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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서울독립영화제로 만나는 존 카사베츠 감독 <1>
2002-12-20

낯설고 도발적인 세계로의 초대

2002 서울독립영화제가 존 카사베츠 회고전을 연다. 독립적인 영화란 무엇인지, 독립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영화를 통해 어떻게 한 정신이 독립할 수 있는지를 거침없이 보여주었던 인물 존 카사베츠 감독을 돌아보기에는 썩 어울리는 자리다. 아담한 규모의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림자들> <얼굴들> <영향 아래 있는 여자> <차이니즈 부키의 죽음> <오프닝 나이트> 등 다섯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왕가위, 마틴 스코시즈, 존 세일즈, 올리비에 아사야스 같은 우리가 신뢰하는 감독들의 찬사의 창을 통해서만 실루엣을 보아온 카사베츠의 실체를 만날 수 있는 기회다.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 존 카사베츠, 드디어 그가 시비를 걸어올 것이다편집자

어쩌면, 우리는 너무 길들여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소비되면서 동시에 소모된다. 멀티플렉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한 일이 되었다. 각기 다른 지역에 살고 있지만 관객은 누구나 ‘같은’ 영화를 보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멀티플렉스로 공급되는 영화들은, 유독 인기를 끄는 영화는 기묘하다. 열명의 사람이 관람하면 열명 모두 같은 종류의 감동을 받는다. 관객의 기억에 남는 장면도 비슷하다. “난 다른 종류의 감동을 원한다”라고 말하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없다. 그러니 대열에 합류하려면 멀티플렉스로 향해 남들과 같은 영화를 봐야 하고, 똑같은 감동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지?

남과 같다면 내가 아니다

존 카사베츠라는 감독이 있었다. 그는 끔찍하게도 타인과 다르게 살려고 애썼다. 원래 존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배우였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와 돈 시겔의 <킬러> 등에 출연했다. 우연하게 그는 감독의 길에 들어섰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약간의 제작비만 있다면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이 화근이었다. 막상 돈이 모이자 존 카사베츠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림자들>(1959)이라는 영화 한편으로 그는 미국 영화인의 우상이 되었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상을 받았고 이후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렇지만 존 카사베츠는 안정적이고 편한 길을 걷길 거부했다. “내 생각에 대해 확신을 잃어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타협이다”라고 말하면서 존 카사베츠는 영화제작비를 직접 마련했고 연출은 물론이고 촬영, 편집 등을 혼자 감당해냈다. 제작자가 따로 있는 경우라도 ‘나 홀로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어떤 연출작은 집에서 촬영한 뒤 또한 집 차고에 마련된 편집실에서 작업한 뒤 영화를 완성했다. 미국 인디영화계의 전설인 존 카사베츠, 그에게 길들여진다는 행위는 곧 죽음을 의미했던 건 아닐는지.

생전의 존 카사베츠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림자들>의 성공 이후 존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다리는 아이> 등을 연출한 뒤 존 카사베츠에겐 좋지 않은 평판이 따라다녔다. 그와 작업했던 제작자들은 존 카사베츠를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이라고 수근거렸고 영화에 대한 평가도 데뷔작에 미치지 못했다. 흥행성적도 저조했다. 그렇지만 존 카사베츠는 실망하지 않았다.

존 카사베츠 감독 필모그래피

* 장편 감독작

<그림자들> Shadows(1959)

<투 레이트 블루스> Too Late Blues(1961)

<아이는 기다린다> Child Is Waiting(1963)

<얼굴들> Faces(1968)

<남편들> Husbands(1970)

<미니와 모스코위츠> Minnie and Moskowitz(1971)

<영향 아래 있는 여자> Woman Under the Influence(1974)

<어느 중국인 마권업자의 죽음>Killing of a Chinese Bookie(1976)

<오프닝 나이트> Opening Night(1978)

<글로리아> Gloria(1980)

<사랑의 행로> Love Streams(1984)

