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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도 안틴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 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2002-11-19

“영화 실험, 경제 위기 뛰어넘는다”

영화제 인사 사이에도 ‘우정상’이 존재한다면, 올해는 에두아르도 안틴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차지가 아닐까 싶다. 작년부터 이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일해 오고 있는 에두아르도 안틴은 올해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로 영화제를 열지 못할 위기에 처했으나, 로테르담 등 각지 영화제의 자발적인 성원으로, 무사히, 심지어 성황리에 끝마치는 ‘기적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영화 비평지 의 창간 멤버이자 평론가였던 그는 별명이자 필명인 ‘퀸틴(Quintin)’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간밤에 필름메이커스 파티와 와이드 앵글 파티를 거쳐, 자갈치 시장에서 새벽을 맞고, 아침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그는 소문대로 ‘나이스 젠틀맨’이었다.

=올해로 4회를 맞은 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제 소개를 부탁한다.

-행사 명칭이 보여 주듯이 우리는 젊고 신선한 영화 인력들이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만들어낸 작품들에 주목한다. 200편 안팎의 영화를 소개하는, 중간 규모의 국제 행사다. 국제 경쟁 부문이 메인이고, 자국 영화에 주목하자는 의미에서 ‘뉴 아르헨티나 시네마’라는 경쟁 부문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심각한 경제 위기 때문에 올해 영화제가 무산될 뻔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라 경제가 총체적으로 어려워지다 보니, 이런 문화 행사에 대한 가치 평가가 낮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행사 예산의 70%에 달하는 정부 지원이 끊기고,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져, 게스트 초청과 프린트 수급 등에 어려움이 많았다. 고맙게도 로테르담 등 다른 영화제에서 경제적으로 도움을 많이 줬고, 행사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그 일로 우리 모두가 영화로 뭉쳐졌다는 연대감을 강하게 느끼게 됐다. 역대 최다 관객이 동원된 사실도 큰 힘이 됐다. 아마도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극장으로 몰린 것 같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프로그래머를 심사위원으로 초대하는 등 부산과의 인연도 남달라 보인다.

-그렇다. 4년 전 영화제가 시작될 때부터 부산영화제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왔다. 그것은 프로그래밍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한국영화를 소개하는데 공을 들여온 편인데, 지난 해는 10 편의 한국영화를 초청 소개했고, 올해는 김기덕 감독 회고전을 열기도 했다. 한국영화에 대한 현지 반응은 꽤 좋은 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5만 명에 달하는 한인 커뮤니티가 존재해서인지, 우리는 한국 영화를 친근하게 느낀다.

=한국영화를 집중 소개해 온 입장에서, 최근의 한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5-6년 사이에 한국영화계에 일어난 일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자국 시장에서, 해외 시장과 평단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는 등 한국영화가 보여준 성장세와 위력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가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오아시스>와 <생활의 발견>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르헨티나 영화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영화에는 새로운 세대가 출연했다. 저예산의, 매우 흥미로운 영화적 실험들이 지속돼오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10편의 데뷔작을 영화제에서 소개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지금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반영적인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내년 영화제의 아웃라인은 어떻게 잡고 있는지.

-글쎄...무작정 기다려볼 작정이다. 행사 임박해서 대혼란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로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까지, 혁신적인 작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단 몇 개월 묵은 작품이라도 신선하다거나 창의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게 문제다. 아내가 영화제 프로그래머인데, 내 느긋한 스타일을 못 견뎌, 독촉하기 일쑤다.(웃음) 나를 포함해 프로그래밍을 책임지는 이들이 모두 네 명인데, 자유 토론을 거쳐 작품을 선정하곤 한다. 부산하긴 하지만, 더 재밌는 것 같다.

=영화제에 대한 장기적인 야심이나 목표를 공개한다면.

-지금으로선 영화제가 오래 지속될 수 있길 바란다. 외부 환경의 영향을 덜 받고, 매년 꿋꿋이 열릴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도 스타를 많이 불러 모으거나 화려한 행사를 여는 등 영화제 규모나 외관에 신경 쓰는 일은 없을 거다. 영화제를 튼실하게 오래 지속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다.

글/ 박은영 사진/임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