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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매> <소매치기> <2001년 9월11일> <청매죽마>
2002-11-17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한국, 2002년, 115분

감독 박기복, 오후5시 대영6

죽은 아들의 말을 전하는 무당의 목소리를 들은 적 있는가? 시퍼렇게 날선 작두에 오른 무당의 춤사위를 본 적 있는가? 자신의 몸을 귀신에게 빌려주는 여인에게 어떤 고통이 따르는지 상상해본 적 있는가? <영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는 제 몸을 희생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무당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인천에 사는 박미정 보살은 27살에 내림굿을 받고 강신무가 됐다. 10년간 무당으로 살고있지만 그녀는 자기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의 굿을 통해 죽은 자와 해후하고 화해와 용서의 눈물을 쏟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녀는 희생을 받아들인다. 객사한 아들을 보고 싶은 어머니는 박미정 보살이 굿을 하는 동안 그녀의 몸에 들어간 아들의 혼과 다시 만난다. 진도의 강신무 박영자씨. 그녀는 무당인 동시에 평범한 촌아낙이다. 고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박영자씨의 삶은 물욕과 아무 관련이 없다. 어느날 굿을 하다 어머니의 혼이 들어와 시름시름 앓고있는 그녀를 보는 것은 안타깝다. 아무리 몸이 아파도 그녀는 간절히 굿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러 간다. 진도의 세습무 채둔굴 할머니, 대를 이어 무당의 삶을 살았던 할머니는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다. 자식도 남편도 남아있지 않은 산골 마을 농가에서 할머니는 조용히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이 땅에 얼마남지않은 세습무가 그렇게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포항의 별신굿 풍어제로 시작해 채둔굴 할머니의 사망소식에 이은 동생 채정례 할머니의 씻김굿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무속신앙을 하나의 전통문화로 바라본다.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발전시켜가며 유구한 세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무속은 다른 어떤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핵심에 성스러운 희생정신을 담고있다. 이제는 미신이라고, 사기라고 배척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씻김굿을 하며 오열하는 무당의 모습을 보노라면 당신도 마음이 흔들릴 것이다. 정결하고 고귀한 죽음의 의식이 그속에 담겨있다.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 <냅둬> 등 부랑자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박기복 감독의 이번 작품은 제작에 3년이 걸린 영화다. 박기복 감독은 민속박물관에서 씻김굿을 녹화한 비디오를 보고 감동받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 1년6개월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여러가지 굿의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깝지 않지만, 교양다큐멘터리의 내면에는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희생하는 자의 성스러움이 숨쉬고 있다. 남도의 푸른 하늘과 추수가 끝난 텅빈 들판, 할머니들의 깊게 팬 주름과 신들린 무당의 눈물이 카메라에 담길 때 영화는 상세한 보고서에서 서정적인 시로 탈바꿈한다.

남동철 기자

<소매치기> Pickpocket

스리랑카, 2002, 85분

감독 린턴 세마쥬 오후8시 메가박스6관

소매치기 카말은 자신이 훔친 낯선 남자의 지갑에서 아내의 사진을 발견한다.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의심하게 된 카말은 혼란에 빠져 번민하지만, 차마 아내에게 대놓고 묻지는 못한다. 임신한 그의 아내는 다른 가족의 생활비일지도 모르는 돈을 훔쳐서 먹고 사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다른 직업을 구해 아내를 만족시킬 만들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는 카말. 그는 지갑의 주인을 찾아 교외와 도심을 방황하기 시작한다.

<소매치기>는 영화제가 아니라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스리랑카의 영화다. 이름만 익숙할 뿐 전형적인 이미지 하나 떠올리기 힘든 나라지만, <소매치기>의 이야기만은 그리 낯설지 않다. 노점에선 반짝이는 종이로 접어만든 바람개비를 팔고, 그칠 줄 모르는 기차의 소음이 철길 옆에 기대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밤을 뒤흔든다. 아시아 많은 나라들이 겪었고, 겪고 있을 이 풍경들은 <소매치기>가 도달하는 비극의 뿌리와도 연결된다. 시골집을 떠난 많은 소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외롭게 살고 있는 도시의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 돌아가면 좋을까. 고단한 삶이 먼지로 물질화되어 얼굴에 앉은 듯 피곤해 보이는 카말은 자신을 괴롭히는 의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매치기>는 카말이 헤매는 거리와 겹쳐지면서 보다 풍성해진다. 혼잡한 도시 거리에 선 카말은 낯선 시골길을 따라 걸을 때보다 더 이질적인 존재다. 그의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 기차와 자동차, 약간의 위로를 전하는 바람개비 파는 노인도 서로의 표면을 미끄러지듯 겉돌 뿐이다. 그러고 싶지 않으면서도 자꾸 엇나가기만 하는 카말의 마음처럼.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이것은 나의 달>에 출연하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감독 린턴 세마쥬는 그 자신의 마음마저도 속이려고 하는 사람의 표정보다는 정직하게 감정을 투영하는 대기와 풍경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불안하게 눈길을 비껴가는 카말과 그 아내. 그들이 웅크린 위태롭고 초라한 집 한칸과 그들이 모처럼 함께 나선 먼지날리는 길은 한번도 친절한 적이 없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선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리라 믿었던 고향마저도 등을 돌린다. 카말의 아내는 집에 가고 싶다 애원했지만, 그곳엔 차라리 가지 말았어야 했던 것이다. <소매치기>는 이국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국적과 달리 우리 모두의 기억을 자극하는 영화다.

