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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들> 8 Women
2002-11-16

8명의 여인들 8 Women

오픈 시네마/ 프랑스/ 2002년/ 103분

감독 프랑수아 오종 / 오후7시 시민회관

누가 마르셀을 죽였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범인으로 모는 동안, 우리의 불쌍한 마르셀이 8명의 여인들의 등쌀에 얼마나 시달렸는지가 알려지며, 가족이라는 안온한 가면에 가려있던 각 여성의 진짜 모습 또한 드러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올해 초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둔 특이한 코미디 뮤지컬. 극단적인 표현 양식과 과감한 주제 선정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오종의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파리 교외의 한 집에 가족들이 속속 모여든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재회의 기쁨을 채 나누기도 전에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이 집의 유일한 남성인 마르셀이 침대 위에서 등에 칼을 맞은 채 살해된 것이다. 전날 밤부터 도로가 폐쇄될 정도로 많은 눈이 왔던 탓에 범인은 8명의 여인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는 노릇. 게다가 죽은 이의 장모, 아내, 딸, 동생, 하녀, 정부 등 8명의 여자들에겐 모두 마르셀을 살해할만한 동기가 있으니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싸움을 벌이게 된다. 전형적인 ‘Who-Dunnit Movie’(제한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 중 누가 범인인지를 가려내는 영화)의 구도로 출발하지만, 사실 여기서 누가 마르셀을 죽였는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범인으로 모는 동안, 우리의 불쌍한 마르셀이 8명의 여인들의 등쌀에 얼마나 시달렸는지가 알려지며, 가족이라는 안온한 가면에 가려있던 각 여성의 진짜 모습 또한 드러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그러는 와중에도 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오히려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 여성들은 자신이 의심받을 때마다 그동안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아왔는지, 또는 자신이 얼마나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인지를 증명하듯 노래 한곡을 죽 뽑고, 다른 여성들은 그녀의 진심에 감동받는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엉뚱한 순간에 엉뚱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통에 웃음을 참기 어렵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지점은 무엇보다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들이 세대 별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뉘엘 베아르 뿐 아니라 현재 프랑스 최고의 청춘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비르지니 르도양까지 출연하니 캐스팅을 죽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느낌을 준다. 또 하나, 오종의 영화답게 성에 대한 파격적이고 흥미로운 묘사까지 겻들여진다는 점. 8명의 여인들 중 이성애자가 도무지 흔치 않아 보이니 보는 이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카트린 드뇌브와 파니 아르당이 뒹구는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면으로 꼽힌다. 이처럼 프랑스 최대의 스타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매력이다. ‘못생긴’ 이사벨 위페르나 드뇌브의 촐랑대는 모습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맛보지 못한 선물이다. 어쩌면 이 영화가 구사하는 유머는 우리 정서와 다를지도 모르지만 중도에 포기해선 안된다. 즐거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는 이 영화의 8명의 배우에게 ‘개인 예술 공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