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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두 주인공의 영화같은 연애이야기(3)
2002-11-29

˝상영허가를 받으니까 큰애기 마냥 들뜬 마음이여˝

老年(노년)

할아버지는 영화에서처럼 할머니와 사랑한 날이면 달력에 새빨간 동그라미를 치고 산다. 그리고 종종 ‘낮거리’라고도 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앞으로도 달력이 많이 필요하다.

박치규: 글쎄 젊은 사람들도 영화 보면서 인자 나도 늙는다 하지만 앞으로 나도 저렇게 살았으면 하는 취지랄까. 그런 마음이 들어서 좋아할 것 같애. 늙는 사람들 하는 거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딴 것이 아니다 싶어요. 일단은 나이먹은 사람들이 성관계를 하고 그랬다 해서 흉보지 말고 그만큼 활동할 수 있고 뭐 신체적 여건이 갖춰지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뜻에서 살아줬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고.

이순예: 그래요. 늙었다고 못하는 게 아니라 자기 신체조건만 되면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고 크게 부끄럽다고 생각 안 할 것 같애. 당연히 젊은 사람들 감동이 들어갈 거여. 자기 부모님에 대해 생각도 좀 해보고 70대 노인들이 저만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한다면은 이것도 하나의 영광이 아닐까 생각을 하고. 이번 영화가 여런 관객 여러분들이 부끄럽게 보시지 말고 아주 기분좋게 감탄해서 많은 분들이 봐줬으면 우리 바람이 그겁니다

씨네21: 요즘도 사랑하시고 나서 달력에 체크하세요.

박치규: 하고 있죠.

씨네21: 새해 오는데 새걸로 하나 또 마련하셔야 하겠네요.

박치규: 아. 그러죠. 달력도 날짜 크게 나오고 또 좀 (여백이) 넓적한 거. 그래야 딴 것도 표기하지. 지금도 하고 있어요. 목욕한 거, 이발한 거, 잠자리 한 거 표시해. 그게 다 똑같어. 특별히 영화찍는다고 특별히 한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는 것을 하나 거짓말 보탬 없이 찍었어. 그래서 나는 우리 영화는 사실 영화다 생활영화다라고 주장하고 싶어. 정말로 거짓말 하나 없어.

이순예: 싸우는 장면도 그래요. 전에 콘도에 갔다가 내가 옆방에 놀러가서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맨발로 찾아다닌 적이 한번 있거든. 한마디로 말하믄 신혼생활인데 없어졌으니까 당신 말대로 어디 가서 순예를 찾느냐고 놀랐던 것이야. 그래선지 재방송할 때도 감정이 살아나요. 처음엔 어수선했거든. 근데 할아버지가 딱 화나서 뭐라시니까 울음도 서럽게 엉엉 나왔어요.

박치규: 아 그래도 내가 영화에서처럼 아무리 싸우고 기분이 나쁘고 상대방이 나한테 실수를 했다 그래도 상대방이 미안해요, 앞으론 그런 일 없도록 할게요, 하고 말 한자리 해주면 전부 다 잊어불고 다신 생각 안 해요.

이순예: 할아버지가 애정 표현을 잘하시지. 구식분답지 않게. 애정 표현 잘해주니까 그게 제일 좋아요. 아 기분이 안 좋으면 ‘화 풀어’ 하면서 여보가 뽀뽀해주고 그러니까. 시방 70된 남자들이 그렇게 안 해주는 남편이 많을 거예요. 근데 할아버진 잘하세요.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고.

박치규: 천생연분인갑다 해요. 불교로 말하면 인연이고. 아. 이 이야길 빼먹었구나. 내 시계도 저그 왕종근이 나올 때 퀴즈 맞혀서 탔거든요. 할머니도 노래 자랑 신청해서 탄 거고.

이순예: 아무 연습도 안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신청을 해가지고 와요.

박치규: 나는 틀니라 음이 좀 새가지고 예선에서 떨어지고 할머닌 됐지.

이순예: 아닌 밤중에 홍두깨잖아.

박치규: 할머니는 나 만나가지고 좋은 기회만 차지하는 거여.

이순예: 그래도 같이 해야 1등한다니까.

박치규: 사랑이나 그런 쪽으로는 너무 이상적인 커플이여. 영감들하고 같이 만나면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고 그래. 다 할머니가 잘해줘서 좋아진 거여.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죠.

이순예: 몸은 늙으니까 변할 수 있어요. 그래도 마음은 안 변할 거예요.

청춘가(靑春歌)

박치규: 라디오에서 전화로 하는 장기 자랑이 있어요. 그거 신청을 해갔고 노래를 불렀는데 한나 필요없이 너무 잘 부른 거예요. <청춘가> 가사를 우리가 지어서 불렀거든요. 고거 가사도 너무 좋았고 장구치는 심사위원이 그 사람들 ‘방송 탈 만하네’ 이러드라고. 그냥 음성으로 우리 여기서 청춘가 한자락씩 부를까. 그렇게 할까 어째 괜찮어

이순예: 목도 안 풀었는데.

박치규: 우리들의 만남은∼

이순예: 잠깐만요. 하나, 둘, 셋!

박치규, 이순예: 우리들의 만남은∼ 성동구 복지관∼청춘갈 부르다가∼좋다∼사랑을 맺었네∼.

박치규: 얻었네. 얻었네∼천하를 얻었네∼에에에∼이순애 박치규가∼얼씨구나∼천하를 얻었네 이순예/떴다 보아라∼무엇이 떴드냐∼이순애 박치규가∼얼씨구∼테레비에 떴구나.

박치규: 우리들의 금실은∼양귀비 금실이요∼하루종일∼웃음꽃이 넘쳐 흐른다

이순예, 박치규: 반갑네 반가워∼귀엽고 반가워∼박진표 이수미가∼반갑고 귀여워요. 떴다 보아라 테레비에 떴구나∼이순애 박치규가∼얼씨구나∼ 테레비에 떴구나∼땅따다당.

마지막 작별 인사 대신 내놓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선물. 담배 연기 자욱한 마감 직전의 <씨네21>과 같은 층의 <한겨레21>은 잠시 숨을 멈추어야 했다.

박치규: 근디 그 소리 받는 것이 박자가 맞어야 하는디. 연습도 쪼까밖에 못해서. 귀엽게 봐줘요. 진행 및 정리 이영진 anti@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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