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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애(密愛)밀담(密談) 변영주,전경린과 스치다(2)
2002-11-14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불륜을 허하라!

# 인규, 그 남자에 대해

변: 의대를 졸업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가 못 견디고 한달 뒤에 도망나와 쪽팔려서 시골 보건소에 틀어박힌 사람을 안다. 인규도 세상이 아니라 자기가 싫어죽겠는 남자다. 대부분의 남자는 세상 때문에 자기 신세가 이렇다고 탓하지만 인규는 자기를 탓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태도다.

전: 중년 남자들은 자식과 아내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고 툴툴거리며 아침 얻어 먹는 둥 마는 둥 나갔다가 한잔 걸치고 들어왔다 다시 출근하기를 반복한다. 꼭 사랑해서가 아니라 결혼할 시점에 가장 가까운 상대와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 벌어먹이느라 매여사는 남자의 인생은 여자들이 이러니저러니해도 불쌍하다. 왜 어떤 남자가 아주 이기적으로 이 세계를 냉소하지 않는가 “내가 너에게 한번 반해 발목 잡혀 새끼 낳았다고 평생 노예살이야”라고 반문하면서. 규는 “나는 그럴 의사가 없다. 사랑했다고 인생 저당 잡히는 일은 못한다”고 말하는 남자다. 돈 많은 미망인과 별정 우체국 하나 차려서 마음에 드는 여자 나타나면 같이 놀고. 왜 남자들은 그렇게 현명하지 않을까 여자들이 독신으로 결혼하지 않고 나아가듯 남자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변: 나는 그런 남자를 그릴 자신이 없었다. 존재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양을 가두는 법을 알아요” 따위의 생뚱맞은 대사나 하고 영화 속에 들어가면 재수없는 놈밖에 안 된다. (웃음) 인규에게 들일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고 과거의 상처를 줌으로써 설명을 줄였다. 그러면서 내 삶이나 말투가 규에게 많이 투사됐다. 예컨대 “그거 잘 안 될 텐데”는 내 말버릇이다. 규를 데리고 원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셈이다.

전: 아줌마들도 “솔직히 미흔이 같은 여자는 쌨지만 대체 규 같은 남자는 어디 있느냐”고 묻더라. 소설은 규를 충분히 설명하는데 가만 보니 영화는 참 시간이 없어 보이더라. 원작에서 우체국을 규의 일터로 택한 건, 정말 세상에서 긴장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일이 우체국 일이 아닐까 해서였는데, 엘리트라는 남자들이 규의 처지가 무척 부럽다고 하더라. 영화에서는 규도 변했지만 규와 미흔의 관계도 변했다. 사랑이 긍정됐고 사랑의 약속을 하고 같이 떠나니까.

변: 아닐 수도 있다. 그들은 사랑을 확인한 게 아니라 내쳐진 거다. 이종원씨가 “나 안 죽이면 안 돼요” 묻기에 선택하랬다. 조용히 죽든가 속리산 관광호텔쯤 가서 같이 머물다 3일 만에 헤어져야겠다고 깨닫고 헤어지든가. 차라리 죽겠다고 하더라. (웃음) 규를 ‘쿨함’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던 건 나란 사람이 쿨하지 못해서다. 사랑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아픔은 배신이 아니라, 죽도록 누굴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다음날 딴 사람이 좋아질 때였다. 그럼 그런 내가 사랑에 쿨하냐. 아니다, 순간의 감정에 무척 끈끈하다. 영원하지 않을 걸 안다고 갈라설 수 있나 지금 필요한 만큼은 끝까지 가고 싶은 거 아닌가 그게 사랑이 아니어도 좋으니 각자의 미련과 욕망에 솔직해 달라고 배우들에게 주문했다.

# 그 여자, 그 남자의 정사

전: <밀애>의 섹스신은 참 착하더라. 규가 집안까지 밀고 들어오는 장면처럼 “저것들이 미쳤나보다” 하면서도 납득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는데. 영화를 같이 본 작가들이 영화 혹은 배우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경계가 느껴진다고 하더라.

변: 이 영화는 미흔의 모험활극이다. 나쁘고 매력적인 걸 남자에게 주고 싶진 않았다. 마지막 정사장면만큼은 “들이밀고 어디 한번 와 봐!”하듯 원칙에 충실히 찍으려 했는데 배우들이 한번만 살려달라고 해서 눈물 흘리는 섹스신이 됐다.

전: 누군가 “그 장면 이종원 연기 좋지 않았어 얼굴이 퍼레지면서 눈물이 흐르잖아” 하니까 옆의 여자가 “그건 서서 무게를 받치며 하느라 힘들어서 그래” 하더라. (폭소) 감상이 아니라 절정 자체의 속성에서 흐르는 눈물이라 좋았다.

변: 섹스신은 너무 힘들었다. 머리 속에서는 여성의 육체가 대상화되고 누구의 쾌락을 위한 것이고 등등을 생각하지만 실제로 여성을 상품화하는 포르노를 보면서 여자들도 쾌락을 느끼도록 훈련되기도 했으니까 어려웠다. 영화를 보는 여성들이 젖기를 바라면서 표현의 선을 고민했다. 그것이 남자의 벗은 몸을 많이 보여주는 방식은 아니었다. 섹스신은 정말 중요했다. 대충 해놓고 미흔이 “내가 잘했나요” 대사를 하면 말도 안 되잖아.

전: 그런데 첫 정사신에서는 미흔이 한 일이 없는데, 뭘 잘해…. (웃음)

변: 몸만 열면 되는 거였다. <밀애>는 삽입의 영화가 아니라 흡입의 영화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찍든 욕먹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뭐 그리 지은 죄가 많다고 데뷔작을 이리 힘들게 가나 싶기도 했다. 미흔에겐 마지막의 뒷모습 전라만 요구했다. 옆방 신음이 들리는 허접한 모텔 방 복판에서 밖으로 나가버리는 기분으로 전진해라. 규에겐 섹스신이 100이라면 85까지는 성기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달라고 부탁했다. 고민이 많았는데 여자가 가슴 덜렁대며 헉헉거리는 인터넷 동영상 보고 “아, 이렇게만 안 찍으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정말 보여주고 싶었던 건 섹스가 끝난 뒤 둘이 전라로 널브러져 대화하는 풀숏이었다. 그런데 성기 노출은 검열에 걸릴 테고 상반신만 찍으면 남자는 입은 것처럼 여자는 벗은 것처럼 보인다. 스타들의 섹스신은 보통 결정이 어렵지 촬영은 쉽다. 그런데 우리 배우들은 풀숏에 발끝부터 돌리(dolly)도 미니까 줄곧 연기를 해야 했다. 또 하나 보여주려던 것은 남자의 반응 숏이다. 영화의 섹스신에서는 남자 얼굴을 잘 안 보여주는데, 섹스할 때 남자들 얼굴 되게 재밌지 않나 정말 진지하게 세상의 모든 고뇌를 짊어지고 앞으로 전진하는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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