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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 2002 엔딩 크레딧 <9>
2002-11-29

부산의 발견2 - <너는 찍고, 나는 쏘고>의 홍콩감독 펑하오싱"킬러도 밥먹고 부부싸움하지 않을까?"

킬러도 불황을 겪는다. 한때 사람 죽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킬러 바트는 홍콩의 경제침체 때문에 아내의 쇼핑도 뒷받침하기 힘든 처지로 전락한다. 이때 고객 마부인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살인장면을 녹화해오라는 그녀의 요구 때문에 영화감독 지망생 추엔을 섭외한 바트. 그는 뜻밖의 호응에 놀라면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로 결심한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오래간만에 만나는 신선한 홍콩영화다. 스물아홉의 젊은 감독 펑하오싱은 정식으로 영화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타고난 유머감각과 망설이지 않는 과감한 연출로 보름 만에 영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주로 코미디 극본을 써온 그는 평소에 말을 아끼는 대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글로 토해낸다고 했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그 많은 이야기가 황당하면서도 귀엽게 녹아 있는 영화다. 마틴 스코시즈와 <사무라이> <첩혈쌍웅>을 인용하고, 홍콩영화계의 현실을 비장한 농담으로 풍자하며, 영화와 현실 사이를 빠른 박자로 뛰어다닌다. 펑하오싱은 자신의 발언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회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 듯 보인다. 전설적인 갱을 살해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임무를 해결하는 대단원. 펑하오싱은 감독과 킬러라는 독특한 콤비를 활용해 그 자체만으로도 완결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는 씁쓸한 코미디를 완성해냈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는 새로운 감각의 홍콩영화를 만나는 반가운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첫 영화를 보름 만에 찍었다. 현장경험도 없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가.

→ 처음엔 다른 제작사가 열흘을 제안했다. 도저히 못할 것 같아 거절한 다음 골든하베스트가 보름을 주겠다고 했다. 홍콩은 신인 감독이 기회를 얻기가 정말 어려운 곳이다. ‘보름이면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골든하베스트가 일단 이틀 찍은 분량을 본 다음에 최종결정을 내리겠다고 한 것이었다. 이틀 찍으면서 마구 울었다. (웃음) 그게 마지막이 되는 줄 알고. 다행히 영화를 찍게 됐지만, 시간이 없어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생각나는 대로 바로바로 찍어야 했다. 편집하는 친구는 나와 같은 건물에 살았고 편집실도 그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붙어서 편집하기도 했다.

서로 원하는 것이 어긋난다는 점에서 바트와 추엔의 관계는 감독과 프로듀서 같다. 바트는 빨리 살인을 끝내려고 하고, 추엔은 멋진 영화를 찍기 위해 살인을 오래 끌기를 바란다.

→ 맞다. 거기엔 한 가지 아이러니가 더 있다. 킬러는 사람들이 자기를 몰라줬으면 하고, 감독은 자기를 알아줬으면 한다. 영화 속 감독이 프로듀서한테 월급 달라고 징징대는 장면에도 내 경험이 들어 있다.

<너는 찍고, 나는 쏘고> 홈페이지엔 홍콩은 청부살인이 번성하기 좋은 곳이라는 설명이 있다.

→ 난 홍콩 사람들 마음 속엔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영화 <풀타임 킬러>의 원작 소설은 두 킬러를 다루는 내용인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킬러 이야기에 소질이 있다며 직접 영화를 찍어보라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살인은 무겁고 진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코미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킬러도 직업이라는 전제나 킬러의 일상을 삽입한 장면이 재미있었다.

→ 바트와 추엔이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 포스터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난 그 영화를 보면서 참 쿨하다, 담배 피우는 모습이 멋있다, 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다. 킬러는 혼자 고독하게 폼잡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밥먹고 부부싸움하면서 살지 않을까

열아홉살 때부터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상당히 일찍 시작한 편인데.

→ 추엔의 비디오를 보면 판권에 관한 경고 자막이 올라간다. 내 가족들은 관객이 그걸 보고 웃자 매우 이상해했다. 내가 열네살 때부터 비디오를 찍으면서 항상 그런 경고문을 넣었기 때문이다. (웃음) 오우삼이나 서극의 영화를 좋아했고, <영웅본색>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학교 졸업하고 고민해보니까 딱히 잘하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편집감각을 익혔고 방송사에서 코미디 대본도 썼다. 어느 날 방송사 사람이 감독이 되고 싶으면 연기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구나, 하면서 스탠딩코미디 같은 연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감독이 됐다. 영화를 한편밖에 못 찍을 줄 알았는데. (웃음) 다음 영화는 콜럼비아와 하기로 했다. 비련의 애정영화. 프로듀서들은 “홍콩엔 울 일도 많은데 영화 보면서까지 울어야 하냐”면서(웃음) 코미디를 원하지만, 나는 다양한 영화를 찍고 싶다.글 김현정 parady@hani.co.kr 사진 윤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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