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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9,세기말의 아이들 <ESP kids>
2002-11-07

애니비전

구름 위에 붕 떠 있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발버둥쳐도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 느낌이랄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 대한 글을 쓰면서, 요즘 들어 자꾸 드는 느낌이다. 많은 부분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하려는 것은 아닌지, “양치기 소년이 아니냐”는 비판이 결국 사실은 아닌지, 그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사실, 데모 영상을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인 현실에서 쓰여지는 글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는, 왜 자칫 공허해질 수 있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나. 개인의 기호를 떠나서, 결론은 하나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땀방울에 매달려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ESP kids>는 디지털드림스튜디오(이하 DDS)가 제작하는 26부작 TV시리즈다. 그동안 이 회사가 만들어온 <런딤> <아크>와 마찬가지로 3D 애니메이션이다. DDS는 그 동안 들인 공에 비해 아직 큰 성과를 내지 못한 회사 축에 든다. 그러나 이건 성급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각 작품의 제작팀은 꾸준히 움직이고 있으니까 말이다.

<ESP kids> 팀을 이끄는 것은 <용하다 용해>의 고성철 감독. 현재 5화 작업을 마친 상태로, 2003년 방영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ESP kids>는 초능력 ESP 에너지를 지닌 다섯명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로봇 액션물이다.

배경은 서기 2099년. 바야흐로 지구의 평화에 위기가 왔다. 외계인 라지칸이 그의 지배를 받지 않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를 공격한 것이다. 외계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선발된 고철 마을의 레이븐 정예 요원들. 이들은 탁월한 ESP(Extra Sensory Perception)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오랜 평화의 시대를 보내면서 게으름과 무기력함에 젖어 있었다. 지구 방위를 담당하고 있는 그린 프론티어는 런딤의 개발자 그럼 박사에게 신형 런딤의 조종사 훈련을 부탁한다. 그럼 박사는 다섯대의 런딤 출동을 위해 새로운 조종자를 뽑고, 주인공 쟈크가 이 부대에 합류하면서 레이븐 부대의 분위기는 바뀐다.

정통 공식처럼 <ESP kids>에도 박사와 다섯명의 파일럿이 등장한다. 이들의 나이는 12살에서 18살. 12살 소년 쟈크는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단순함의 결정체다. 자신이 지닌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자각하지 못하다가 파일럿이 된 뒤 조금씩 철부지 티를 벗는다. 샌디는 막내 파일럿. 로봇 액션계의 미드필더이자 레이븐의 와일드 키드로 통한다. 해머는 강인한 체력을 지닌 의리파. 레게 머리와 힙합을 즐기는 18살 맏형이다. 칼리토는 도도하지만 귀여운 15살 소년. 좌우명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17살 한나는 맏언니로,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근성으로 똘똘 뭉쳤다.

실제 로봇의 이름이 ‘런딤’이기도 한 이 작품의 캐릭터는 DDS의 전작 <런딤>과 느낌이 흡사하다. 사실 <런딤>의 연작으로 기획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의 후속편이라고는 생각하지 말길. 언뜻 그렇고 그런 3D 로봇 액션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ESP kids> 제작팀의 성실한 분위기와 열기는 믿음직스럽다. 결국 문제는 스토리겠지만, 스탭의 땀방울을 성과로 일궈내야 할 책임이 있는 감독의 어깨도 제법 무거울 것이다. 벽 전체에 붙은 세밀한 디자인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할 제작팀이 이번에는 ‘큰일’을 냈으면 좋겠다.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