면 손실이 났을 경우 제작사가 떠맡는 것인가”라고 항변한다. 유무형의 리스크를 감수하는

만큼 판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히 투자사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CJ 역시 “우리더러 판권을 포기하라면 외화 수입만을 하라는 말과 다름없다”면서

“개별 작품마다 다르지만, 영구 수익 배분을 통한 공동 판권 소유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수익 배분이 주어진다지만 제작사는 수익 배분을 받을 권리는 어차피 판권의 일부일 뿐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명필름의 이은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판권의 경우 현재로선 제작사와 투자사, 이해 당사자간의 결정사항인 것은 사실이다. 판권을 내주고 30%의 인센티브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계약도 있다. 물론 투자사 입장에선 판권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고, 인센티브를 가장 적게 주면 최상이다. 제작사는 그 반대다. 이해

관계가 상충하는 상황에서 판권이 누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다만, 판권을 무조건 소유하고 인센티브로 대신하겠다는 투자배급사는 문제다.

판권과 수익 분배는 동일할 수 없다. 콘텐츠를 보유한 제작사가 가치를 활용할 기회 자체를 빼앗는 것은 분명하다. 리스크가 갈수록 커진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투자자가 선택한 결과다.”

소유가 아닌 관리 차원의 문제

어쨌든 최근의 판권을 놓고서 제작사와 투자사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류는 무엇보다 창투사를 비롯한 금융권 자본이 영화계에 넘쳐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메이저 제작사의 경우 굳이 불리한 판권 계약을 감수해가며 거대 투자배급사와 결합할 이유가 없다. 역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작사와 투자사

사이의 관계가 대등한 수준으로 평형을 이룰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시네마서비스의 한 관계자는 “1편 만든 제작사와 10편 만든 제작사 사이에

차등을 뒀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건 지금 상황에서 불가능하다. 신생제작사에게 그런 제안을 한다면 그 기준에 따라올 제작사는 많지 않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판권이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지 밝히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니며 법적으로도 모호하다.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펴낸 자료에 따르면 “영상저작물의

저작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저작권법상 명시적인 규정도 없고, 법원의 판례도 없으며, 학설상으로도 입장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영화

판권의 주인이 누구냐라는 논쟁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로운 윈도가 나타나지도, 활성화되지도 않은 국내 상황에서 당분간 제작사와 투자사는 역학

관계에 따라 판권을 둘러싼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싸이더스 노종윤 이사의 말은 귀담을 필요가 있다. “운용 능력이 없음에도

무조건 돌려받겠다는 제작사나 판권을 무조건 갖겠다는 식의 투자배급사 모두 문제다. 판권은 독점 소유의 차원이 아니라 관리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영진 기자

▶ 판권소유,

미국에선

▶ 문제는,

투자사에 대한 불신

▶ 유통하는

이가 주인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