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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습 드러낸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 첫 시사기 <2>
2002-12-14

길었던 1년,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 완벽한 영웅담, 풍요로운 서사

<반지의 제왕>은 선과 악의 싸움을 그린 판타지다. 사우론이라는 절대악의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오히려 내면의 두려움과 흔들림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반지를 모르도르의 불길에 던질 자는 가장 나약한 호빗족의 프로도다. 프로도는 끊임없이 반지의 유혹에 흔들린다. 만약에 간달프가 없었다면, 만약에 샘이 없었다면 프로도는 결코 모르도르로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반지는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자신이 최고의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유혹한다. 보로미르가 그렇게 반지의 유혹에 눈이 멀었었고, 파라미르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 반지의 소유자였던 골룸은, 사실 골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프로도가 찾아준 이름처럼, 스미골일까 주인을 믿으면서 골룸에게 사라지라고 말한 스미골이었지만, 의심하는 순간 다시 골룸은 돌아온다. 우리 마음속의 미혹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프로도에게 반지가 주어진 것은, 그가 나약함을 알기 때문이다. 프로도는 결코 자신이 반지의 주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호빗족이 중간계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나약하기 때문에, 약한 자신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프로도는 반지에 최후를 안겨줄 수 있는 영웅이 된다. 후세에 아이들이 위대한 프로도와 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아버지에게 조르는, 옛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영웅의 모험을 풍요로운 말로 전해주는 서사시로서 손색이 없다. 이 광활한 이야기에는 사랑과 배신, 탐욕과 죽음, 고결한 희생과 헌신 등 이 세계와 존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게다가 피터 잭슨의 유머까지도.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아나킨과 아미달라의 로맨스는 고개도 내밀 수 없는 애절하고 비극적인 사랑도 있다. 왕족의 후예인 아라곤은 요정인 아르웬과 사랑을 하지만 헤어져야만 했다. 영원의 생명을 가진 요정과 유한한 육체에 갇힌 인간의 사랑에는 무한한 희생이 필요하다. 요정은 늙고 쇠락하다가 결국은 사그라드는 연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물론 영원토록 그 기억을 간직해야 한다. 여성의 힘을 찬양하는 혜안도 있다. 세오덴의 조카인 에오윈은 어린 시절부터 검술을 배운 공주이면서, 여전사다. 아라곤은 그녀의 강인함과 자애로움을 꿰뚫어본다. 애증을 함께 던질 수밖에 없는 골룸의 캐릭터도 눈길을 끈다.

서정적인 아름다움도 가득하지만, <반지의 제왕>은 대지의 웅혼함이 담긴 거대한 전쟁 서사극으로서도 최고다.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보고 보충촬영을 했다는 헬름 협곡의 전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산을 뒤로 한 좁은 요새를 향하여 가득 밀려오는 사루만의 군대. 우르크하이 군대가 긴 창을 들고 저벅거리며 다가드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기다란 사다리로 성벽을 기어오르고, 거대한 통나무로 성문을 부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으면 절로 손바닥에 땀이 맺힌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글래디에이터> 초반에 등장하는 로마군과 게르만족의 스펙터클한 전투를 몇십, 몇백배로 확장한 전투장면을 보여준다. 헬름 협곡의 전투를 보고 있으면 <스타워즈 에피소드2>가 까마득한 과거의 기억으로 여겨질 정도다.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거대한 건축물과 수만명의 인간이 함께 등장하던 스펙터클이 이제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하여 주류로 올라섰음을 <반지의 제왕>은 확실하게 증명한다. 거대한 세트를 모두 세우지 않고도, 수만명의 엑스트라를 모두 동원하지 않더라도 컴퓨터그래픽으로 나머지를 메울 수 있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제작진은 엘프, 우루크하이, 로한 왕국 병사 등이 입을 4만8천벌 이상의 갑옷을 제작했고 각각의 종족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긴 무기 2천개 이상을 만들었다. 이 사실적인 고증 위에 덧붙여진 것은 디지털이다. 우루크하이와 요정, 인간 병사들이 얽혀 싸우는 장면에서는 수많은 디지털 캐릭터들이 함께한다. 엑스트라에 불과한 디지털 캐릭터들에게도 시력, 청력, 촉감과 같은 감각이 부여되어 주변환경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실제 사람과 동일한 감각으로 움직인다. 캐릭터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인격도 부여되어 거만하거나 호전적이거나 소심한 성격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외양에서도 얼마나 더럽고, 피곤하고, 키가 큰 지 등을 나타내는 파라미터가 있어 디지털 캐릭터의 행동 방식은 수없이 많다. 결국 수만명의 병사들이 얽혀 싸우는 장면은 실제의 배우와 디지털 캐릭터가 한데 뒤얽혀서 영화 사상 최고의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디지털로 만들어진 중요 캐릭터인 골룸과 앤트족, 그리고 익룡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나즈굴도 눈을 황홀하게 한다.

◈ 모험을 넘어, 판타지를 넘어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은 영화가 시작되고, 두 갈래로 나뉜 반지원정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편안하게 바로 이야기로 빨려들어간다. 1년의 기다림은 순식간에 잊혀진다. <반지의 제왕>은 태초의 시작이 ‘말이 있으라’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반지의 제왕>은 말로 지어진 거대하고도 완벽한 세계다. 말로 지어진 세계는 반 세기 동안 육체를 얻지 못하다가, 21세기에 들어서야 자신의 육체를 얻었다. 많은 종족들이 기거하는 중간계는 그들만의 하늘과 땅과 강을 얻은 것이다. 육체는 유한한 것이지만, 그래도 이 순간만은 그들에게 영원한 약속의 땅이다. 이미 중간계의 운명이 다했음을 내다본 엘프는 영원의 땅으로 떠나려 한다. 그리고 인간과의 사랑을 위해 남겠다는 딸을 설득한다. 영원한 슬픔만이 남을 것이라며. 하지만 결국 엘프는 중간계의 운명을 둘러싼 싸움에 뛰어들고 만다. 어디에도 개입하지 않았던 앤트족이 전쟁에 뛰어든 것처럼.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의미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와 관계없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은 그 허황된 판타지가 바로 우리 세상의 이야기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공상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바로 그 아득한 모험과 로맨스가 펼쳐졌던 것이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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