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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스> Dolls
2002-11-22

돌스 Dolls

폐막작/ 일본/ 2002년/ 113분/ 감독 기타노 다케시/ 23일 오후 6시30분, 10시30분 시민회관

<돌스>는 ‘멋지게 죽는 방법’에 관한 기타노식 매뉴얼이다. 그 결과는? 이처럼 탐미적이며 동시에 공허한 기타노의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즉, <돌스>는 기타노가 그의 몇몇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사의 찬미’가 거의 매너리즘에 다다른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기타노의 새 영화 <돌스>에서 인물들의 몸짓은 이미 죽음에 물든 몸짓이다. 이는 물론 기타노의 이전 영화들을 통해 익히 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인물들 간의 사랑 또한 죽음 위에 새겨져 흔적만 남은 사랑처럼 보여지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멜로적 감수성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진부하고 통속적인 수사학을 채택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랑의 시체들을 가지고 벌이는 기타노의 인형놀이가 그다지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같은 작품 주위에 견고하게 둘러쳐진 삶과 죽음 사이의 팽팽한 긴장의 끈이 사라져 버린 기타노의 영화가 바로 <돌스>이다.

<돌스>에는 각기 애틋한 사랑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남녀인물들에 관한 에피소드들이 얽혀 있다. 남자측 부모의 반대로 맺어지지 못한 한 쌍의 남녀가 있다. 여자는 자살을 기도하고 남자는 그 소식을 듣고 결혼식장에서 뛰쳐나온 뒤 도주하여 그녀와 함께 여기저기를 배회하며 거지처럼 살아간다. 그들의 발걸음이 끝나는 곳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벼랑에서다. 한 야쿠자 두목은 문득 자신이 과거에 떠나온 여자와의 약속을 떠올리고 공원을 찾는다. 그가 떠난 후, 그녀는 매일같이 도시락을 가지고 공원 벤치에 와서 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든 그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들 사이엔 새로운 사랑이 싹튼다. 하지만 이 사랑 또한 짧게 끝날 운명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낯설고 새로운 색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이른바 ‘기타노 블루’를 통한 서늘한 죽음의 환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간 자신의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던 인물들의 양식화된 몸짓에 전통을 빌려 기원을 부여하려 시도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돌스>는 ‘멋지게 죽는 방법’에 관한 기타노식 매뉴얼이다. 그 결과는? 이처럼 탐미적이며 동시에 공허한 기타노의 영화는 본 적이 없다. 즉, <돌스>는 기타노가 그의 몇몇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사의 찬미’가 거의 매너리즘에 다다른 영화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돌스>가 보여주는 회화적 프레임과 양식화된 연기를 근거로 이 영화의 매력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는 약간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노, 가부키와 더불어 일본의 3대 전통극 가운데 하나인 분라쿠를 영화에 도입하려 한 <돌스>는 인물들을 보듬은 풍경이 점점 원색적이고 화려한 것이 될수록 그것 말고는 거의 관심을 끄는 것이 없어지는 영화다.

글/유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