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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 스타일의 역사>
2002-12-20

깐깐한 노학자의 열정적 강의

데이비드 보드웰의 <영화 스타일의 역사>는 1907년에 만든 어떤 영화 속의 한 장면부터 191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에 만든 영화들의 장면들을 잇따라 제시하면서 이것들이 우리에게 보여지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서로 어떤 차이가 있고 또 어디에서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바로 이 부분이 이 책에서 보드웰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영화가 보여주는 방식, 다시 말해 미장센, 프레이밍, 초점, 색상 조절, 편집과 사운드 등을 포함한 영화테크닉의 체계적이고 의미있는 이용(이것이 스타일에 대한 보드웰의 정의이다)에는 역사가 있으며 이 역사는 분석과 설명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드웰은 “스타일상의 연속성과 변화의 패턴들을 발견하고 설명하려는 시도” 즉 스타일의 역사기술이 인문학 분야의 영화연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당화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들(스타일의 역사가들)은 영화를 매력있게 만드는 특질들에 주목하도록 우리에게 가르쳐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의 역사를 창조적인 인간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 스타일의 역사>를 접할 사람들이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영화 스타일의 역사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추적해가는 식의 역사(연구)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따진다면 <영화 스타일사론>(On the History of Film Style)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영화 스타일의 역사에 대한 보드웰 식의 이론적 논의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역사쓰기를 감행하는 책이 아니라 역사기술(historiography)을 문제삼는 이론서이다. 이같은 기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드웰은 그가 ‘기본사’(Basic Story)라고 부르는 영화역사에서의 한 가지 중요한 내러티브에 대해 먼저 논의한다. 기본사라고 하는 이 내러티브는 영화라는 매체가 탄생-성숙-쇠퇴의 내러티브 경로를 밟아왔다고 이야기한다. 예컨대 영화가 몇몇 거장들에 의한 스타일의 혁신을 통해 단지 현실을 기록하는 매체의 위치를 벗어나 ‘예술’의 지위를 얻었다가 사운드의 도래와 함께 그것의 예술적 가능성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기본사의 전형적인 내러티브 전개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내러티브를 끌고 가는 스타일의 역사가 갖는 장단점을 검토한 뒤 보드웰은 영화 스타일에 대한 역사기술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비평가들과 학파에 대한 논의로 넘어간다. 여기서 그가 논의하는 대상으로는 리얼리즘의 원리에 입각해 영화언어의 진화를 이야기한 앙드레 바쟁, 주류 상업영화의 형식적 실천들을 비판하고 모더니즘의 급진적인 영화형식을 옹호한 노엘 버치, 그리고 수정주의적 역사기술의 프로젝트와 문화이론 같은 최근의 이론이 포함되어 있다. 보드웰은 이른바 ‘문제-해결 모델’이라는 방법론을 자신의 것으로 채택하면서 이들에 대한 논의를 개진해간다. 보드웰의 이 모델이란 영화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맞닥뜨리는 스타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기본적 전제를 갖는 것으로 이에 따르면 영화 스타일의 역사란 간단히 말해 영화감독들이 제작과정에서 취한 테크닉의 선택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보드웰의 책들은 읽는 이들을 질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영화들을 보고 꼼꼼히 분석하는 열정이라든가 방대한 자료를 인용해서 얻어진 정보들 같은 것은 감탄이 나올 만하다. 그 점에서는 <영화 스타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보드웰의 다른 저서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어떤 공허함도 여전히 남겨준다. 그의 이른바 ‘신형식주의적’ 가정들에 기본적으로 불만을 품은 사람이라면 이 노학자의 열정이 담긴 책에서도 독서의 절정감을 느끼기가 힘들다.(데이비드 보드웰 지음/ 김숙·안현신·최경주 옮김/ 한울 펴냄/ 1만8천원) 홍성남/ 영화평론가 antihong@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