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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서플먼트의 은밀한 매력(8)
2002-11-14

프로덕션

서플먼트의 매력 7 <인랑> 등과 미술 : 위대한 손의 거대한 마술

<공각기동대> 등을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오시이 마모루의 작업은 항상 경탄을 자아낸다. 그의 후배 오키우라 히로유키가 연출했고, 오시이 자신은 기획과 시나리오를 맡은 <인랑>(SRE코퍼레이션 출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80억원 이상의 제작비와 1천여명의 인력이 투입돼 3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아날로그애니메이션 최후의 대작’은 컴퓨터그래픽 대신 엄청난 수작업을 통해 무시무시할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정교한 영상을 보여준다.

아날로그애니메이션의 극한을 보여주는 <인랑> 제작과정의 전모는 2장의 디스크와 500페이지가 넘는 오리지널 스토리북으로 구성된 DVD 박스세트를 통해서 그 일단이 드러난다. 특히 미술과 관련된 내용은 한 장면을 작업공정별로 비교분석할 수 있는 기능을 비롯해 85장에 달하는 캐릭터 그림과 16장의 무기 그림, 37장의 차량 그림, 36장의 배경화면 그림을 담고 있는 서플먼트 디스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엄청난 미술작업을 보고 있으면 <인랑>에서 드러나는 뛰어난 영화적 표현력의 정체가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아니라 뛰어난 연출력과 섬세한 스토리보드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메뉴는 여러 장면을 간략하게 묘사한 ‘레이아웃’부터 그에 바탕해 그린 ‘원화’, 이를 바탕으로 거칠게 움직이는 그림을 만든 ‘동화’, 그리고 영화 완성본의 순서대로 차례로 비교해볼 수 있는 ‘갤러리’. 이를 애니메이션의 제작순서에 맞춰보지 말고 완성본으로부터 시작해 원화까지 나아가면서 거꾸로 살펴보면, 그 몇초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그림이 필요한지 짐작하게 된다. 이중에서도 스케치북 모양으로 디자인된 ‘원화’ 항목을 꼼꼼히 보고 있으면, 약간 구겨진 듯한 종이의 질감이 느껴지고, 지우개로 데생을 지운 흔적도 어렴풋이 드러나 그림 뒤에서 힘을 기울이고 있는 한 인간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작품이 컴퓨터그래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DVD에서 소개하는 대로 CG가 사용된 네 장면을 보고 있으면, 다소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 전체에서 CG는 납골당 장면에서 팻말이 흘러가는 영상과 책 안의 텍스트 모양을 묘사하는 등에만 쓰였다는 것이다. 이는 총을 쏘고 난 뒤 총구에서 살포시 피어오르는 연기와 실감나는 물에 대한 묘사, 어두운 가운데서도 윤곽을 선명하게 하는 조명 등 너무도 사실적인 느낌을 줬던 영상들이 모두 아날로그로 표현됐다는 사실을 뒤집어 말하는 셈.

사실,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 작품이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당연한 듯 보이기도 한다. 보는 이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안개라든가 딱딱하게 굳어 있지만 미묘한 감정이 스쳐가는 캐릭터들의 표정을 묘사하기 위해선 영혼이 깃든 손길이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인랑>의 서플먼트를 살펴보는 것은 이 디지털 시대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 영역이 존재함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이 영화가 주는 묘한 감동에는 스토리나 캐릭터 외의 다른 요소가 자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문석 ssoony@hani.co.kr

추천작 베스트 3

▣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_ 워너브러더스

책 속에만 존재했던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통째로 보여줘야 했던 이 영화에선 미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차지했다. 마법의 세계를 탐험하듯, 복잡한 구조의 DVD 타이틀을 뒤지다보면 엄청난 분량의 미술작업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도서관’의 가장 왼쪽 책을 열면, 기본적인 디자인들이 펼쳐진다. 골든 스니치 같은 퀴디치 장비 일체와 님부스2 같은 빗자루, 용, 날아다니는 열쇠 등 상상력 없이는 표현할 수 없는 아이템들을 볼 수 있다. 또 ‘둘러보기’ 메뉴에서는 호크와트 학교의 내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

▣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_ 스펙트럼

<해리 포터…>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 중간계를 배경으로 하는 탓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야 했다. 특히 자연의 생김새조차도 ‘디자인’해야 했던 탓에 미술 관련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통해 중간계의 모습이 뉴질랜드의 독특한 자연에 프로덕션디자이너의 상상력을 덧붙여 탄생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한 화면보다는 뉴질랜드의 자연에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세트가 이 영화의 더욱 중요한 배경이었음 또한 알게 된다.

▣ <글래디에이터>_ CJ엔터테인먼트

고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야 하는 영화인만큼 미술의 비중이 높았다. ‘스틸 갤러리’의 ‘Behind the Scene’ 항목을 보면, 영화로운 로마 시대를 묘사하기 위해 커다란 건물부터 작은 건물의 간판, 그리고 실내의 자그마한 액세서리까지 일일이 디자인해 배치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로마 시내의 모습은 거대한 규모에 비해 상당히 정교해 영화촬영만을 위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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