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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인들> 감독 프랑수아 오종
2002-11-17

“영화를 통해 똘레랑스나 열린 영혼을 표현하고 싶어”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서 뭔가 ‘발견’을 하기를 원하는데, 성에 대한 발견은 어떨까 싶다. 나는 성이 그 사람을 가장 잘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영화를 통해서나 실제 삶에서 성적인 시도를 많이 해보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해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프랑수아 오종이라는 이름은 분명히 낯설기 짝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얼마 전 서울에서 그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상영하는 자리가 마련되고 또 부산에서는 신작 이 상영되는 것을 계기로 그는 단번에 한국의 젊은 영화팬들을 매료시키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이번에 부산을 찾은 게스트들 가운데에서 젊은 관객들이 가장 만나보고 싶어하는 인물로 꼽힐 정도로. 영화들마다 도발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만 그것과는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대단히 수려한 외모를 가진 이 프랑스의 재능 있는 신예감독을 만나 그의 영화(세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영화라는 매체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 내가 어릴 적에 우리 아버지가 8mm 무비 카메라를 갖고 계셨다. 아버지는 휴가갈 때마다 그걸 이용해 이것저것을 찍어오셨는데, 그걸 보면 어떻게 이렇게 유치하게 찍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가서 친척이 세례받는 것이라든가 결혼식 같은 것들을 찍게 되었는데, 내가 찍은 것들을 보니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그 후로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 카메라 뒤에 살짝 숨어서 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영화감독이 된 것 같다.

영화를 전공한 것으로 아는데 학교 다닐 때는 구체적으로 주로 어떤 공부를 했는가?

- 학교에서 영화 이론에 대한 수업도 많이 들었지만 이론 수업 시간에 배우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카메라를 들고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더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네필이 되어야만 좋은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영화관에 가서 현재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시네마테크를 찾아서 과거의 중요한 영화들을 보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시네필로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하게 다가왔던 영화는 무엇이었는가?

- 내 인생에서 일종의 전환점이 된 영화는 꽤 많이 있지만 굳이 가장 중요한 한 편을 들자면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독일 0년>일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닥치는 대로 마구 보았는데, 그저 재미만 주던 그 많은 영화들 가운데에서 이 영화만은 정말로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전쟁 후 파괴된 독일에서 당시 나랑 비슷한 소년이 살아가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도 상당히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가 젊었을 때 썼던 희곡을 가지고 다분히 파스빈더적이라고 할 만한 방식으로 <워터드랍스 온 버닝 락> 같은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고.

- 나는 파스빈더가 상당히 중요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굉장히 많은 작품을 만들고는 단명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파스빈더와 같은 삶을 추구하고 있기는 한데 그렇다고 단명한 것까지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그랬다가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은 2년밖에 남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는 파스빈더를 전후 유럽 최고의 시네아스트라고 꼽고 싶다. 그는 유일하게 독일의 원죄 같은 것에 대해 자문해 본 감독이었다.

당신은 영화들 속에서 기발하고 도발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악동’이라든지 ‘우상파괴주의자’라든지 하는 별명을 선사받았는데.

- 사람들이 내게 어떤 식의 평을 하지는 모르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다. 담임선생님이 나더러 ‘프랑수아는 참 상상력이 풍부하구나’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칭찬이 아니었다. 한 번은 선생님이 급우에 대한 인물 묘사를 해오라는 숙제를 내 준 적이 있었다. 나는 실제 인물 묘사를 하지 않고 마리 조르제트라는 가상의 인물 - 프랑스에서는 상당히 촌티가 나는 이름을 가진 -을 만들어냈다. 못 생긴 우리 담임선생님에 빗대어 이 인물을 묘사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짐작하고 있던 선생님이 아이들 보는 앞에서 나를 야단을 치고는 내가 숙제해갔던 것을 북북 찢어버렸던 것이 기억난다.