오랜 시간 동안 끈질기게 새 작품을 준비하던 그는 <얼굴들>(1968)을 발표해 다시 인디영화계로 돌아왔다. 이 영화는 존 카사베츠가 시나리오, 촬영과 편집 등을 직접 맡았다. 배우로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동료들이 출연해줬고 부인인 지나 롤랜드가 주연으로 출연했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인생은 이렇듯 평탄대로와는 거리가 있었다. <글로리아>(1980)를 제외하면 일반 관객이 기억할 만한 히트작도 드물었다. 이 결과는 존 카사베츠가 굳이 관객에게 서비스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이유를 찾는 게 합당할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 시사회에서 존 카사베츠는 자신이 감독한 영화를 보고 관객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언짢아했다. 그 뒤 바로 편집을 수정했으며 영화는 수정한 편집본으로 극장개봉했다. 그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명료하고 깔끔한 영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는 자신의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존 카사베츠는 “어떤 이들은 관습적인 영화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지루하다. 난 관객과 경쟁하면서 그들을 앞지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가공된 진실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관습을 해제하고, 규범을 파괴하라

관습을 지양할 것. 존 카사베츠의 영화와 그의 영화인생은 실제로 그랬다. 존 카사베츠는 오슨 웰스와 비교하면 흥미롭다. 오슨 웰스 역시 배우 출신이었으며 이후 <시민 케인>(1941)이라는 영화사적 걸작을 만들었다. 할리우드 시스템 내부에서 오슨 웰스는 추락했지만, 어찌되었건 그의 영화가 비평적 상찬의 대상이 된 것은 확실했다. 카사베츠는 그 과정이 없었다. 존 카사베츠는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규범에 대해서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곤 했다. 영화연출에서 연기, 그리고 기타 여러 분야에 이르기까지. 존 카사베츠는 자신의 영화가 관습과 규칙에서 벗어나 있길 바랐으며 또한 그런 영화를 만들었다.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동안 존 카사베츠는 비평가들의 안락한 보호와 지지를 받기 힘들었다. 폴린 카엘 같은 비평가는 카사베츠 영화의 “세련되지 못함과 투박함”을 참기 힘들어했으며 카사베츠의 연출작에 대한 이론적인 분석이나 해석은 생전의 카사베츠를 만족시킬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지지자들은 미국의 젊은 영화인 집단에서 나왔다.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 피터 포크는 카사베츠와 친구 사이로 알려지는데 그는 카사베츠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여러 방법을 동원해 제작비를 모아주기도 했다. 마틴 스코시즈와 존 세일즈, 코언 형제 등의 영화인은 변함없는 카사베츠의 지지자이자 그에게서 영화적 영감을 얻었음을 고백하는 이들이다.

존 카사베츠는 영화를 만들면서 연기에 대해 쉬지 않고 고민했다. ‘카사베츠의 영화=카사베츠의 연기론’이란 공식이 성립해도 좋겠다. 배우들과 촬영하면서 그는 현장성과 즉흥성을 중시했다. 몇몇 영화에선 아예 정해진 대본 없이 일한 적도 있다. 배우들과 캐릭터, 그리고 영화의 상황에 대해 의논하면서 그때그때 촬영한 것이다. 카사베츠의 후기 걸작 <오프닝 나이트>는 정서적인 혼란을 겪는 어느 여배우의 삶을 무대 뒤와 리허설, 그리고 일상을 오가며 숨가쁘게 담아낸다. “미국이 가치있게 평가하는 예술, 그것은 돈버는 예술”이라고 정의한 카사베츠는 상업성 위주의 할리우드 시스템이 배우의 연기를 망쳐놓았다고 여겼다. 카사베츠가 유일하게 긍정한 미국적인 연기란, 1950년대 고전기 배우의 연기에 그쳤다. 이 사고방식은 카사베츠의 근본적인 영화관을 형성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림자들>에서 <사랑의 행로>(1984)에 이르는 카사베츠 필모그래피는 대안적인 영화, 대안적인 연기방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천재 감독의 변덕스럽고 불친절한 작품들

존 카사베츠는 좌충우돌하는 연출자였다. 그의 영화들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또한 그렇지 않다. 스타일은 각각의 작품마다 천차만별이고 영화의 질적 수준도 오락가락했다. 관객과 비평가를 희롱하듯 존 카사베츠는 게릴라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면서 언제나 그들의 기대를 외면하고 오히려 조롱했다. 그래서 카사베츠는, 늘 고독한 문제감독이었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는 기복이 심했다. 데뷔작인 <그림자들>부터 그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흑백영화로 촬영한 <그림자들>은 이후 짐 자무시 감독 같은 미국 인디영화 연출자가 어떤 영화선배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짐작게 한다. 영화는 어느 세 남녀에 관한 영화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들은 재즈연주자 등으로 일하면서 주변부 인생을 사는 인물이다. 찰스 밍거스의 연주가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한편의 즉흥적인 재즈연주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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