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PIFF Daily > 8회(2003) > Todays News
오시마 나기사 영화 세계에서 한국의 의미
2002-11-19

“일본의 추한 얼굴 비추어보는 거울”

윤용순/ 영화평론가

“우리들에게 재일 한국인은 거울과 같은 존재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는 일본인의 모습을 더욱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추한 일본인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써 일본인들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한국에서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은 <감각의 제국>이나 <열정의 제국>등으로 먼저 알려짐으로써 자칫 인간의 성적 본능을 그리는 데 뛰어난 감독으로 인식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감각의 제국>에서 일본 황군의 행군 장면이 잠깐 삽입된 것에서 엿볼 수 있듯 그는 기본적으로 정치 의식이 강한 인물이었다. 특히 <일본의 밤과 안개>(1960)를 보면 그가 젊은 시절부터 얼마나 비타협적일 만큼 정치적이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미국에 군사기지를 허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이른바 ‘안보투쟁’의 와중에서 벌어진 일본 좌익계 내부의 사상 투쟁을 다큐멘터리적으로 담아낸 <일본의 밤과 안개>(이 제목은 프랑스의 알랭 레네 감독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비판한 다큐멘터리 <밤과 안개>에서 따 왔다)때문에 그는 결국 메이저 영화사인 쇼치쿠(松竹)사로부터 쫓겨나는 모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2차 대전에 대한 책임 문제에 예민했던 오시마 감독은 그 중에서도 식민지 지배의 피해국 중 하나인 한국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이 높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춘잔혹이야기>(1960)에서는 1960년 4,19 학생운동 장면이 뉴스 필름으로 보여진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오랜 뿌리를 갖고 있다.

첨예한 정치 의식의 감독

1950년대 일본에 좌익 사상이 창궐할 때 대학을 다닌 관계로 그의 정치 의식은 매우 예민해 있었다. 실제로 그는 학생 운동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시마의 영화 경력 중에서 피 식민지 국가로서의 한국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잊혀진 황군>(1963)이라는 게 있다. <잊혀진 황군>은 2차 대전 후 18년이 지난 시점에서 만들어진 재일 한국인 상이군인의 이야기로 전쟁 전엔 일본군인이었으나 전후엔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한국과 일본 어디로부터도 보상과 관심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오시마는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보상 청구를 위해 길거리로 나선 그들을 따라가면서 카메라를 돌렸다. 한 팔과 두 눈을 잃은 상이군인이 일본인들을 향해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할 때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표정, 상이군인들끼리 모여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할 때 눈동자도 없는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잡아낸 장면 등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절절한 아픔과 외침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친다. 오시마는 <잊혀진 황군>을 찍고 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일본 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이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 과정에서도 편집 과정에서도 나는 몇 번씩이나 이들에 의해서 나 자신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 파괴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 오시마에게 일본 식민지 정책의 희생자들인 재일 조선인은 일본의 모순을 드러내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윤복이의 일기>(1965)는 일본의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한국인이 받았던 피해가 일본 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 현지에서도 진행중임을 확인하면서 만든 다큐멘터리였다. 오시마는 1964년 <청춘의 비>라는 제목으로 조선전쟁 후의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으며 이것이 첫 외국여행이기도 했다. <윤복이의 일기>는 이 때 찍은 한국 어린이들의 스틸 사진들로 구성된 것이다. 이 작품에서 오시마는 윤복이라는 어린이의 눈을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것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담담한 나래이션과 스틸 사진을 결합시켜 감동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오시마는 한국을 방문하고 난 뒤 “한국은 수렁이기는 하지만 난 거기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보았다”고 밝혔다.

<교사형>(1968)은 재일 조선인의 궁핍과 고난이 그 후대에게도 고스란히 넘겨지면서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빚어내는지를 웅변한 걸작이다. 여기서 오시마는 제국주의 전쟁에 강제 동원된 세대의 문제가 제대로 극복되지 않은 채 다음 세대로 넘어옴으로써 결국은 일본인 자신의 문제와 피해로 귀결되고 있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교사형>은 실제 살인 사건에 기반한 작품으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사형당해 죽는 대신 사형 집행이 실패함으로 인해 해프닝이 벌어지고 그 과정에서 과연 주인공의 범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기인하며, 어떤 환경에서 연유했는지를 반성적으로 묻고 있다. <교사형>을 통해 오시마는 극단적인 억압이 극단적인 상상력을 유도하며 거기서 범죄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결국 벌을 받아야하는 측은 재일 조선인 R이 아니라 R에게 극단적으로 불행한 환경과 인종차별적인 분위기를 강요한 일본 정부와 일본 사회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일본 국가에게는 재일 조선인 R를 재판할 자격이 없다고 하는 것이 <교사형>의 주요한 주제이다.

