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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멜로영화(1)
2002-11-08

그녀에게,그에게,사랑에게

혼수상태에 빠진 식물인간과도, 언어가 안 통하는 타인과도, 친구의 부인과도, 심지어 곰과도. 생명체와 생명체가 만나는 곳에 사랑이 있고 그곳에는 아련한 이야기가 피어나기 마련이다. 어느 해보다 추워진 계절에 찾아온 영화제, 부산의 초겨울 바람을 따뜻하게 덥혀줄 멜로드라마 몇편을 미리 호주머니 속에 챙겨보자.

<그녀에게> Talk to Her

▶ 오픈시네마/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2002년/ 112분

▶ 11월15일 오후 8시 시민회관, 11월22일 오후 8시 시민회관

그녀와 함께 살 수 없다면, 그녀와 함께 잠들 수밖에. 기자인 마르코는 정열적인 투우사 리디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리디아는 투우경기 중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다. 남자간호사 베니그노는 아름다운 무용수 알리시아를 흠모하지만 알리시아 역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다. 이 두 남자가 병원에서 만난다. 그러나 리디아가 죽어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는 마르코와는 달리, 베니그노는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알리시아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으며 지난 4년 동안 그녀를 정성껏 씻고 문지르고 이야기를 건네고 사랑한다. 그러나 두 남자 사이에 우정이 싹틀 무렵, 베니그노는 알리사아를 강간한 죄로 투옥된다.

<라이브 플래쉬>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전작들의 격한 호흡을 차분하게 고른 채 연출한 <그녀에게>는, 오픈 엔디드로 끝은 맺은 마지막 챕터를 포함해, 3개의 챕터 속에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 네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오늘 영화를 보러 갔었어….” 베니그노가 잠든 알리시아의 몸을 닦아주며 소곤소곤 전달하는 영화 속 영화, 화학약품을 잘못 마신 뒤 몸이 줄어든 남자가 연인의 질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살았다는 흑백무성영화 <줄어든 연인>(Shrinking Lover)은 알리시아를 향한 베니그노의 숭배와 갈망을 투영시킨다. 또한 리디아가 투우복을 갈아입는 과정과 알리시아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는 과정은 마치 종교의식 치르듯 표현되면서 이 영화가 ‘그녀’들에게 향하는 성스러운 시선을 느끼게 해준다.

<뻐꾸기> The Cuckoo

▶ 월드시네마/ 러시아/ 알렉산드르 로고슈킨/ 2002년/ 100분

▶ 11월21일 오후 5시 부산극장1관, 11월22일 오후 2시 대영시네마1관

4년 동안 생과부 신세, 남자 둘도 모자란다. 2차대전이 끝날 무렵.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버려진 핀란드 저격수 베이코는 천신만고 끝에 사슬을 끊고 근처 인가로 찾아든다. 그러나 그 천막엔 이미 자동차 폭발 속에 살아남은 러시아군인 이반이 사미족의 여인 아니의 간호를 받으며 누워있다. 4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가던 아니에겐 그들이 어느나라 군인이건 간에, 그저 사내로 보일 뿐이다. 하여 젊고 몸집 좋은 핀란드산 베이코가 늙고 부실한 러시아산 이반보다 상종가인 것은 분명한 사실. 각각 러시아어, 핀란드어, 사미족 부족언어 외에는 할 수 없는 완전히 꽉 막힌 커뮤니케이션 상황 속에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두 남자 사이엔 생활력 강하고 활기찬 아니를 둘러싼 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나에게 있어 전쟁은 끝났어.” 1999년 부산영화제를 찾았던 <체크포인트>로 베를린영화제를 비롯 유수의 영화제에서 인정받고 흥행성적까지 올렸던 러시아 감독 알렉산드르 로고슈킨의 최근작인 <뻐꾸기>는 전작이 그러했듯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되 이데올로기기가 아닌 포연 속에 가려진 인간들의 모습과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다. 특히 이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언어로 완전히 딴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몇몇 장면들은 웃음을 자아낸다. 시종일관 능청스럽고 건강한 유머를 선사하지만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주술적인 영상과 꽤나 극적인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가족영화 ●지옥을 보고 싶어 우리집으로 와

