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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 민규동
2002-11-16

“당신의 색깔은 무엇입니까 “

-2001년 9월 11일-

프랑스/ 2002년/ 135분

감독 아모스 기타이, 사미라 마흐말마프, 이마무라 쇼오헤이, 켄 로치

클로드 를루쉬, 미라 네어, 유세프 샤이네, 숀 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나리투

다니스 타노비치, 이드리사 우에드라고

17일 오후 8시 시민회관

2001년 9월 11일, 한국에서 한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뉴욕에 있는 게 아닌지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파리에서 천재가 불운하게 인생을 마감하는 29세의 위기를 넘기고, 또다시 한 해가 지나, 만 30년을 다 살고, 31세를 맞이하기 몇 시간 앞에 있었다. 삼십대를 받아들이는 긴장감으로 굳어 있던 얼굴 위로, 어떤 자가 세계 무역센터에 폭탄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래? 그랬구나. 강 건너에 불이 났구나. 전화는 금새 끊어졌고, 그 이벤트로 얼굴의 긴장은 조금 풀어졌다. 만 31살이 되어서야 사태가 어떻게 됐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어떤 일들은 사람들에게 입장을 표명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그런 일들이 보통 일들보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1년 전 뉴욕의 사건은 전 세계의 모든 나라에게 어느 편에 손을 들 것인가를 강요했고, 그래서 수많은 나라들이 현재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줘야만 했다.

이 영화 속을 여행하다보면 감동과 분노와 유치함과 수치스러움 그리고 소외감까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다. 그것은 로마가 군사력과 법과 문화로써 세상을 뒤덮고 있던 때나 지금이나 옷도, 집도, 자존심도 하나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은 천진난만한 페르시아와 메소포타미아의 후예들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사에서 천연기념물적인 존재인 켄 로치의 정치적 건재함과 승리와 패배의 쓰라림을 다 관통했던 전쟁 세대 출신인 이마무라 쇼헤이의 세상을 달관한 유머와, 모든 걸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아이 엠 샘’의 영화 때문이기도 하다. 우둔하고 잔인한 자들에 의한 세상의 독재를 반대하는 소수 인종을, 변함없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비뚤어진 신의 사생아로 몰아붙이는 감독들은 날 쓰라리게 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보는 자마다 다른 취향으로 해석될 성질의 것이다.

하여 이 영화는 현실과 영화가 얼마나 상호작용하며 존재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스로 또 얼마나 세상에 가까이 있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관객들의 재미는 바로 각각의 단편들이 그 질문에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했는지를 지켜보는 데에 있다.

사건 일주년을 맞이해 세계적으로 개봉된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나 또한 질문 하나를 받았다. 나한테 그 사건에 대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이 왔다면, 나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건널 수 없이 먼 강 건너라고 착각하며 불구경을 해 온 난 아직도 그 곤혹스런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대신 일년 전 그 날, 한 사이트의 게시판에서 읽은 어느 한국인의 절규를 기억해 본다. ‘폭력은 저주받아야 합니다. 우리 미국의 聖戰을 지지합시다. 그런데 3차 세계대전 나면 수능 연기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