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6>
2002-12-12

썩은 세상,나는 영화를 가지고 싸운다

주말 Le Week-end1967년 ┃ 105분 ┃ 출연 미레유 다르크, 장 얀

파리에 살고 있는 탐욕적인 부부 롤랑과 코린은 시골에 있는 코린의 부모를 만나기 위해 주말에 자동차를 끌고 나간다. 그런데 이들을 맞는 것은 끔찍한 교통 정체와 그것보다 훨씬 더 나쁜 혁명가들이다. 영화 속의 인물인 롤랑이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자신들에 대한 악의를 알아챈 듯 "불쾌한 영화 같으니라구. 우리가 만나는 건 죄다 미친 사람들이잖아”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영화>와 <쓰레기더미에서 발견한 영화>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주말>은 이 주인공들 같은 인물, 즉 탐욕스럽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르주아들에 대한 가차없는 비판으로서 만들어진 영화다. 이 명백히 정치적인 영화에는 분석 같은 것도 없다. 고다르는 부조리한 유머와 섬뜩한 폭력을 융합해 부르주아들과 소비사회를 무참하게 공격한다. 한편 <주말>은 고다르 특유의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한데, 특히 유명한 것은 자동차들로 꽉 막힌 도로를 거의 8분에 걸쳐 잡아내는 긴 수평 트래킹 시퀀스이다.

만사형통 Tout va Bien1972년 ┃ 90분 ┃ 출연 이브 몽탕, 제인 폰다

1969년부터 고다르는 영화제작의 주류와 손을 끊고, 장 피에르 고랭과 함께 지가 베르토프 그룹을 통해 매우 급진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만사형통>은 바로 그들이 “더 많은 관객을 위한 유물론적 픽션영화 제작으로의 중대한 일보 전진”이라고 생각해 만든 영화다. 이건 무엇보다도 이브 몽탕과 제인 폰다라는 ‘스타’를 기용한 영화라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여기서 고다르가 이전 시기의 영화들과 ‘단절’을 꾀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지난 4년 동안 배우고 실험한 바를 적극 수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혁명이 끝나버린 이 반동의 시대에 성의 정치, 산업의 정치, 그리고 재현의 정치들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를 묻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브레히트 방법론의 영화적 활용이다. 영화평론가 로빈 우드는 <만사형통>이 고다르의 영화들 가운데 브레히트의 ‘소외 효과’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낸 영화라고 평가했다.

카르멘이란 이름 Pr nom: Carmen1983년 ┃ 85분 ┃ 출연 마르슈카 데트메르, 자크 보나페, 장 뤽 고다르

<카르멘이란 이름>은 메리메의 유명한 카르멘 이야기가 그 원전이지만 둘 사이의 공통점은 집착의 러브 스토리라는 기본 설정 정도다. 영화는 치명적으로 매력적인 한 여성 테러리스트와 그녀에게 집착하는 경찰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는다. 그 바깥에다가 고다르는 우선 (비제가 아니라) 베토벤의 현악 4중주와 파도나 도시 풍경 등의 정물적 이미지를 교차해 이미지와 사운드의 협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영화의 또 한편에는 고다르 자신이 직접 연기하는 괴팍한 영화감독 ‘장 아저씨’의 에피소드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희극과 비극, 스릴러와 신화 사이에 교묘하게 위치하게 된 이 영화의 가장 중심적인 측면은 아무래도 이미지에 대한 명상, 그리고 이미지를 ‘연주’한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마리아에 경배를 Je Vous Salue Marie1985년 ┃ 97분 ┃ 출연 미리엄 루셀, 티에리 로드

제목에서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마리아에 경배를>은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의 ‘처녀 수태’ 이야기를 기초로 만든 것이다. 고다르는 이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놓는다. 영화 속에서 마리는 주유소의 점원에 농구선수이고 조셉은 택시운전사이다. 가브리엘로부터 수태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은 뒤로 마리와 조셉은 각기 다른 이유로 번민에 빠져든다. 영화는 마리와 조셉의 이 중심적인 스토리라인 옆에 한 여학생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의 이야기를 붙여놓는다. 그는 처음에는 생명이란 게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이였지만 차츰 무언가 신성한 구조의 존재를 믿게 된다. <마리아에 경배를>은 80년대의 고다르가 어떤 문제로 관심사를 돌렸는지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여기서 그는 굉장히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제시함과 더불어 생명의 기원, 정신과 육체의 관계, 초월성의 문제 등에 관해 진중한 질문들을 던지고 사고한다.

독일 90 Allemagne ann e 90 Neuf z ro1991년 ┃ 62분 ┃ 출연 에디 콩스탄틴, 한스 치슬러

<독일 90>에서 고다르는 30여년 전에 만들었던 자신의 영화 <알파빌>의 인물, 에디 콩스탄틴/레미 코숑을 불러온다. 이 영화에서도 레미 코숑은 여전히 비밀 정보원이지만 나이들고 쇠약해진 ‘최후의 스파이’인 그에겐 이제 특별히 맡겨진 임무랄 게 없다. 영화는 그가 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동독에서 서쪽을 향해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그와 함께 독일의 ‘고전’영화들과 나치 시절의 영화들로부터 가져온 클립들을 인용해 보여준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의 독일에 대한 영화라고 하면, 어쩌면 이것이 혹시 정치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드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 90>은 90년대 이후의 고다르가 정치적인 발언으로부터 많이 멀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고독 혹은 상실이 될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고 역사의 고독, 영화(와 예술)의 죽음을 아우르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역사 Histoire(s) du Cin ma1998 ┃ 총 270분

영화평론가 세르주 다네와의 인터뷰에서 고다르는 “가장 위대한 역사는 영화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의 역사>는 언제나 ‘비평가’였던 고다르가 바로 그 ‘가장 위대한 역사’를 스스로 정리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참된 영화의 역사란 일러스트레이션이 삽입된 텍스트들이 아니라 이미지와 사운드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 자신의 신념에 따라 기록된 것이다. 여기서 고다르는 영화의 역사를 수놓은 수많은 영화들의 이미지와 사운드의 단편들과 자신의 코멘트를 아주 매혹적으로 결합해낸 영화사를 내놓는다. 여기에 쓰여진 것은 역사 속의 사건들을 연대기순으로 늘어놓는 식의 단선적인 역사가 아니라 고다르 자신의 말을 빌리면 생물학적인 방식을 통해 이야기되는 역사, 그리고 단순히 과거만이 아니라 가능성들까지 포함되는 복수의 역사이다. 그리고 중요하게 이것은 나, 바로 고다르를 중심에 놓고 쓰여진 영화의 역사이다. 오랜 시간의 노고를 들여 완성된 이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 틀림없이 20세기 영화사의 최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

영화제 열리는 장 뤽 고다르,그 여백의 영화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