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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만화 vs 애니메이션
2001-04-17

천재소년들의 새로운 무대, 그루브를 즐겨라!

◆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탈바꿈중인 <오디션>, 제작현장을 급습하다

‘드디어… 무대다!!’ 어두운 공연장, 미묘한 흥분과 호기심이 뒤섞인 공기 속, 무대라는 그들만의 세상 위에 4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타월을

목에 맨 채 맨발로 뛰어나온 보컬 황보래용, 긴 금발을 두 갈래로 묶어올린 미모의 드러머 류미끼, 덩치는 좋지만 순진한 인상의 베이시스트

장달봉, 눈을 찌르는 앞머리 뒤에 반항기를 숨긴 기타리스트 국철의 ‘재활용밴드’. 이들 4명이 꿈을 향해 오디션에 나서는 첫 무대는, 소리와

움직임이 유독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만화에서 태어난 재활용밴드가 지면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했으니까. 만화 <오디션>이 장편

애니메이션 <오디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디션. 언젠가 국내에도 미국의 <얼트 컬처> 같은 대중문화 용어사전이 나온다면, 이 단어에는 적어도 세 가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 배우, 가수 등 예능 지원자의 선발 심사. 2. 4명의 소년들이 음악이라는 꿈을 찾아 오디션에 참가하는 과정을 그린 작가

천계영의 음악만화. 3. 만화 <오디션>을 원작으로 라스코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의 재미와 질을 논하기에

앞서 <오디션>은, 인기만화의 단행본 판매수량이 권당 2만부 정도이던 시절 권당 10만부 이상 팔렸고, 노트 등 캐릭터 상품으로

특히 10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몇억원대 수익을 올린 전례없는 작품이다. 그렇게 시장에서 검증받은 <오디션>이 애니메이션으로

기획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 세 번째 설명 뒤에 따라붙을 말이 ‘원작 못지않은 성공을 거둔 히트작’이 될지, ‘원작의 인기에도 불구하고…’가

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말이다.

만화 <오디션>, 순정만화계의 블록버스터

<오디션>은 98년부터 지금까지 만화잡지 <윙크>에 연재되고 있는 천계영의 음악만화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년들이 밴드를 만들고, 제목그대로 ‘오디션’을 치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들이 모이게 된 계기는 음반업계의 최대기업인 송송그룹의 오디션.

송송그룹 회장이 외동딸 송명자에게 자신이 10여년 전 우연히 만났던 4명의 음악천재를 찾아내서 오디션에 우승해야 유산을 상속할 수 있다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4명의 천재란 전북 초광역 근처 풀밭에 앉아 자연의 소리에서 음계를 찾아내던 달봉, 해운대 바다에 빠졌을 때 1km

떨어진 해안에까지 들리도록 커다란 미성으로 구조를 외치던 래용, 동호대교 난간을 막대기로 긁어 소리를 내면서 정확히 2초마다 그 리듬을

바꿔대던 미끼, 날렵한 손놀림으로 음반점에서 훔친 CD를 처음 듣자마자 뮤지션의 내면을 꿰뚫던 국철.

아버지의 일기를 바탕으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4명의 소년들을 찾아내기 위해 명자는 고교 시절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립탐정 박부옥을

찾아간다. 하지만 각각 중국집 배달원,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왕따 고교생, 데뷔 직전인 신인가수의 백댄서, 강력반 반장에게 쫓기는 유능한(?)

소매치기로 변한 소년들의 현재는, 음악적 재능을 묻어버릴 만큼 비루하다. 생활에 찌들어 악기를 만져볼 일조차 없던 이들은 명자에게 ‘재발견’되고,

재활용밴드를 결성해 320여개팀이 토너먼트식으로 겨루는 오디션에 나선다.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축은 재능만큼이나 개성이 제각각인 아이들의 캐릭터와 오디션의 대결구도다. 특히 청학동 총각들의 프로그레시브 록밴드

청학동 댕기즈, 밸런타인 데이에 전국에서 가장 초콜릿을 많이 받는 멤버로 구성된 여성 5인조 밸런타인 넘버원 등 록과 힙합, 댄스를 넘나드는

가지각색의 팀들이 겨루는 오디션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사건. 성대결절로 12살에 가수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음악신동, 금세 등을 돌리는

세상에 절망하고 남성을 거세한 뒤 티베트에서 섀도 창법(한 사람이 한번에 두 가지 목소리를 낸다는 전설적인 창법)을 배워 돌아온 카스트라토

이노무시키와의 대결 같은 설정은 극적 긴장감을 탄탄하게 유지한다.

