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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달레나 자매들> <섹스는 코미디다> <샌드위치 맨> <몽환 부락> <잼 필름즈> <바닷가에서>
2002-11-19

<막달레나 자매들> The Magdalene Sisters

오픈 시네마/영국/피터 뮬란/2002년/119분

<막달레나 자매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등 보는 이의 가슴에 격랑을 일으키는, 매우 선동적인 영화다.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광경을 무덤덤하게 지켜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막달레나 자매들>은 쉽게 결속하고 유대하지 못하지만, 따로 또 같이 ‘탈출’을 기도하는 자매들을 통해, ‘살아야 한다’는, ‘떠나야 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막이 열리면, 독실한 카톨릭교 집안에서 성대한 파티를 열고 있다. 그런데 한편에선 앳된 얼굴의 소녀가 또래 사촌에게 강간을 당하고 있다. 충격에 휩싸인 소녀가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 축제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귀엣말로 이 ‘사고’의 전말이 퍼져나가는데,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 소녀에게 꽂히는 시선은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책망과 경멸이다. 졸지에 소녀는 방탕한 죄인으로 몰리고 참회를 위해 수녀원에 보내진다. 그녀 뿐이 아니다. 이른 나이에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은 소녀, 타고난 미모와 끼를 주체하지 못해 어른들의 눈밖에 난 소녀가 나란히 이 수녀원으로 떠밀려 들어온다. 너무 어리숙하거나 똑똑해서, 너무 아름답거나 추해서, 부모와 사회로부터 ‘죄인’으로 판정받은 여성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된 노동과 학대의 시간, 노예와 다름 없는 삶이다. 수녀들은 원생들의 세탁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세며, 반항하는 원생들을 매질하고 또 모욕하며 거듭 말한다. “너희는 이제 세상의 악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그 ‘잔인한 자비’ 앞에 원생들은 생기와 의욕을 잃고 시들어간다.

<막달레나 자매들>은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등 보는 이의 가슴에 격랑을 일으키는, 매우 선동적인 영화다.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광경을 무덤덤하게 지켜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체 그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가, 그것을 판단하고 단죄할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감히 그 칼자루를 쥔 이는 세상의 악과 유혹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반발하고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막달레나 자매들>은 쉽게 결속하고 유대하지 못하지만, 따로 또 같이 ‘탈출’을 기도하는 자매들을 통해, ‘살아야 한다’는, ‘떠나야 한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사회의 부적응자 또는 부적격자 판정을 받은 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영혼을 잠식당하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여성판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 부를 만한 작품. 1960년대 아일랜드의 한 수녀원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됐던 억압과 착취의 기록을 다룬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바티칸의 심기를 건드렸고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감독 피터 뮬란은 켄 로치 영화의 배우(<내 이름은 조>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출신)답게 자신의 ‘좌파’ 성향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카톨릭 교단의 적의에 찬 반응에 “카톨릭 교회가 아일랜드에서 어떻게 젊은 여성들을 억압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여성의 자유와 성, 교육, 노동의 신성함을 억압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모든 신앙을 비난하는 영화”라고 항변한다. 그 말이 옳다. 이 영화가 건드리고 있는 건 특정 신앙이나 사건이 아니라, 보편적인 여성의 문제다. 올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박은영 기자

<섹스는 코미디다> Sex is Comedy

월드 시네마/프랑스/2002년/101분/감독 카트린느 브레야/ 오후 8시 대영시네마1관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은 <로망스> <팻 걸> 등 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장에 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그가 탐구하고 조명하는 섹슈얼리티의 세계는 남성의 관음적 욕망에 봉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일상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여성들을 따라가곤 했다. <섹스는 코미디다>는 그러한 전작들을 만들어 온 과정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담은 영화.

