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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전 열리는 김수용감독
2002-11-13

“아직도 내 머리 속엔 새 영화가 꽉 차 있습니다”

-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을 맞이하게 되셔서 기쁘시죠. 어떤 심정입니까.

= 그동안 부산영화제에서 김기영 감독, 유영길 촬영감독, 유현목, 신상옥 감독 등의 회고전이 열릴 때마다 따라 다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 좋겠다’하는 생각으로 그 자랑스런 얼굴들을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 회고전을 한다고 하니까 긴장하게 되고 내놓고 좋아할 수만은 없게 되더라구요. 이번에 상영되는 7편의 작품들은 60, 70, 80년대에 만든 작품들인데, 오늘의 관객들이 이 영화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 그때 좀더 작품의 완성도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무튼, 회고전을 앞두고 혼자서 감동하는 것은 이들 영화가 시대를 초월해서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 이미 감독님의 영화가 시대를 넘어서 있는데,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 올해 여성영화제에서 <야행>을 상영하는데, 검열에서 50여군데나 걸려 훼손된 상태의 버전을 틀었어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한 남자 대학생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에게 영화를 보는 것은 자는 거다, 그런데 <야행>을 보면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떤 면이 나로 하여금 잠을 못 자게 했는지 궁금하다, 이러더군요. 그 학생 말이 영화의 스토리보다는 묘사되고 있는 남녀의 감성 같은 게 너무 충격적이고 새로웠다는 거예요. 시대가 많이 흘러도 이렇게 알맹이가 전달된다는 것이 작은 행복이라 할 수 있죠.

- 이런 유치한 질문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회고전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입니까.

= 사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언젠가 내가 만든 109편 중 20편의 자천작을 뽑은 적도 있어요. 남들의 말로 내가 전통주의와 모더니즘의 가교를 놓았다는데, 전자의 경우로는 <갯마을> <산불> 같은 영화를 사랑하고 모더니즘적 경향으론 <안개> <야행> 등도 사랑합니다. 사회고발성 영화론 <도시로 간 처녀> <망명의 늪> <화려한 외출> 같은 것도 있죠. 그때 그때는 다 당위성에 입각해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돌이켜 보면 너무 많은 장르를 겁도 없이 건드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전통주의, 또는 문예영화에서 1편, 모더니즘 영화에서 그래도 1편씩만 짚어주신다면요?

= 사실성을 바탕으로 서정성을 추구한 <갯마을>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해석을 가한 <안개>가 개인적으로 소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 감독님은 ‘문예영화의 대가’로 불립니다. 실제로 감독님의 영화 중 상당 부분이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만든 것인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 뭐 꼭 그런 게 있는 것은 아니고.... 워낙엔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사람이에요, 내가. 식민지 교육을 10년 받았는데, 감수성이 예민하던 어린 시절에 일본어로 된 문학전집을 읽었습니다. 그게 바탕이 된 것 같아요. 50년대 말 영화를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주제 보다 재미였어요. 제작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웃기고 슬프다가 클라이맥스를 거쳐서 반전으로 가면 된다’,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 게 싫어서 내 영화를 소설에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을 했어요. 현진건의 <무영탑>, 이광수의 <유정>, 김승옥의 <무진기행> 같은 한국 소설 뿐 아니라 모파상의 <테스> 등 외국 소설까지 영화로 옮겼습니다. 이런 작품들로 50편을 만들었습니다.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소설가들로부터 가장 문학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는 트로피까지 받았습니다.

- <안개>나 <야행>은 당시 시대 상황에선 몇 발 앞서 나간 작품이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혹시 외국영화 감독 중 영향받은 분이 있나요?

= <안개>가 만들어진 다음에 외국에서 ‘한국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란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식>이나 이런 영화들은 그 다음해에 한국에 들어왔어요. 어쨌든 영향관계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감독은 없죠. 다만 스탠리 큐브릭은 누구보다 좋아합니다.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사회성을 제거하고 봐도 인간의 문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는 데 있어선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 이번 회고전은 <중광의 허튼 소리>의 복원판을 볼 수 있게 돼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 그 영화는 15군데, 5분 20초 분량이 공윤의 가위질에 잘렸던 작품입니다. 그 이후로 화가 나서 은퇴를 선언했고, 95년 <사랑의 묵시록>을 만들 때까지 청주대에만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잘렸던 장면들은 별다른 게 아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허수아비를 만난 중광이 자기가 입고 있던 누더기 옷을 다 허수아비에게 입혀준 뒤 발가벗고 뛰어가는 장면이나 중광이 죽은 여자 시체를 벌거벗고 끌어안고 체온을 나눠주는 장면 등이었거든요. 중광이 설악산에서 한국전쟁 때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한데 묻은 뒤, “너는 남한의 장군이냐, 너는 평양에서 온 인민군 병사냐. 앞으로 여기서 절대로 싸우지 말고 영생하여라”고 말하는 장면도 잘렸습니다. ‘어떻게 남한의 장군이 인민군 병사와 동급일 수 있냐’는 것이었죠.

- 어떻게 복원판을 만들게 됐나요.

= 영상물 등급위원회에 들어와보니, 공윤 때 가위질한 필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더라구요. 2년 전 쯤엔 이 필름을 보관할 장소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것들을 영상자료원에 자료로 제공했습니다. 거기서 오랫동안 꾸준히 잘린 장면들을 찾았던 모양입디다.

- 결국 민감한 질문을 드릴 수밖에 없겠는데요. 한국영화계에서 검열의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감독님께서 등급위원장을 하시면서 이런 저런 시끄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곤란한 심정이셨겠습니다.

= 아플수록 사실, 내가 이 조직의 수장으로 있다는 죄 밖엔 없는 것 아닙니까. 소위에서 매겨서 올라온 것을 갖고 나는 날인하는 것이고, 대외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매스컴들도 그래요. 내 고민을 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찌 됐건 나는 시간이 지나면 등급위도 사라지고, 감독이 자신의 창작물을 갖고 양심적으로 틀고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술 창작에 있어 보다 표현의 자유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어쨌건 ‘<죽어도 좋아> 사태’가 일단락돼 마음은 편안하실 것 같습니다.

= 이 사태가 불거지고 나서 박진표 감독이 날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중앙대 3학년 시절에 내가 강의한 영화감독론을 배웠는데 인상적이었다고 하더군요. 이때 나는 확신했습니다. 사제지간의 대화가 있는 한 큰 걱정 안해도 된다고, 잘 해결될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 당장이야 등급위원장으로서 바쁘시니 어렵겠지만, 조만간 만들어질 110번째 영화에 대한 구상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지금 내 머릿 속엔 영화가 꽉 차 있습니다. 여건이 어렵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오랜 동료 제작자들과 함께 세계영화제에서 각광받을만한 작품을 의논하고 있습니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