김현정 기자

11‘09’01-September 11

프랑스 , 2002년, 135분

감독 켄 로치 외 10인

오후 5시 시민회관 오후 8시

프랑스 프로듀서 알랭 브리강이 기획한 은 11개국 11인의 감독이 감지한 9·11 사태의 여진이다. 40만달러의 예산, 11분의 러닝타임, 사태의 비극성을 착취하지 말 것, 특정 종교나 문화를 공격하지 말 것 등 몇 가지 기본 규칙을 지키는 한 감독들은 자유롭게 작업했다.

테러 참극의 물질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모레스 페로스>로 알려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 감독편. 비극 현장 사운드와 이미지의 파편을 액션 페인팅하듯 스크린에 뿌려댄다. 반면 클로드 를루슈와 이드리사 우에드라고는 각각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장르의 복화술로 9·11을 말한다. 가난한 아프리카 소년의 오사마 빈 라덴 현상금 사냥을 그린 우에드라고의 단편은 9·11 사태에서 유머를 발굴한 대담함과 따뜻한 감성으로 눈길을 끈다. 9·11과 같은 날 터진 텔아비브 테러 현장을 묘사한 이스라엘의 아모스 기타이와 9·11 쇼크 속에서도 스레브레니카 학살에 대한 월례 항의집회를 계속하는 미망인들을 그린 대니스 타노빅은, 지역의 절박한 이슈가 9·11 사태의 그늘에 가리는 경향을 경계한다. 나아가 유세프 샤힌과 켄 로치의 단편은 미국이 테러의 피해자일 뿐 아니라 가해자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1973년 9월11일 닉슨 정권이 지원한 쿠데타와 학살을 고발한 켄 로치의 단편은 ‘또 하나의 9·11’을 단호한 어조로 상기시킨다. 그런가 하면, 당사국 미국의 감독 숀 펜은 아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고독한 노인의 침침한 아파트에 빛이 스며드는 기적의 순간을 참혹한 붕괴의 순간과 일치시킨다. 영화는 다시 이나리투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신의 빛은 우리를 인도하는가? 눈멀게 하는가?

김혜리 기자

<청매죽마> 靑梅竹馬

대만, 1985년, 105분

감독 에드워드 양, 오후2시 메가박스7

<해탄적일천>(1983)에 이은 에드워드 양의 두번째 장편영화로 <타이베이 스토리>로 불리기도 한다.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아룽과 커리어우먼 슈첸은 오랜 연인이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인 아룽에 비해 슈첸은 같은 직장에 다니는 한 남성과도 끈끈한 관계를 맺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비단 슈첸의 정부 문제나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둘의 관계는 권태와 염증으로 가득차 있다. 어느날 슈첸은 직장을 잃고, 아룽은 오래 전 야구선수로 함께 뛰던 친구를 만나면서 둘의 관계는 더더욱 멀어져만 보인다. 결국 아룽과 슈첸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대만의 과거사를 탐구함으로써 정체성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온 허우샤오시엔 감독과 달리, 현대성이라는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해온 에드워드 양 감독의 면모가 드러나는 작품. 현대 도시로서의 타이베이를 지독하게 무미건조한 필치로 그려내는 이 영화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대성에 대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인물들을 도시 풍경 또는 현대적 주거공간인 아파트 내부의 기하하적 선으로 분절해 놓아 관계의 단절 내지는 해체를 보여주는 미장센이 돋보인다. 또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를 넋 놓고 보거나 가라오케에서 일본 엔카를 열창하는 아룽의 모습에선 일본이나 미국문화의 영향권 아래서 살고 있는 대만과 대만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도 엿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남자 주인공 아룽 역으로 양 감독의 친구였던 허우샤오시엔 감독이 출연했다는 점. 젊은 시절 더벅머리 청년인 허우샤오시엔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프로 연기자로 나서도 큰 손색이 없을 정도의 열연도 흥미롭다. 대만 뉴웨이브의 양대 산맥인 두 사람이 한 작품을 통해 만났다는 점도 의미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문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