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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마드모아젤?<8명의 여인들>
2002-11-15

8명의 여인들 8 Women

프랑스, 2002년, 103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16일 오후7시 시민회관

서동진/ 영화평론가

1950년 프랑스 시골의 어느 저택이 아침, 예정보다 빨리 방학을 맞아 집에 도착한 카트린느가 아버지의 방으로 갔을 때 아버지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숨져있다. 집의 전화선은 모두 끊겨 있고,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 탓에 집안의 여자들은 발이 묶인다. 그리고 더욱 끔찍하게도 이 살인의 범죄자는 집안에 있던 여자들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과연 아버지, 남편, 정부를 죽인 그 여자는 누구인가. 프랑수아 오종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통속 소설에서 빌려온 듯한 저택 살인의 미스테리를 펼쳐 보인다. 물론 이는 빅토리아적인 부르주아 가정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로버트 알트만의 <고스파드 파크>와 전연 닮은 데가 없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고스파드 파크>는 반목하고 적대하는 계급(하인과 몰락하는 귀족과 신흥 부르주아)을 재현하며, 오랫동안 영화의 역사에서 사라졌던, 계급의 심리적인 전기를 쓰려고 한다. 반면 프랑수아 오종은 에서 정신분열적인 패스티시를 경유하며 포스트모던 시대의 여성성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조각그림을 그리려내고 있다. 알트만이 근대적인 계급의 초상을 그리는 시늉을 취한다면, 오종은 탈근대적인 정체성의 희화를 그려내는 것이다.

은 험하게 말하자면 ‘나쁜 년들’에 대한 영화이다. 8명의 여인들은 배신과 음모, 탐욕과 치정, 자기연민과 열정에 몸서리치는 여자들이다. 오종의 포스트모던한 냉소주의는 “과연 여자들은 무엇을 욕망하는 것일까”라는 유명한 프로이트의 물음을 변주한다. 물론 그 변주의 주인공은 여자의 욕망을 마침내 알아내고 그녀로부터 환심을 사려는 남자가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겉모습을 한번도 믿어본 적이 없는, 언제나 본심은 다른 어디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여자들이다. 서로가 모두 형식적으로 범죄 혐의자의 지위에 올랐을 때, 여자들은 기꺼이 각자를 범죄자로 지명할 수 있다. 그녀들 각자의 평소의 아름답고 품위 있는 행동은 어차피 모두 가짜이고 위장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서로의 모든 윤리적 행위가 은밀하고 사악한 욕망을 가리는 베일일 뿐이라고 믿어왔다. 따라서 8명의 여인들은 모두 각자를 고발하고 비난할 수 있다. 은 바로 이런 베일 들추기를 통해 여성에 관한 여성의 분석을 시도한다. 그래서 또 재미있다.

은 카트린느 드뇌브를 비롯한 8명의 우아한 여배우들을 내세워 그들을 ‘망가뜨린다’. 더글라스 서크나 파스빈더를 연상시키는 멜로의 관례를 인용하거나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뮤지컬을 끌어들이면서 또는 철지난 유행가와 키치한 미장센을 듬뿍 화면에 바르면서 오종은 종횡무진한다. 이런 주변에 널린 것들만으로도 은 매력적이다. 물론 이런 주변의 군더더기들이 또한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이란 것도 잊지 않아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