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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부산 국제영화제/정치·역사 영화(2)
2002-11-08

신의 뜻,혹은 인간의 오만

아라라트 Ararat

▶ 월드시네마/ 캐나다/ 아톰 에고얀/ 115분

▶ 11월15일 오전 11시 대영3, 11월20일 오후 8시 부산1

87년 전의 나비가 일으킨 폭풍. 1915년 터키는 국경지대에 거주하던 아르메니아 출신 주민들 100만여명을 학살한다. 그리고 거의 1세기 전 벌어진 이 역사적 사건은 지금의 캐나다로 날갯짓을 보낸다. 이 사건을 영화화하려는 아르메니아 영화감독이 캐나다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곳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계 청년 라피는 감독의 운전사로 일하며 자신이 몰랐던 과거를 알게 되고, 한 터키계 캐나다인은 가해자로서의 멍에를 안게 된다. 라피의 어머니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한 사건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하고, 라피의 여자친구는 구원(舊怨)을 쏟아낸다. <아라라트>는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문제와 증오의 대물림을 다룬다. 라피는 이 영화작업을 통해 아르메니아인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테러리스트라는 낙인이 찍힌 아버지를 용서한다. 물론 전작에서도 그랬듯, 에고얀은 거대한 역사뿐 아니라 개인들의 작은 역사, 그리고 상처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어딘가 허전해보이는 여러 캐릭터들은 서로의 작용과 반작용 속에서 블랙홀처럼 벌어진 삶의 균열을 마주한다. <아라라트>는 미로 같은 이야기 안에서 현재와 과거, 개인과 집단적 역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이어 있음을 보여준다.

2001년 9월11일 11’09’ 01-September 11

▶ 오픈 시네마/ 프랑스/ 감독 켄 로치 외 10인/ 135분

▶ 11월15일 오후 5시/ 11월17일 시민회관 오후 8시

`두 개의 탑` 주제에 의한 열한개의 명상곡. 프랑스 프로듀서 알랭 브리강이 기획한 은 11개국 11인의 감독이 감지한 9·11 사태의 여진이다. 40만달러의 예산, 11분의 러닝타임, 사태의 비극성을 착취하지 말 것, 특정 종교나 문화를 공격하지 말 것 등 몇 가지 기본 규칙을 지키는 한 감독들은 자유롭게 작업했다.

테러 참극의 물질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모레스 페로스>로 알려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감독편. 비극 현장 사운드와 이미지의 파편을 액션 페인팅하듯 스크린에 뿌려댄다. 반면 클로드 를루슈와 이드리사 우에드라고는 각각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장르의 복화술로 9·11을 말한다. 가난한 아프리카 소년의 오사마 빈 라덴 현상금 사냥을 그린 우에드라고의 단편은 9·11 사태에서 유머를 발굴한 대담함과 따뜻한 감성으로 눈길을 끈다. 9·11과 같은 날 터진 텔아비브 테러 현장을 묘사한 이스라엘의 아모스 기타이와 9·11 쇼크 속에서도 스레브레니카 학살에 대한 월례 항의집회를 계속하는 미망인들을 그린 대니스 타노빅은, 지역의 절박한 이슈가 9·11 사태의 그늘에 가리는 경향을 경계한다. 나아가 유세프 샤힌과 켄 로치의 단편은 미국이 테러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1973년 9월11일 닉슨 정권이 지원한 쿠데타와 학살을 고발한 켄 로치의 단편은 ‘또 하나의 9·11’을 단호한 어조로 상기시킨다. 그런가 하면, 당사국 미국의 감독 숀 펜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고독한 노인의 침침한 아파트에 빛이 스며드는 기적의 순간을 참혹한 붕괴의 순간과 일치시킨다. 영화는 다시 이나리투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신의 빛은 우리를 인도하는가 눈멀게 하는가