당신 영화들에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소 대담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편인데 그것을 가지고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 나는 내 영화를 통해서 톨레랑스를 보여주거나 열린 영혼을 표현하고자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서 뭔가 ‘발견’을 하기를 원하는데, 성에 대한 발견은 어떨까 싶다. 나는 성이 그 사람 자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내 영화를 통해서나 아니면 실제 삶에서나 성적인 경험이나 시도를 많이 해보게 하면 어떨까, 그래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해보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은 여성들만이 등장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조지 쿠커의 1939년작 <여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 두 영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여인들>을 리메이크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는데, 알아보니까 이 영화의 리메이크 판권이 이미 멕 라이언과 줄리아 로버츠에게 넘어가 있더라. 게다가 <여인들>은 너무 미국적인 영화이기에 좀 더 프랑스적인 영화를 만들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지금의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거의 세 세대에 걸친 프랑스 영화계의 스타들을 한데 모으는 데 어려움 같은 것은 없었는가? 특히 프랑스 영화사의 전설적인 존재인 다니엘 다리외를 캐스팅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

- 다수의 스타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으는 데 대해 사람들은 불가능할 거라고 말들 했지만 나는 그런 시도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여배우들도 그러고 싶어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전작인 <사랑의 추억>이 상당히 성공을 거둔 편이었고 그 영화 속에서 샤를롯 램플링이 연기했던 캐릭터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여배우들이 이 감독이랑 작업하면 나도 그처럼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고 내 프로젝트에 호의적으로 참여한 것 같다. 다니엘 다리외에 대해 말하자면 그녀는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하고 존경했던 배우다. 다리외를 영화 속에서 굳이 집안의 할머니 역을 맡게 한 것은, 그녀가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 카트린느 드뇌브의 모친 역할을 여러 번 했고 드뇌브와 몇 편의 영화에 같이 출연했기 때문에 둘이 서로 잘 알고 잘 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리외는 유머 감각도 상당히 풍부하고 작업할 때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나는 <사랑의 추억>을 찍을 때 그녀에게 내 영화에 출연해줄 수 있느냐고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다리외에게 제안한 역할은 양로원에서 죽어 가는 마음씨 고약한 노인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역할은 연기하기 싫다고 했다. 대신 마약을 하는 할머니 같은 역할을 준다면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 괴짜 같은 노인 역을 그녀에게 맡겼던 것이다.

은 출연하는 배우들 각자가 갑자기 뮤지컬 영화 속에서처럼 노래하는 장면들이 하나 씩 있는 게 보는 이의 흥미를 끄는데, 이건 어떻게 착상한 것인가?

- 원작에는 영화에서처럼 노래하는 장면 같은 건 없다. 내 영화 속에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도입해보고 싶었다. 여덟 명의 여배우들이 모두 유명하다보니까 그 중 누구 하나를 부각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노래를 부르는 3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각자 자신을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연극에서 모놀로그를 하는 것처럼 배우들로 하여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프랑스 내에서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스스로 정의해본다면.

- 글쎄…. 이번에는 또 어떤 소재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 종잡을 수 없는 영화감독이랄까? 어떤 하나의 에콜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고. 프랑스 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신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나는 새로 영화를 만들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과 유사한 영화를 만든다면 나도 재미가 없고 관객들도 재미없어 하지 않을까? 만일 내가 혹은 <워터드랍스 온 버닝 락2>를 찍는다면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나는 다음 영화에서도 새로운 것을 시도할 것이고 그런 만큼 관객들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길 바란다.

당신과 비슷한 연배의 프랑스 영화감독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으로 특별히 높이 평가하는 이는 누구인가?

- 현재의 프랑스에는 상당히 주목할만한 영화감독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벨 바그 시대가 영화사적으로 중요했고 현재의 영화감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의 영화감독들은 또 다르다고 본다. 이들은 훨씬 더 자유롭고 생각이 열려 있는 편이기 때문에 아시아영화, 프랑스영화, 미국영화, 이란영화 등을 가리지 않고 두루 보면서 영향을 받고있고 또한 지금 시대의 영화만이 아니라 과거의 영화들에서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스파르 노에, 브뤼노 뒤몽, 클레어 드니처럼 뭔가 찾고 실험하는 영화감독들을 좋아하고 그들에게 끌린다.

당신의 핸섬한 용모를 보면 영화 출연 제의를 받은 적이 있는지 혹은 스스로 영화에 출연하는 데도 관심이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 영화에 출연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거절해오고 있다.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보다는 카메라 뒤에 있는 걸 좋아하고 또 내가 스스로 통제를 하는 걸 좋아한다. 때문에 감독이나 작가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건 싫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달라.

- <스위밍 풀>(Swimming Pool)이란 제목의 영어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작품 구상을 위해 프랑스에 온 영국인 추리소설 작가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가 될 것이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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