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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만원 쓰는데 7년 걸렸어요”
2002-11-15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장 이승진

2002년 아시안 게임 개막식 당일에 소요된 예산이 170억, 열흘 동안의 일정으로 국내외 게스트, 관객을 맞는 부산영화제의 올해 예산액은 30억이 조금 넘는다. 스폰서로 나섰던 기업과의 갑작스런 스폰서쉽 결렬 등으로 예산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던 작년에 비하면 조금 나아진 상황이긴 하지만, 국제 영화제의 위상과 서비스를 요구받는 부산영화제 입장에선 턱없이 부족하기만 한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발상의 전환 덕분에 작은 예산으로 큰 변화를 일궈냈다. 영화제의 달라진 모습 그 하나는 사무국 풍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60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 파티션 몇 개로 엉성한 구획을 지어놓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일렬의 파티션 종대로 편리하게 짜여진 사무실 한 켠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무국 스탭들의 표정과 행동에서 때아닌 여유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 패닉에 가깝도록 정신 없던 사무국 풍경이야 이미 졸업한 지 오래지만, 이토록 정돈되고 느긋한 사무국 풍경은, 1회부터 부산영화제에 참여해 온 사무국장 이승진(33)씨의 무려 7년에 걸친 싸움 덕분. 사무실의 효율적 공간 구획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작은 결과물 앞에 그는 흐뭇한 웃음과 함께 집행 내역을 꺼내든다. 파티션의 구입에 든 돈은 불과 250여 만원. 그 정도의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그보다 급한 사안들이 지금껏 예산 내역서 곳곳을 채워왔다는 얘기다. “당장 발등에 불을 끄는 게 더 시급했죠. 사무실 환경 개선이야 게스트 초청과 상영관 임대 같은 문제에 비한다면 차후로 밀릴 수 밖에요. 하지만, 사무실 풍경이 바뀌니 다들 더욱 심기일전하는 것 같아요. 그게 젤 뿌듯하죠” 작지만 큰 배려는 이 뿐만이 아니다. 홍보팀에서 일할 때 자원봉사자 담당까지 도맡았던 그는 자원봉사자에게 지급되는 값싼 노역비(?)에 미안한 맘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올해, 그동안 부산영화제를 거쳐간 2천여 자원봉사자 출신들에게 애틋한 마음의 선물을 마련했다. ‘홈 커밍 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스페셜 이벤트는 자원봉사자로 일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밑바닥에서 굴러 본 사람만이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이기에, 한 해도 거르지 않고 7년간 꼬박 쌓아 온 현장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심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