“말은 거짓이고, 몸은 진실이지. 이제부터 진실을 탐구해야 해.” <섹스는 코미디다>는 섹스에 관한 영화, 그런 영화 찍기에 대한 영화로, <로망스> <팻 걸>의 촬영 후일담이자, 카트린느 브레야의 자전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 깨달음이란, ‘몸말’의 중요성을 감독 대신 전하는 배우들의 임무는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옷을 벗는 것보다 훨씬 힘겹고 중요한 일은 먼저 마음을 벗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닐 터. <섹스는 코미디다>에서는 그렇듯 옷에 앞서 마음을 벗기려는 감독과 그런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않으려는 배우들의 실랑이가, 때로 코믹하게 때로 비장하게 펼쳐져 나간다.

섹스신 촬영을 앞둔 여감독 잔느는 주연 배우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새침한 여배우는 옷 벗기를 꺼리고, 냉소적인 남자 배우는 개런티 때문에 ‘해준다’는 식이다. 이런 상황이니, 사소한 러브신에도 아무런 느낌을 담아낼 수 없는 감독의 수심은 날로 깊어만 간다. 소품 담당자는 커다란 인조 성기를 준비하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배우의 장난으로,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돼 버린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구상한 그림들이 뒤엉키면서, 잔느는 ‘어디로 가야 할지’ 완전히 길을 잃는다. 고독한 싸움이지만, 잔느는 충직한 아군의 존재도 실감한다. 히스테리가 극에 달하던 어느 촬영날, 스탭들을 모두 내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잔느가 내린 결론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 결국 ‘마음을 벗고’ 섹스신을 촬영한 여배우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고, 잔느는 통곡하는 여배우에게 달려가 포옹한다. 그들은 비/로/소 해낸 것이다.

카트린느 브레야 감독은 <로망스> <팻 걸> 등 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장에 관한 충격적인 보고서를 만들어 왔다. 그가 탐구하고 조명하는 섹슈얼리티의 세계는 남성의 관음적 욕망에 봉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일상적이고 과격한 방법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여성들을 따라감으로써, 매번 거센 찬반 양론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섹스는 코미디다>는 그러한 전작들을 만들어 온 과정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담은 영화. ‘여성의 성애는 어떤 것이고, 과연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인가’는 카트린느 브레야가 스스로에게 무수하게 던졌을 법한 질문이다. <섹스는 코미디다>를 통해 우리는 그런 감독의 고뇌와 좌절, 깨달음과 성장의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박은영 기자

 

<샌드위치맨> 兒子的大琓偶

대만, 1983년, 108분

감독 허우샤오시엔, 완렌, 증주양상, 오후5시 대영시네마 1관

70년대 중반부터 놀라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소외계층을 대규모로 양산했고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만의 현실을 정면으로 그려낸 이 영화의 상영을 놓고 당시 대만 사회에서는 큰 논란이 있었다. 다행히도 여론의 뒷받침 덕분에 이 영화는 정상적으로 상영됐고, 이때 얻은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은 훗날 대만 뉴웨이브가 본격적으로 발흥하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

<광음적 고사>에 이어 중앙전영에 의해 제작된 옴니버스 프로젝트. 3명의 감독이 참여한 3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다. 미학적으로 네오 리얼리즘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대만 현실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영화의 원제는 <아이의 커다란 장난감>이었지만 허우샤오시엔의 첫번째 단편 제목을 따서 <샌드위치 맨>이라 부르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인 <샌드위치 맨>은 62년 대만을 배경으로 한다. 빈민가에 살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인 남편은 아내와 아이를 위해 극장 간판을 몸에 걸친 채 사람들에게 홍보하는 샌드위치 맨으로 나선다. 화장실에 간 사이에 아이들이 옷을 가져가기까지 하는 등 우스꽝스런 광대차림의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온갖 수모 속에서도 그는 가족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샌드위치 맨 역할을 꿋꿋하게 수행한다. 어느날 그는 극장주의 제안으로 광대옷과 분장을 벗어던지고, 폼나는 삼륜 자전거에 홍보물을 싣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기쁨에 가득찬 그는 집으로 돌아오지만 왠지 모르게 아이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그는 광대옷과 분장을 한 아이의 커다란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증주양상의 <비키의 모자>는 일본제 압력밥솥을 판매하기 위해 어촌 마을을 들른 두 젊은이의 비극을, 완렌의 <사과맛>은 미국 대사관 직원의 자동차에 치인 아버지 덕분에 ‘딴 세계’인 미군 부대의 병원에 들어가게 된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70년대 중반부터 놀라운 속도로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소외계층을 대규모로 양산했고 외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대만의 현실을 정면으로 그려낸 이 영화의 상영을 놓고 당시 대만 사회에서는 큰 논란이 있었다. 특히 외세로서의 미국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사과맛>은 그 초점이었다. 다행히도 여론의 뒷받침 덕분에 이 영화는 정상적으로 상영됐고, 이때 얻은 표현의 자유라는 영역은 훗날 대만 뉴웨이브가 본격적으로 발흥하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