행복한 가정은 없다. 덜 불행한 가정은 있겠지만. <지옥 같은 우리집>이 그리는 그림은 말 그대로 ‘지옥도’다. 모든 일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다혈질의 가장, 재봉틀 정비사와 바람이 난 엄마, 포르노 잡지에서 담배까지, 나쁜 짓만 골라 하는 사춘기 막내아들, 어떻게 하면 아버지 눈을 피해 남자친구와 섹스를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작은딸, 이처럼 하나같이 ‘따로국밥’인 가족들의 갈등은 미국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던 큰딸의 귀국으로 절정을 맞는다. 그러나 작은딸의 결혼식을 엉망으로 망쳐버린 큰딸의 스트립쇼 이후 가족은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반대로 <작은 불행>은 가족이란 서로 차갑게 증오하다가도 서로 어깨를 맞잡고 눈물을 흘리곤 하는 묘한 관계란 사실을 매우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어머니의 죽음으로 덴마크의 한 가정은 슬픔에 빠진다.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남편과 두 딸, 아들, 남편의 동생의 삶은 각각 바뀌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지만, 이는 결국 이들을 매어놓은 인연의 끈이 질기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도그마의 영향권 아래 있음이 분명한 아네트 올슨 감독은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이들 가족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이들 사이에 치솟는 불길과 한없는 평화, 음험한 비밀과 신성한 소통을 담아냈다. 아쉬갈 바섬바기 감독의 <할레드>는 죽은 아빠의 시체에 이불을 덮고 세상에 알리지 않던 정재은 감독의 단편 <도형일기>의 소녀를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 토론토의 빈민 지역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10살 꼬마 할레드는 병에 시달리던 엄마가 죽자 사회기관에 맡겨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를 숨긴 채 평상시처럼 생활한다. 엄마의 시체가 썩어들어가는 와중에 먹을 것은 떨어지고, 집주인은 집세를 닦달하며, 사회복지사는 자꾸만 찾아온다. 황량한 도시를 홀로 살아가려는 씩씩한 소년 할레드는 현관에 바리케이드를 친 채 일전에 돌입한다. <의리없는 전쟁> 등 굵직굵직한 남자영화를 선보였던 사카모토 준지의 최신작 <내가 사는곳>은 의외로, 향수 가득한 따뜻한 영화다. 어린 이타와 니타 형제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가 다른 장성한 누나만을 남겨놓은 채 또 어딘가로 홀연히 떠나가고 만다. 하지만 아이들은 외롭지 않다. 가히 대체가족의 판타지라 할 만한, 저마다 문제투성이지만 마음만은 착한 동네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욘드 사일런스>의 카롤리네 링크가 연출한 <노웨어 인 아프리카>는 또 다른 삶의 터전에서 가족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다. 2차대전 발발 직전 독일계 유대인 레드리히 가족은 나치를 피해 아프리카로 간다. 처음엔 미개한 환경과 고립감이 업습해오는 아프리카 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은 점점 그곳의 사람들과 자연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한다. 광활한 아프리카 대륙의 다채로운 풍경과 메뚜기떼의 습격 등 압도하는 듯한 영상미는 이 영화의 백미.

시간표

지옥 같은 우리집 All Hell Let Loose / 월드 시네마/ 스웨덴/ 수전 타슬리미/ 88분 / 11월16일 오후 8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2시 메가박스8

작은 불행 Minor Mishaps / 월드시네마/ 덴마크/ 아네트 올슨/ 105분 / 11월18일 오후 8시 부산 2, 11월21일 오후 8시 메가박스5

할레드 Khaled / 월드시네마/ 캐나다/ 아쉬갈 마섬바기/ 85분 / 11월17일 오후 2시 대영1, 11월20일 오후 8시 메가박스5

보쿤치- 내가 사는곳 Bokunchi - My House / 아시아영화의 창/ 일본/ 사카모토 준지/ 116분 / 11월15일 오후 5시 부산2, 11월18일 오후 5시 메가박스6

노웨어 인 아프리카 Nowhere in Africa / 오픈시네마/ 독일/ 카롤리네 링크/ 141분 / 11월15일 오후 1시 30분 시민회관, 11월17일 오전 11시 시민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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