관객의 환호소리를 측정하는 사운드 레벨미터, 코드의 반복이 리프라는 용어설명부터 임계가청주파수, 미국 록밴드 키스의 트리뷰트 밴드 ‘핫터

댄 헬’까지 끌어온 다양한 음악지식도 맛깔스런 감초. 늘씬한 몸매의 패션모델 같은 미소년, 미소녀 캐릭터들과 힙합 바지부터 드레스까지를

아우르는 화사한 패션, 젊은 유머감각도 10대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다. 하지만 <오디션>이 품은 보석은, 무엇보다도 힘겹고

불안한 10대의 그늘에서 꿈의 생기를 발견해가는 아이들의 성장기다. 백인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 시계들의 엇갈리는 초침 사이를 쪼개는 놀이를 하면서 리듬을 발견하는 미끼의 사이드 스토리는 <오디션>이

그저 예쁘장한 팬시상품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아버지에 대해 아는 거라곤 뮤지션이었다는 기억밖에 없는 고아 철이가, 부자지간이라면 아버지의

음악을 알아들을 거라며 늘 노래가 흐르는 CD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음악에 눈뜨는 사연처럼, 경쾌한 무대 뒤로 따스한 사람의 체취를 전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오디션>,뜨거운 관심만큼 부담스러운

그렇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원작만화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라스코엔터테인먼트(이하 라스코)는 MBC의 <귀여운 쪼꼬미>,

KBS의 <짱이와 깨모> 등 국산 창작 TV애니메이션을 주로 만들어온 제작사. 민경조 감독이 이끄는 라스코와 <오디션>의

인연은, 댄스그룹 H.O.T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우리들의 맹세>를 제작했던 98년 말로 거슬러올라간다. H.O.T의 매니지먼트사

SM기획에서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를 라스코에 의뢰해왔고, 그때 H.O.T의 캐릭터 디자인을 맡고 있던 <오디션>의 작가 천계영씨를

처음 만난 것이다. 그 이전부터 순정만화 몇 편을 놓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고려해왔던 민경조 감독은 천계영씨와 <오디션>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원작의 인기도 인기거니와, 지금까지도 연재중인 미완성의 작품을 완결된 애니메이션으로 구상하는 것은 적잖은 부담과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다.

99년 5월부터 구체적인 기획에 들어가 여름 동안 천계영씨에게 시놉시스를 받고 스토리와 캐릭터 개발에 들어갔다. 스토리를 원작에 충실하게

갈 것이지 외전 형식으로 아예 바꿀 것인지, 2차원의 만화 캐릭터를 애니메이션에 적합한 입체적인 디자인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지, 드라마의

중요한 장치인 음악을 어떻게 쓸 것인지 등 까다로운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완결이 안 됐지만 단행본으로 7권까지 나온 내용만 다 소화하려고

해도 3∼4시간의 러닝타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스토리는 압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작진은 원래 8차에 걸쳐 진행되는 오디션 중에서 4가지

대결을 고르고, “음악을 중심으로 한 뮤직드라마로 가면서 사이사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인서트로” 집어넣는 방식을 택했다.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때 으레 발생하는 문제지만, 펜으로 그린 만화 캐릭터의 매력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에 맞게 잘 살려내는가는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과제다. 원작이 있으면 아무래도 캐릭터 작업 때 운신의 폭이 좁다는 오덕환 작화감독은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고자 했지만 애니메이션의

성격상 펜으로 그린 만화의 디테일을 다 표현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만화는 평면이지만 애니메이션은 3차원적인 움직임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캐릭터가 360도 입체감을 갖도록 변형해야 하고, 몇장이라면 몰라도 (<오디션>의 경우) 8만매 이상을 공동작업으로 그려내야

하는 공정에서 원작의 섬세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캐릭터 개발에만 6∼8개월씩 공을 들였음에도, <오디션>의 캐릭터 초안은 만화팬들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지난 2월16일

라스코 홈페이지 오픈과 함께 캐릭터 초안이 공개되자 자유게시판에는 <오디션>의 진행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이들의 반응이

