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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애(密愛)밀담(密談) 변영주,전경린과 스치다(4)
2002-11-14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불륜을 허하라!

변: 미흔은 어찌 됐을까. 의사 가운만 봐도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비극일까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꼭 그리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가장 빛나는 한때에 대한 갈망 같은. 사진을 찍는 그 순간 미흔은 이미 딴 남자를 만나고 있을 수도 있다. 활력은 불행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을 아낀다. 난 항상 그랬다. 가장 불행한 순간에 가장 거대한 활력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장 불행했던 연애가 날 가장 성장시켰다.

전: 영화에서 사진을 찍는 미흔은 금방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사랑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없어 보이는 미소가 좋았다. 소설에서 사랑은 부정된다. 소설의 미흔은 규와 게임을 하다 자기 열정에 의해 혼란에 빠진 거다. 마지막에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남았을 수도 있고 영화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 것을 잉태한 채로 끌고 가다가 새로운 삶을 맞았을 거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이 인생이 안전하기를 희구하고 바라고 믿는다. 그런데 인생이 절대 안전한 게 아님을 한번 확실히 깨닫고 나면 안정에 기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 30대 여자의 성장이고 살면서 변할 수 있음이 삶의 보람일 수도 있다.

변: 그래서 <내 생에…>는 청춘소설일 수 있다. 30대들에게 네 주제에 무슨 중년이고 기성 세대야라고 말하는.

전: 왜 벌써 인생의 닻을 내린 것처럼 그 자리에서 썩어지도록 살아보려고 하느냐라고 묻는 거다. 요즘 젊은 부부들 많아야 애가 둘인데 아이가 유치원만 가면 생기는 공백을 과연 부부의 결합력만으로 메우고 늘어난 수명을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그건 거의 종교적인 집착이다. 그런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안 믿는다. 앞으로 가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텐데 불륜이니 하는 단어를 아직 쓴다는 게 그렇다.

변: 불륜이 한국에서 많은 이유 하나는 결혼을 빨리 해서 그런 것 같다.

전: 한국에서 불륜이 많은 건 불륜이라고 부르니까 많은 거다. 그렇게 사랑에 빠졌을 뿐인데. 적어도 수용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불륜이라는 것 자체가 뻔한 일인데, 안 되는 구조를 갖고 몰아붙인다고 어쩌겠는가.

변: 소설을 읽으며 갈수록 어딘가로 더 멀리 치닫는 데에 깜짝깜짝 놀란다. <열정의 습관>을 읽고는 프로듀서에게 “어디로 가는지 보고 2년쯤 있다 만들까” 묻기도 했다.

전: 새로 낸 소설에서는 많이 변했다고들 한다. <내 생에…>를 지나지 않았으면 도착하지 못했을 지점에 도착한 기분이다. 내 소설을 통해 실현하고 도전하고 싶던 것을 보고 이제 현실에 관대해진 느낌이다. 다음 소설도 실은 사랑하는 여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이제 높은 소리는 안 지를 거 같다. 나름대로 지불을 하고 지나왔기에 지금은 사랑에 대해서 더 긍정하고 있고. 무언가를 공유한 사람들의 게임 이상의 인간애가 들어 있는 영화를 보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구나라고 안심했다.

변: 나의 다음 영화는 좀더 퇴폐적이거나 좀더 허접한 청춘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 있다. 섹스신은 평생의 연구 과제일 것 같다.

전: 나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널린 이야기 속의 비밀을 말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글을 쓴다. 전철 안에서 모르는 여자들이 다가와 내게 아는 체를 할 때 아, 이 사람이 그 여자구나 생각한다.

변: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강박이 ‘빙의’를 낳는다. 사랑이 뭔가 굉장히 특별해야 할 것 같고 더욱 지고지순해야 할 듯한 강박들 말이다.

전: 벽에 직면했을 때 내가 사랑하고 있는지를 확신하게 된다. 보통의 사랑을 할 때는 어째 흉내 같기도 하고 내 마음도 그 사람의 마음도 알 수 없지만, 불가능한 사랑에서는 자기가 진정 어디까지 나아가고 싶어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랑은 특별하지 않아도 판타지다. 그것 없이는 삶이 불가능한. 또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문화의 최대치를 이용한다. 문화의 깊이만큼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변: 흠, 데이트 자금을 문예진흥기금에서 지원하면 어떨까 정리 김혜리 vermeer@hani.co.kr/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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