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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선후보 이회창 서면인터뷰
2002-12-07

˝문화예산을 1.5% 수준으로 확대하겠습니다˝

<씨네21>은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 기획의 세 번째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인터뷰했습니다. 이 기획의 목적은 12월19일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 및 정당의 영화영상 관련 정책의 밑그림을 미리 살펴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독자들이 후보들의 문화적 소양이나 문화관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단, 각 후보의 의사와 사정을 반영해 직접 만나거나 서면으로 하거나 둘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후보마다 달리 인터뷰가 이뤄질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힙니다.편집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5년 전 대선을 앞두고 <씨네21>이 같은 기획을 했을 때 인터뷰에 응한 바 있다. 당시에는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으나, 이번에는 일정 조정이 힘들어 서면인터뷰로 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지난번 대선 때 지금까지 보신 영화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영화가 <미션>이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으신지요. 또 <미션> 외에 몇편을 더 꼽는다면.

→ 제가 97년에 그렇게 대답했나요 세월이 흐르긴 했지만, <미션>이 제가 본 영화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그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둔 작품이고, 무엇보다 종교적 숭고함이나 인간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배경음악과 남미 이과수폭포를 배경으로 한 장엄한 영상도 참 멋졌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로버트 드 니로나 제레미 아이언스 등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고요. 그외 기억에 남는 영화가 몇편 있는데 아마도 제가 대학 1학년 때에 본 스탠리 큐브릭 감독,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스팔타커스>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영화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뇌리에 깊이 남아 있는 영화입니다. 스튜어트 그랜저 주연의 <스카라무슈>도 지금까지 깊게 인상에 남아 있고, 그 밖에 최근에 류승범씨가 주연한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퍽 재미있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보신 한국영화는 무엇인지요

→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입니다. 내용도 괜찮았지만, 여자주인공으로 나온 문소리씨의 연기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보고 싶은 영화는 많은데 요즘에는 시간이 거의 나지 않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 감독과 배우, 외국 감독과 배우를 꼽으신다면.

→ 좋아하는 한국 감독들이 몇분 있는데, 굳이 한 사람만 꼽으라면 <집으로…>를 만든 이정향 감독입니다. 그리고 남자배우는 안성기씨, 여자배우는 문소리씨입니다. 외국 감독으로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가장 좋아합니다. 특히 인류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제작한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느낀 점이 참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의 존엄과 가치, 생명 존중이라는 감독의 철학이 짙게 밴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외국 남자배우로는 로버트 드 니로, 여자배우로는 <양들의 침묵>에서 주인공으로 나왔던 조디 포스터입니다.

스크린쿼터에 대해 어떤 입장이신지요. 정부는 지난 6월30일 WTO 회원국 23개국에 대해 양허요청안을 제출했습니다. 이를 철회하지 않는 한 스크린쿼터는 축소, 폐지될 수밖에 없습니다.

→ 스크린쿼터제는 유지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 입장입니다. 쿼터제도의 유지 여부에 기준이 되는 시장점유율 40%를 지난해에 넘었기 때문에 축소 내지 폐지 주장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시장 전체가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시장과 동일한 조건의 경쟁상대가 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영화시장의 기반이 허약합니다. 영화제작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어 생활하기가 힘들 정도이고,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를 받는 영화는 아직 극소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최근 많은 예산을 들인 영화가 흥행에 참패하고 난 뒤, 투자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40% 시장점유율은 매우 불안정안 상태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스크린쿼터가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영화사의 직배체제가 가져올 유통망의 장악 가능성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 국제대회에서 호평받고, 또 국민들이 보고 싶어하더라도, 외국 메이저 배급사의 막대한 자본에 밀려 극장을 얻지 못해 상영조차 할 수 없다면 우리 영화시장의 쇠퇴현상은 불을 보듯 뻔할 것입니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우리 문화를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의 스크린쿼터제는 현행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이러한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단 내년 3월로 예정되어 있는 WTO 양허각서안 제출을 연기하고 개방의 폭과 속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습니다.

한국영화 의무방영 비율인 방송쿼터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 방송쿼터의 경우 2001년 방송위원회 고시로 그 비율을 하한에 가까운 25%로 규정하여 현재까지 유지해왔으나, 그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고, 주요 시청 시간대의 방영비율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방송사들이 우리 영화제작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유도할 수 있고, 독립영화나 고전영화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공중파 방송의 공공성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쿼터는 그다지 큰 부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 사태처럼 표현의 자유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 표현의 자유는 문화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터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기본 입장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사회적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과 청소년과 같이 자라나는 세대에 정서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일정 정도의 제한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사법적 통제보다는 시민사회의 보편적 합의에 의한 자율적인 규제와 제한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음성적·탈법적인 사업을 통해 사회악을 조장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적 제재가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표현물에 대한 수사만큼은 불구속 수사로 하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 여기에서도 사안을 둘로 나누어서 봐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적법한 상황에서 문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표현물인데 일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불구속 수사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당연히 현행법의 엄격한 적용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법으로 판정하기 전에 시민사회의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선행되고, 또한 자율적으로 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저예산영화, 독립·예술영화들이 극장을 잡기 힘든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들의 상영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원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 언급하신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극장에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극장으로부터 외면당하는 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이들 영화에 대한 국가지원은 영화산업의 기반을 다진다는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우선 저예산 예술영화가 자유롭게 상영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방안을 모색하겠습니다. 기존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보고, 장기적으로는 예술영화전용관 건립을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재원은 영화진흥금고를 활용하는 방안과 기업의 지원이나 시민사회의 모금 등을 통해 공익기금을 확보하는 방안이 있을 것입니다. 필요할 경우 영화진흥금고에서 추가로 출연해 현재 영화진흥위원회가 추진하고 있는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전용관 체인사업이 효율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예술영화상영관 확보를 위해 이런저런 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예산문제로 전향적인 방안이 못 나오는 듯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 영화진흥법 개정시 정부가 위원회의 예산승인권을 넣었고, 이후 예술영화전용관 사업 추진 등에서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 저는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를 문화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습니다. 민간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율적이고 전문적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영화진흥법상 문화관광부의 예산 승인권 조항의 폐지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자율권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위원회의 개방성과 합리적인 의사결정, 민주적 절차 등이 담보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문화관련 예산을 늘릴 생각은 없으신지요.

→ 저의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은 문화예산 증액과 순수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문화예산은 현재의 1% 수준을 최소한 1.5%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전체 문화예산의 16.2% 수준인 순수예산 규모를 20% 수준으로 늘려 순수 문화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5일근무제는 문화 향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주5일근무제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 세계적인 추세나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으로 주5일근무제로 가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사 모두가 반대하는 주5일근무제를 정부가 법 제정을 통해 강행하려는 것은 찬성할 수 없습니다. 노동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기업경쟁력과 근로자 삶의 질, 이 두 가지를 같이 고려한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주5일근무제 문제는 노사 양쪽과 국민들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당장은 사업장마다 노사합의를 존중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주5일근무제가 노사합의로 도입된다면 늘어난 여가시간으로 국민들의 문화활동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국민적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시설의 충분한 확보와 프로그램 및 콘텐츠 개발이 꼭 필요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부족한 시설의 확충은 국민의 문화권 확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국가지원을 검토하겠습니다. 또한 국민의 문화생활을 권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문화비용 일정액에 대한 세액공제도 검토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