문석 기자

<몽환부락> Somewhere over the Dreamland

대만영화 특별전/ 대만, 2002, 93분 감독 청 원탕 오전 10시 30분 대영3관

<몽환부락>은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대만 신전영’ 중 가장 젊은 영화지만, 그렇게 나아진 것 없는 조건에서 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몽환부락>이 보여주는 대만에는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청량한 녹색 향기가 스며있다.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노래가 정서를 대변하는 <몽환부락>은 코믹하고 가슴 아프면서 잔물결처럼 쉬지 않고 반짝이는 영화다.

날개달린 우체부가 엽서 한장을 떨어뜨리고 가면서 이상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와탄은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다리를 절게 되던 날 잃어버린 지갑이 10년 만에 시멘트덩이 속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그 지갑 속에서 오래 전 떠나버린 아내의 사진을 발견하고선 그녀의 흔적을 찾아 다니지만 홀로 돌아온다.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몸을 파는 청년 샤오모는 밤마다 자기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녀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왠지 와탄의 과거와 겹치는 면이 있다. 아름다운 초원에서 지극한 마음으로 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와 그 남자의 사랑이 두려웠던 여자의 이야기. 소녀의 기억 속에 남은 그들의 사랑과 회한은 옛노래처럼 샤오모의 마음을 달래준다.

<몽환부락>은 이번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대만 신전영’ 중 가장 젊은 영화지만, 그렇게 나아진 것 없는 조건에서 제작된 영화이기도 하다. 청 원탕은 선배들처럼 고군분투하면서 <몽환부락>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몽환부락>이 보여주는 대만에는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청량한 녹색 향기가 스며있다. 와탄이 사는 곳은 시골인 포모사 섬. 그곳에서 대낮의 꿈처럼 풀려나가기 시작한 사랑의 실은 좁은 공간에 은둔해 독백만 되풀이하는 젊은이들에게 손을 뻗치고, 다시 포모사에 있는 와탄에게 돌아와 마지막 타래를 감는다. 와탄을 떠나 여러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죽어버린 아내는 정말 그리움을 남기고 사라진 것일까.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노래가 정서를 대변하는 <몽환부락>은 코믹하고 가슴 아프면서 잔물결처럼 쉬지 않고 반짝이는 영화다.

김현정 기자

<바닷가에서> Seaside

월드 시네마/프랑스/2002년/88분/감독 쥘리 로페스 퀴르발/ 오후 2시 대영시네마 2관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어하고, 조용히 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바닷가에서>는 바닷가 마을의 인간 군상을 통해 ‘기다림’의 삶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닷가 작은 마을. 여름이면 관광객으로 흥청대고 겨울이면 권태와 침묵에 휩싸이는 곳.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러나,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각자 다른 고민에 잠겨 있다. 자갈 세공 공장에서 일하는 마리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한다. 남자친구 폴은 파친코에 중독된 노모를 돌보느라 마리의 꿈을 이해할 여유가 없다. 마리의 상사 알베르가 해고된 날, 마리와 폴의 관계도 허물어진다. 떠난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또 다시 여름은 찾아온다. 똑같이 생긴 샤워실이 해변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작년과 똑같은 여름이다.

