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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플래닛`의 자연 다큐멘터리들
2002-12-18

24시간 동물의 왕국!

보통 시계를 보고나서 TV를 켜게 되지만, 역으로 TV에서 어느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몇시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말고 온 국민이 암묵적으로 ‘저 프로는 몇 시’ 하고 외우는 프로그램은 이제 단 하나다. 바로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다. ‘빰빰빰빠라빠빰빰빰~’ 하는 음악이 나오고 이완호 성우의 낭랑하고도 무게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다들 알게 된다. 아하. 오후 5시30분이 다 되었나보구나. 그리고 동물의 세계가 시작된다. 하지만 정말로 펼쳐지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의 시선과 인간의 자세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인간은 문명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은 자연을 정복한다고 생각하면서 파괴하고, 그러면서도 거꾸로 자연에 잠식당하면서 살아왔다.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에서 보여주는 수많은 동물 다큐멘터리는 단지 동물 사이의 약육강식과 생사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 파괴행위와 그 대가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우리 인간은 문명이란 이름 아래서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것은 옳은 것인가 어쩌면 동물들같이 사심없는 세계가 훨씬 정당한 것이 아닐까 때로 동물들이 인간과 똑같은 양태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권리의식은 오만이 아닐까 우리 인간에게 자연을 파괴할 권리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5시30분이라는 어린이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는 어른에게 더 호소력 있는 내용을 선사한다.

만일 <재미있는 동물의 세계>가 24시간 방영된다면 이미 있다. 바로 위성채널의 ‘애니멀 플래닛’이다. 말 그대로 동물의 왕국 채널. 이 채널은 정말 말 그대로 동물 다큐멘터리만 방송된다. 그러나 단순히 동물을 마구 찍는 것이 아니다. 애니멀 플래닛의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를 동물의 세계로 초청하고 느끼도록 자리를 마련해준다. 인간으로서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입장을 떠나 동물을 이해하도록 한다. 지구를 사랑하고 인간 이외의 생명에 눈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인간 이외의 삶에서 생동감있는 드라마를 얻는 것이다.

근래 늘어난 국내의 동물 관련 다큐멘터리와 비교해볼 때, 애니멀 플래닛의 다큐멘터리는 좀더 안정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두고 있다. 애니멀 플래닛 채널 프로그램 중 가장 동물을 우스개로 삼는 ‘지상 최대의 웃기는 동물들’(The Funniest Animal on Planet)에서조차 동물들의 행태는 비하대상이 아니다. ‘화요 동물병원’(Tuesday Trauma)에서 다친 동물들의 상황상황은 이 동물들을 치료하고 돌보는 것이 동정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동물의 왕국>이 <X파일>을 만났다’라는 다소 과장된 수사의 ‘초자연감각’(Supernatural)도 단순히 동물이 이러저러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넘어서 동물의 시선에서 그 능력을 어떻게 쓰는지를 화면상에서 재현하려 한다. 어떻게 느끼라고 시청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게 해주려 노력한다.

이에 비해 국내 제작 동물 다큐멘터리는 해설자를 거의 변사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화면에 나온 것을 시청자가 이해하기도 전에 요약정리해주고, 부족한 자료화면도 다 말로 해주고, 자막까지 동원해 보충설명해주며, 방청객까지 동원해서 어디서 웃고 울어야 할지까지 지정해준다. 국내 제작 동물 관련 프로그램 중 가장 건전한 <TV 동물농장>만 해도 이 포맷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동물 관련 프로그램은 아예 다큐멘터리가 아닌 학대 생중계에 가깝다.

애니멀 플래닛과 국내 동물프로그램과 차이점은 단지 사전 제작규모가 작다 크다만이 아니다. 애니멀 플래닛에 배어든, 동물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단연 독보적이다. 동물만 계속 보다보니 그런 걸까 극영화처럼 프레임 잡은 것만 봐도 느낌이 온다. 말이 필요없다. 카메라맨들이 동물과 교감을 하는 것만 같다. 애니멀 플래닛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 동물에 미친 사람들인가보다 싶다. 아마도 그래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개인적으로 애니멀 플래닛 채널광고를 상당히 좋아한다. 로고로 쓰고 있는 지구 모양이 마치 살아 있는 듯이 나비, 벌, 개구리, 개, 늑대 등 온갖 동물의 행태를 모사한다. 지구본 모습이 달 보고 우어~ 하고 짖거나 벌처럼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광고를 보다보면 저절로 입에 미소가 떠오른다. 얼마나 동물을 이해하게 되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동물의 모습을 따라할 수 있는 걸까 개인적으로 스카이라이프에서 아직 애니멀 플래닛에 자막을 넣지 않는 것을 고맙게 여긴다. 화면 하나하나에 스며든 함의와 생각할 여지를 자막으로 가리거나 자막 보느라 놓치는 것보다는, 영어를 알아들으려고 애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애니멀 플래닛은 영어방송에 무자막으로 방영되고 있으며, 우리말 제목 소개는 임의로 옮긴 것입니다.남명희/ 자유기고가 zoo@zootv.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