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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해안선>
2002-11-14

<해안선>

한국, 2002년, 95분

감독 김기덕, 오후6시30분 시민회관, 오후7시 부산1, 2, 3

꾸준히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탐구해온 김기덕 감독의 여덟번째 영화. 부산영화제의 개막 상영을 통해 세계 최초로 공개돼 더욱 관심을 모은다. 스타급 배우인 장동건이 자진해서 출연 결정한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주인공인 강상병은 해병으로서의 자긍심이 유난히 높은 인물. 그는 국가권력이, 그리고 군대조직이 명령한 바를 120% 실현하려는 매우 적극적 순응성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때문에 모든 것이 ‘과잉’인 그는 평소 동료 병사나 마을 주민과도 마찰을 빚곤 한다.

어느날 밤 해안선 초소를 지키던 강 상병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등을 발견하고 두려운 나머지 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그가 죽인 것은 무장공비가 아니라 철책선 안에서 미영와 정사를 벌이던 마을 청년 영길이었던 것. 시체를 똑똑히 바라보면서 강 상병은 충격에 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상부는 강 상병에게 포상휴가를 준다. 휴가 나온 첫날부터 강 상병의 상태는 정상이 아닌 듯 보인다.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강 상병은 갈수록 난폭해지고,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 결국 군대는 정신 이상으로 인한 의가사 제대 판정을 내리지만, 그는 자신이 여전히 해안선을 지키는 해병이라고 생각하며 부대 주위를 맴돈다. 군복을 입은 채로 해안선에 나온 그는 후배 해병들에게 얼차려 기합을 주기도 하며, 동료들과 대립을 빚기도 한다. 한편 눈 앞에서 총알에 맞아 숨지는 영길의 모습을 봤던 미영은 정신적 충격으로 미쳐버리고 부대 주위를 돌며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는 신세가 된다. 미영의 오빠는 강상병을 협박하기도 한다. 영화는 점차 미쳐가는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서 진정 미친 것은 강 상병과 미영인가, 아니면 그들을 그런 지경으로 몰고간 조직과 사회인가를 묻는 듯하다.

김기덕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늘 특수부대 무장을 하고 해안을 자학적으로 뒹굴고 분단의 녹슨 철조망을 뚫고 기습침투하던 한 해병이 떠오른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그 살기를 소모하며 살아갈까?”라며 이 영화가 스스로의 기억 어딘가에 자리했던 이야기임을 밝히고 있다.실제로 해병으로 근무했던 김기덕 감독 자신의 체취가 묻어나는 <해안선>은 우리 사회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폭력성을 고발하려는 듯 보인다. 한편 그동안 시적 표현이나 판타지의 은유를 자주 사용하곤 했던 김기덕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이같은 표현 대신 직설적인 필치를 동원함으로써 “김기덕의 영화 가운데서도 가장 하드보일드한 작품”이라는 평가마저 얻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해안선>은 그동안 김기덕이 자신의 영화 세계를 통해 추구하던 주제를 다시 한번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작품세계를 예고하는 신호탄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