이 밖에 <돌아온 술주정뱅이>(1968)는 대학시절 마지막 여름 방학을 보내기 위해 큐슈의 바닷가로 놀러간 주인공들이 옷을 잃어버린 뒤 우연히 근처에 놓여져 있던 한국 군복과 교복을 입음으로써 밀항자로 오인받고 경찰에 쫒기는 과정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자신들이 일본인이면서도 조선인 취급을 받음으로써 인간의 정체성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오시마 감독은 여기서 일본인이 처음엔 조선인을 적대시했다가 자신들의 처지로 인해 조선인들에게 동화되고 다시 상황이 반전되면 원래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터치하고 있다.

<일본춘가고>(1967)의 주인공들은 대학입학 시험을 위해 도쿄로 올라온 시골 고교생들이다.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들은 육체적 쾌락에 몸을 맡기고 상상과 현실을 오가면서 외설적인 노래(춘가)로 기성 세대를 비웃기도 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노래 가운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로 시작하는 내용의 춘가는 조선에서 온 종군 위안부들이 불렀던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일본 비평가들로부터 호의적인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오시마는 성적 환타지조차도 '국가'의 소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 한국인, 일본인의 거울 같은 존재”

이렇듯 오시마에게 한국과 한국인, 재일 한국인 문제 등은 자신의 영화 이력에서 뗄 수 없는 문제였다. “우리들에게 재일 한국인(조선인)은 거울과 같은 존재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 우리는 일본인의 모습을 더욱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추한 일본인의 모습을 재일 한국인이라고 하는 거울에 비추어 봄으로써 일본인들도 조금은 인간적으로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오시마 감독의 이 발언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것 같다.

Nagisa Oshima

In Korea, Nagisa Oshima might be recognized as a director with a superior talent at portraying human sexual instinct, due to his earliest released films and . However, he's an individual with a strong political consciousness. In 1950's, when radicalism in Japan was in its fullest rage, Oshima developed his keen political awareness as a young university student. Moreover, he's known for his deep involvement with student movements. Starting at early age, he possessed much interest in issues of Korea, a victim of Japanese occupation.

This year, PIFF will present Oshima's documentary (1965), in which he corroborates the traumatic damage, which Koreans have received from Japanese barbaric actions, existed not only in Korean-Japanese society in Japan but also in Korea. In this film, problems in Korean society are presented through Yunbogi's adolescent point of view. Moreover, through the usage of calm narration with still photos, Oshima delivers the devastating effects caused by Japanese occupation in a touching way.

In his masterpiece (1968), Oshima eloquently speaks about the tragic results, caused by poverty and hardships of Korean-Japanese, which are passed down to their descendents. Through this ‘based on true story’ film, Oshima claims that extreme imaginations are caused by extreme oppressions, and that's what gives birth to a serious crime. At the end, he reaches a conclusion that it should not be R, a Korean-Japanese descendent, who should be punished for his crime, but it should be the Japanese government, who encouraged racist society, and R's unfortunate circumstances, which gave R no choice but to go to extremes.

In addition, (1968) tells a story about 3 Japanese university students who get chased by police when their identities are mistaken for illegal Korean immigrants. In (1967), small town high school seniors with newly awaken sexual desires, visit Tokyo for their university entrance exams. They give themselves to sensual pleasures, and express their cynicism towards the ‘idealism’ of their parents' generation by singing bawdy songs, as they stray into the world of illusion. In this film, Oshima inserts a lament of a “comfort woman,” who were forced into sexual slavery by the Japanese army, as if to say, even sexual fantasies are only possible through extinction of one's own ‘nation.’

Thus, issues of Korea, Koreans and Korean-Japanese were something Oshima could not detach himself from, “To us(Japanese), existence of Korean-Japanese(Koreans) is like a mirror. By seeing a reflection of ourselves on that mirror, we can truly learn about ourselves.” Through this statement by Oshima, all is expl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