블러디 선데이 Bloody Sunday

▶ 오픈 시네마/ 영국·아일랜드/ 폴 그린그래스/ 110분

▶ 11월20일 오후 8시 부산시민회관, 11월22일 오후 5시 대영1

피의 악순환, 첫번째 총탄이 날아가다.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인 <블러디 선데이>는 북아일랜드에서 벌어진 ‘피의 일요일’ 사건을 정면으로 그려내는 영화다. 1972년 1월30일 북아일랜드의 데리에서 영국 정부의 억압적인 정책에 항의해 시민권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가 열린다. 갈수록 높아지는 북아일랜드의 목소리를 경계하고 있던 영국 정부는 수천명의 군인을 파견하고, 이들의 발포로 시위대 중 13명이 사망한다. 이날의 발포는 영국 정부에 대한 아일랜드의 타오르는 분노에 기름을 부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 사건 직후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일랜드공화군(IRA)에 가입해 영국과 아일랜드의 무장투쟁은 격화된다. 얼핏 종군 뉴스기자의 생생한 화면을 연상케 하는 <블러디 선데이>는 각기 다른 입장에 처한 4명의 주인공을 내세운다. 영화는 이 시위를 주도한 이반 쿠퍼 목사를 비롯해, 이 시위에 참여하면서 흥분하게 되는 북아일랜드 청년 제리, 발포 명령을 내리는 영국군 장교 등으로 시점을 긴박하게 이동하며 사건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이 영화가 유난히 생생하다면, 그건 아직까지도 양자 사이에 증오와 분노의 도화선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티라나 영년 Tirana Year Zero

▶ 월드시네마/ 알바니아·벨기에·프랑스/ 파트미르 코치/ 89분

▶ 11월20일 오후 5시 메가박스5, 11월22일 오후 5시 메가박스5

낡은 도시, 그러나 유쾌발랄한 사람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사람들에게 꿈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연료가 없다고 기차가 서지 않나, 정전 때문에 극장이 암흑천지가 되질 않나, 그것도 억울한데 동네 양아치들이 극장에서 총을 쏘며 설치기까지 하니 티라나에서의 삶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듬직한 청년 니쿠만큼은 고물 트럭과 함께 이곳을 지키려 한다. 애인 클라라마저 떠나려는 상황만큼은 서운하지만. <티라나 영년>은 낡아빠지고 쓸모없어 보이지만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니쿠의 트럭처럼, 알바니아에 대한 애정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영화다. 정치와 역사의 삐걱이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진득한 사람들 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의 이름은 볼리바 Bolivar Is Me

▶ 월드 시네마/ 콜롬비아/ 호르헤 알리 트리아나/ 2002년/ 92분

▶ 11월17일 오후 2시 부산2, 11월20일 오후 2시 메가박스6

남미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의 서글픈 전락. 산티아고는 TV 시리즈에 남미의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로 출연 중인 배우다. 지나치게 배역에 빠져든 그는 자신이 볼리바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뜻하지 않게 콜롬비아 대통령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나의 이름은 볼리바>는 통일된 남미대륙을 꿈꾸었던 볼리바의 이상 같은 것은 오래 전에 잊은 콜롬비아를 쓴웃음으로 풍자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모든 사람은 볼리바의 이름을 들먹인다. 대통령은 볼리바의 인기를 이용하고, 하층계급 사람들은 볼리바가 다시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방송국은 볼리바의 쓸쓸한 말년을 각색해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고자 한다. 그 가운데서 산티아고 혹은 볼리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권력 싸움과 불평등, 테러리즘이 난무하는 남미에서, <나의 이름은 볼리바>는 어이없는 결말로 치닫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케드마 Kedma

▶ 월드 시네마/ 프랑스+이스라엘/ 아모스 기타이/ 2002년/ 100분

▶ 11월20일 오후5시 부산3, 11월22일 오후 5시 부산2

이스라엘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수난의 역사, 그 끝 또는 시작. 아모스 기타이의 화두는 언제나 ‘이스라엘’이다. 신작 <케드마>는 이스라엘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 서사극. 1948년 5월, 나치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건국을 위해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찾아든다. 영국군은 유대인 이민자들을 실은 배 ‘케드마’의 불법 상륙을 막기 위해 무력을 쓰고, 결국 ‘생존’을 위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을 일종의 신화처럼 묘사하고 있는 <케드마>는 올 칸영화제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감독 엘리아 술레이만의 <신의 간섭>과 나란히 소개되며, 비교쌍을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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