“당신이 변하길 기다렸어요.”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기다리지.” 그렇다. 삶은, 인생은, 수확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바닷가에서>의 계절은 여름과 겨울, 둘 뿐이다. 두 계절의 대비 속에 달라 보이는 건 여름엔 수상 안전 요원으로, 겨울엔 슈퍼마켓 점원으로, 바뀌는 폴의 직업만이 아니다. 수평선 너머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은, 휴가를 즐기러 오는 타지 사람들을 따라 밀물처럼 밀려 들어온다. 겨울이 되고 그 희망의 밀물이 빠져나가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이 좌절된 이유를 서로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그들은 무엇엔가 속박돼 있고, 그 때문에 무력감을 느낀다. 서툰 표현, 실수와 오해로 흔들리는 관계들. 그러나 그게 그리 흉물스러운 풍경은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은 떠난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어하고, 조용히 그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바닷가에서>는 바닷가 마을의 인간 군상을 통해 '기다림'의 삶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올해 칸느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에 해당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박은영 기자

<잼 필름즈>

아시아 단편1/ 2002년 / 일본/ 감독 기타무라 류헤이, 조지 아이다, 시노하라 테츠오, 모치츠키 로쿠로, 츠츠미 유키히코, 유키사다 이사오, 이와이 순지/

오후 8시 메가박스 5관

젊고 유명한 7명의 일본 감독들이 각 20분 남짓의 길이로 제작한 단편모음 <잼 필름즈>는 ‘호러’나 ’9.11’같은 공통된 핵을 지니고 있진 않다. 그저 즉흥적으로 모여 선보이는 '잼' 연주 처럼 가볍고 지유분방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의 잼연주는 적절한 화음을 선사하지 못한다. 당신이 <잼 필름즈>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이와이순지 때문일것이다.

2002년 5월 시노하라 테츠오, 유키사다 이사오, 이와이 순지등 일본의 젊고 유명한 7명의 감독들이 “일반 대중들에게 단편영화를 제대로 이해시키고자 하는 취지”로 각 20분 남짓의 길이로 제작한 단편모음 <잼 필름즈>는 ‘호러’나 ‘9.11’같은 공통된 핵을 지니고 있진 않다. 그저 즉흥적으로 모여 선보이는 ‘잼’ 연주 처럼 가볍고 지유분방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의 잼연주는 적절한 화음을 선사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멋을 부렸거나(<메신저>), 지나치게 경박하거나(<콜드 슬립>), 지나치게 엉뚱하다 (<홍콩레그-판도라>,<히지키>). 순서 상 앞에 배치된 이런 작품들은 뒷 영화들의 독주를 빛나게 하는 소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6번째 선보이는 <저스티스>는 이와이 순지의 조감독 출신이자 <해바라기> 등을 연출했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작품으로 포츠담 선언이 흐르는 한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된다. 민주주의, 사상, 자유 등의 단어들이 교실의 공기를 가르고 있지만, 아이들은 수업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저 책에 음탕한 낙서를 하거나, 핫팬츠 운동복을 입고 허들경기를 하는 운동장 여학생들의 모습을 넋놓고 바라볼 뿐. <워터보이즈>의 꽃미남스타 쓰마부키 사토시가 등

장하는 <저스티스>는 만화적인 상상력과 빨강,초록, 파랑의 강렬한 색채적 대비와 감각적인 편집이 돋보이는 귀여운 소품. 그러나 당신이 <잼 필름즈>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 이와이순지 때문일것이다. <릴리슈슈의 모든것> 이후 그의 차기작에 목말라 있었던 팬들이라면 마지막에 배치된 <아리타>는 충분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카메라는 여자아이의 스케치북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이 꼬마아이에겐 비밀 친구 ‘아리타’가 있다. 쥐같이 생긴아리타는 그녀의 책에, 노트에, 스케치북에 숨어서 늘 그녀와 함께 있다. 그리고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늘 가까이 있지만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던 아리타는 그녀에게 파랑새 같은 존재다. 그리고 영화는 “아리타는 무엇인가요”하는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비밀>의 히료스에 료코가 아리타를 품고사는 소녀로 등장한다.

백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