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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서울독립영화제로 만나는 존 카사베츠 감독 <2>
2002-12-20

낯설고 도발적인 세계로의 초대

<그림자들>은 별다른 내러티브가 없다. 젊은이들은 적당하게 삶의 과정에서 절망을 겪고 사랑을 나누며 또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1950년대 미국사회를 스케치하는 것이며 당대 젊음의 기운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다른 연출작에 비해 <그림자들>은, 유독 카사베츠 감독이 형식적 자유를 만끽한 영화로 볼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의 규범과는 거의 관계가 없으므로. 내러티브는 산만하고, 촬영과 편집 모두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그런데 역으로 이 산만함이 당시의 관객과 미국 영화인의 호응을 얻었다. <그림자들>엔 문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약동하는 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리고 정의하기 힘든 슬픔까지. 한쌍의 남녀가 희미한 조명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이후 허탈감에 빠져 서로의 행로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을 보면 아릿한 느낌이 배어난다. 공원을 질주하는 남녀, 요란한 파티의 모습, 대도시의 야경을 차례로 스크랩하면서 <그림자들>은 동시대 미국 인디영화의 대명사 같은 작품이 되었다.

존 카사베츠에겐 이론가 중에도 열광적인 지지자가 한명 있다. 레이 카니라는 학자다. 레이 카니는 보스톤대학 영화과 교수이며 카사베츠의 작품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카사베츠 인터뷰집과 촬영장 스케치, 그리고 영화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에 걸쳐 감독에 대한 집필작업을 벌였다. 최근 국내에도 <존 카사베테스의 영화들>이라는 저서가 한권 번역되었다. 이 절대적인 카사베츠 매니아 겸 학자가 “미국영화사에서 빼어난 천재성을 과시한 작품”이라고 상찬한 영화가 <얼굴들>이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는 많은 설명을 달지 않기로 유명하다. 여느 할리우드영화가 캐릭터와 이야기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면, 카사베츠 영화는 정반대다. 오랫동안 영화를 지켜보고 있어도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얼굴들>은 어느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를 고찰한다. 남편은 어느 매춘부와 연애를 하고 아내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바쁜 몸이다. <얼굴들>은 대체로 실내장면이 많다. 그런데도 영화의 호흡은 느리지 않다. 카사베츠는 좁은 실내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핸드헬드 기법을 응용해 들고찍는 방식으로 많은 장면을 촬영했다. 당연하게도 영화 속 주택은 좁은 공간임에도 미로처럼 얽힌 모습이며 명암대비 역시 강렬하다. 시네마 베리테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카사베츠가 영화 공간에 대한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갖춘 연출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미로를 헤맬 자신이 있다면, 보라!

존 카사베츠의 영화는 가족에 관한 것이 적지 않다. <얼굴들> <미니와 모스코위츠> <영향을 받은 여인>, 그리고 <남편들> 모두 가족과 결혼을 다룬다. 변형된 갱스터영화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이 영화는 <어느 중국인 마권업자의 죽음>으로도 알려진다)과 지나 롤랜드를 전설적인 여배우의 경지로 끌어올린 <글로리아>를 제외하면 그의 필모그래피에선 가족드라마라고 칭할 만한 영화가 다수를 차지한다. 카사베츠의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드라마와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할리우드의 가족멜로드라마의 대가라면, 우리는 더글러스 서크를 떠올릴 수 있다. <바람 위에 쓴>(1957)와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 같은 영화를 통해 서크 감독은 이 장르의 대가가 되었다. 더글러스 서크 감독은 할리우드 가족드라마의 허구성을 구축하고 이를 관객에게 노출하는 방식을 통해 허구성을 토로하는 방식을 택했다. 카사베츠는, 허구성 자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역으로 공격한다.

카사베츠가 말년에 만든 <사랑의 행로>는 이를 요약해 보여준다. 영화에서 어느 오빠와 여동생은 가족이면서 계속 엇갈린다. 지나 롤랜드가 연기한 여동생은 가족을 잃었고, 존 카사베츠가 연기한 오빠는 중년 바람둥이다. 이들은 영화 내내 제대로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으며 소통할 수 없음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랑의 행로>에서 둘의 만남장면을 보자. 카사베츠 감독은 두 인물을 한 프레임에 놓는 대신, 카메라로 지나 롤랜드만을 포착한 상태에서 대화를 진행한다. 따라서 두 사람은, 마치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서크 감독이 허구성에 집착했다면 카사베츠는 날것 그대로의 삶과 영화, 그 가장 깊숙한 지점에 도달했던 감독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영화학자 레이 카니는 “카사베츠의 영화는 혼란함에서 명확함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라고 적었다. 같은 이유로 존 카사베츠는 영화를 보며 미로 속에서 기꺼이 길을 잃을 각오를 한 사람에게 주류 문화에서 만날 수 없는, 무한하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체험하게 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garota@empal.com

영화 후배들이 말하는 카사베츠

→ “그의 초기영화였을 것이다. 한 아이가 강의실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건 미국영화잖아.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의 행동, 성인의 삶이 펼쳐지고 있어. 누가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지’라고. 아이는 카사베츠의 영화가 다른 미국영화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유럽영화만 자연적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 아이가 나다.” - 존 세일즈(영화감독)

→ “난 TV에서 카사베츠 영화를 보고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다. 그의 초기 시네마베리테 스타일은 날 사로잡았다. 황홀하게 경외심에 가득 찬 채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게리 올드먼(영화배우)

→ “카사베츠가 훌륭한 형식의 창조자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만의 매체를 창조했고 스타일의 길을 선택했다.”- 올리비에 아사야스(영화감독)

→ “난 카사베츠 영화 중 <오프닝 나이트>를 최고로 꼽는다. 여기서 지나 롤랜드의 캐릭터는 정말 대단하다. 그녀는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많은 것을 카사베츠 영화로부터 배웠다.” - 페드로 알모도바르(영화감독)

→ “영화 <중경삼림>의 몇 부분은 카사베츠의 <글로리아>에서 아이디어를 빌려왔다. 제작과정에서 내가 기준으로 삼은 영화이기도 했다. 우리는 따로 대본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제작 과정에서 참고로 할 영화가 필요했고 카사베츠의 영화는 적절한 원형이었다.” - 왕가위(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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