올라왔다. 120여건에 이르는 글 가운데 캐릭터에 대한 실망을 담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 ‘미끼사랑’, ‘래용천사’ 등 이름부터 <오디션>의

열성팬임을 감지할 수 있는 이들은, 캐릭터가 원작과 너무 다르다, 천계영씨에게 그림을 맡겨달라는 요구부터 원작을 망쳤다, 심지어 국산애니메이션은

망했다는 때이른 개탄까지 다양한 원망(?)이 들어 있었다. 4월에 수정한 2차 캐릭터 초안과 배경을 공개한 뒤 좀 나아지긴 했지만, 원작의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셈이다.

‘진짜’오디션, 재활용밴드를 찾습니다

한편 만화에서는 상상만 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직접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은, 제작진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이다. 1차,

2차 등 차수마다 각각 다른 곡을 불러야 하는 오디션이 극을 끌어가는 만큼, 12곡 정도의 다양한 음악을 준비 중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일본의 록밴드 라르캉 시엘이 2곡을 만들기로 했고, 국내 밴드로는 경쾌한 모던록풍의 에브리 싱글데이와 하드코어펑크를 구사하는 닥터코어 911,

스래시와 인더스트리얼의 실험을 보여주는 크래시 등이 섭외된 상태.

라르캉 시엘은 엔딩곡과 4차에 걸친 오디션 가운데 음악적 클라이맥스랄 수 있는 카스트라토 이노무시키와의 대결곡을 맡을 예정이다. 막강한

상대 이노무시키의 곡으로는 카운터테너 파브리스 디 팔코의 <`Ombra Mai Fu`>를 내정해두고, 막 녹음을 끝낸 에브리 싱글데이의

곡 하나는 사이트에 미리 공개해 반응을 살펴보는 등 음악에 각별한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16일부터는 재활용밴드를 대신해 <오디션>

주제가를 부를 뮤지션을 공모한다. 라스코 홈페이지와 마니또, N4U 등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국내 뮤지션들을 모집하고, 라르캉 시엘과 디

팔코의 일본 기획사 드림 아크스 관계자 등 일본 스탭들도 참여한 가운데 오디션을 거쳐 한팀을 선발할 계획이다.

제작은 현재 50% 정도 진행된 상태. 포이동의 망한 카페 하나를 모델로 재창조한 재활용밴드의 연습실, 예술의 전당을 참조한 오디션 무대,

여의도 고수부지 등 실제 장소 헌팅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그린 배경들은 거의 완성단계다. 기본적으로는 원화와 동화를 종이에 그린 뒤 컴퓨터에

스캔받아 채색부터 디지털로 작업하는 2D 디지털 애니메이션이지만, 오디션 무대를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5∼6분 분량의 3D 컴퓨터그래픽을

활용할 거라고. 캐릭터의 수정, 보완이 끝나는 대로 동화와 채색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명탐정 코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참여했던 마쓰조노 히로시가 초기 스토리보드를 그려준 것을 비롯해, 레이아웃, 색지정 등 일부 작업에는 도에이의 스탭들이 합류할 계획이다.

80∼85분에 이르는 장편을 만들기 위한 예상 제작비는 마케팅비용 6억원을 포함해 약 35억원선.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던 삼부파이낸스가

부도로 투자를 접으면서 한때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공동투자자 중 하나였던 멀티미디어업체 ‘미래를 여는 사람들’이 주투자자로 나서고, 라스코의

성원들이 각출한 회사자본금에서 부족분을 조달해가며 15억원 정도를 마련했다.

원래는 다소 빠듯하게 여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예산과 캐릭터 보완으로 제작기간이 좀 늘어나면서 11월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12월경

“어린이 회관이나 전시장이 아니라 극장”에 폭넓게 개봉하고, 동시에 일본 배급을 추진하는 것이 제작사의 바람. 주위의 우려와 기대에 대해

“지금 일일이 다 설명할 수도 없고,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는 감독의 말대로, 이제 남은 일은 팬들의 기대와 제작진의 노력이 만나는 그

지점 어딘가에서 <오디션>이 관객의 마음을 두드려줄 애니메이션의 리듬을 찾아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글 황혜림 기자

사진 이혜정 기자

▶ <오디션>

캐릭터들

▶ <오디션>

민경조 감독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