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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 두 주인공의 영화같은 연애이야기(1)
2002-11-29

˝상영허가를 받으니까 큰애기 마냥 들뜬 마음이여˝

짝이 있는데도, 혹 옆구리가 허전하십니까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해법을 구하실 수가 없었다구요 그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상심마십시오. 여기, 전설의 로맨티스트 박치규, 이순예, 두분을 소개해드리죠. 슬쩍 말씀 올리자면, 그 험한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산동네에서 사랑의 묘약을 발견하신 분들입니다. 평소 두분은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영생의 비법을 고루 나누겠다는 소망을 품어오셨습니다. 그 결과 복용하면 “죽어도 좋아”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환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처음 맛본 이들에 따르면, 그 효험은 놀라웠다고 합니다. 짜릿했다고 합니다. 행복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이 환약이 급속하게 퍼질 경우, 사회적인 혼란이 엄습한다고 판단해서 유통을 금지시켰겠습니까. 이 일로 인해 얼마 전까지만 두분께선 속세의 혼탁함을 한탄하시면서 세상을 등지고 귀의할까 여러 번 망설이셨다 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 유통제한 명령이 해제됐습니다. 제조사에서 색보정이라는, 말하자면 환약의 색깔을 좀 어둡게 만드는 고육책을 써서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출했고 결국 유통가능하다는 결정을 얻어냈습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선 아마도 이 정도면 약효가 다소 떨어졌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지요. 곧 시판될 터인데, 여기서 잠깐! 두분이 어찌 이 묘약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복용 이후에 이를 참고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시판일까지는 기일이 조금 남았습니다. 그동안 적적함을 못 견디시겠으면 일단 짧은 이야기로 달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들이 인도하는 놀라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엿들을 수 있으니까요. 편집자

魅了(매료)

벤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침침한 할아버지의 골방을 얼마간 비추던 카메라는 처음으로 햇볕을 쬐인다.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능숙한 언변. <죽어도 좋아>의 시작이다.

박치규: 이봐요∼아유. 왜 그렇게 이뻐요. 여기 좀 봐봐요.

이순예: (부끄러운 웃음)

박치규: 지난해 2월에 만나가지고, 살림은 3월에 시작했어. 바로 한 거여. 그냥 좋으니까 서로 시간끌지 말고 빨리 만나서 살아보자. 만나고 나서 커피 한잔도 안 사주고 그냥 좋아서 뭣이냐 커플이 된 거여. 소개받았는데 처음엔 이쁜지도 몰겄고 무심히 들었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키가 좀 적고 아담한 게 내 이상형이여. 딱 들어맞는 거여. 그러다 어느 날엔가 집에를 갈라고 헌디 나 혼자 사니까 우리집 한번 구경가고 싶다고 그래. 그래서 전철 타고 가자고 했지. 근데 마누라가 택시 타고 가자고 그려. 그래서 전철도 교통이 너무 좋은디 택시 타자고 그러냐 그랬지. 아, 근데 가만 생각하니까 (할머니가) 택시 타자는 것이 의미있는 것이더라고. 힌트 같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택시 탔어. 그날이 처음 밤을 같이 지샌 날이었지.

이순예: 복지관 강당에 모두들 모여서 소리하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저쪽에서 웃으면서 들어오시더라구. 그런데 딱 보니까 아주 웃는 입이 너무 예쁜 거예요. 한마디로 귀엽고. 그런데 소리 좀 하시라니까 밑천없어 못한다고, <청춘가> 조금밖에 못한다고 그러는데 그때 첫눈에 들었어요.

씨네21: 할머니는 첫눈에 반하셨는데 할아버진 시동이 조금 늦게 걸리셨네요.

박치규: 아니여. (그날 이후로) 전화통화를 허니까 밤 늦게 해도 잘 받아주니까 좋고 그랬지. 그러다 전화상으로 나한테 ‘자기야’ 그러는데 그것이 나한테 참 강력한 표현이 되었어요. 인자는 내가 이 사람한테 ‘티’를 내도 되겠구나 욕심 들더라고.

入門(입문)

여생을 약속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맹서는 석달 만에 박진표 감독의 방송 다큐멘터리 <사랑>의 한 조각이 된다. <죽어도 좋아>를 위한 일종의 리허설.

이순예: 맨 처음에 노래자랑을 한다고 그랬어. 할아버지가 우리도 신청해볼까 그러시더라구. 그래서 뭔 신청을 하냐고 나 싫다고 그랬을 땐데. 그러다 하게 됐고 마침 박 감독님이 방송 촬영을 오셨대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시더라구.

박치규: 복지관 관계하시는 분이 재밌게 사는 분들이 있다고 우릴 촬영팀에 자랑해줬대요. 그래서 만났는데 사는 것이 이상적이니까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던 것이지. 제목이 <사랑>이라고. 그때 난 노래를 저기 <청춘가>를 갖고 데뷔를 했어야 했는데 노래방 기계가 그게 없대. 그래서 딴 걸로 해달라고 해서 <사랑의 이름표> 갖고 했는디. 그래 가지고 우리를 만났는데 노래도 잘하고 둘이 사는 것이 너무 이상적이니까 다큐멘터리를 찍게 됐던 것이지. 제목이 <사랑>이었지. 씨네21: 영화에도 나오지만 인상적인 무대 위 대사는 할머니께서 준비하신 거예요.

이순예: 맘은 있었어도 표현할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하고 나서 드는 생각이 여러분들도 속에만 놓고 있지 말고 그냥 표현을 해라. 두드리면 열리니까 사랑을 해라. 큰 사랑을 이루려면 만날 연구를 해라. 그랬지.

現場(현장)

현장에서 감독이 요구하는 감정선을 찾아내기란 모래판에서 바늘을 찾는 일처럼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나 아마추어 배우가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을 재연하기란 버겁게 마련이다.

박치규: 나도 이왕 만났으니까 아주 멋지게 그렇게 살아보자 맘을 먹고 있었고, 영화하면 젊은 사람들이 봐도 이거보다 더 멋지게 살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씨네21: 가파른 계단 올라가시는 장면 있잖아요. 많이 오르내리셨어요.

박치규: 아니. 한 두세번 올라갔나. 아니 많이는 안 올라가고 한두번 올라갔을거여.

이순예: 힘들지. 거기 오르내리려믄. 가파르기도 하고 또 좁고.

박치규: 영화에 찍을 만한 그림이 되니까 거기서 그랬던 것인데. 내 살던 데는 아니고, 내 다니던 그 옆 골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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