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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프랜차이즈 007 시리즈의 정치학 <1>
2002-12-21

본드, 제임스 본드 ˝나의 냉전은 평화보다 아름답다˝

<어나더데이>의 개봉을 앞두고 국내 관객과 네티즌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이 영화가 본드의 적을 북한으로 잡고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들렸지만, 한달 전 미국에서 개봉한 뒤 들려온 영화의 모습은 우려에 불을 댕겼다. 북한군은 잔혹하고 악당인 고위층 자제와 장교가 광적인 데다 휴전선에 전쟁이 터졌는데 남쪽 군인이 한명도 한 보인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틀리게 나타난다는 말도 전해졌다. 부시 집권 이후 미국과 북한의 긴장이 날로 높아가고 있는 시점에 나온 탓에 이 영화의 묘사들이 예사롭게만 읽히지가 않는다. 마침 미군 탱크에 의한 여고생 사망사건으로 소파 개정 시위가 물밀듯 일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네티즌들은 ‘007 안 보기 운동’을 시작했고, 영화가 개봉하는 12월30일에는 더 강도높은 반대운동도 예상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007 시리즈가 시작된 지 40년 되는 해에 나온 20번째 영화다. 62년 10월 개봉한 <닥터 노>는 ‘인종적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짐승 같은 영화’라는 좌파진영의, “폭력과 천박함, 사디즘과 섹스의 위험한 결합”이라는 바티칸의 비난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그러나 우연히도 같은 해 비틀스의 첫 싱글앨범 <러브 미 두>의 발매일에 첫선을 보인 이 영화는 개인도덕과 성의 자유라는 당시의 기운과 맞물려 60년대 팝 문화의 일부로 자리했다. 전쟁을 딛고 막 시작된 소비시대에 이국에 대한 동경까지 낚아채면서 속편들이 흥행을 거듭했다. 중간에 잇단 흥행부진으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40년 동안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봤다고들 말하는 이 세계 최장수 프랜차이즈 무비의 역사에는 그 시대의 대중문화를 읽어낼 많은 자료들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마침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진행된 시사 및 제작진 인터뷰를 계기로, 영화가 한반도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봄과 아울러 제작진에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이유를 캐물었다. 그 기사와 함께 이 시리즈가 급변해온 40년 동안 어떤 정치학을 어떻게 행사했는지를 살펴보고, 007 영화의 소사를 덧붙인다. 편집자

40 년은 영화역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세월이다. 007 시리즈 1편 <닥터 노>가 개봉된 62년부터 지금까지 수없는 시리즈물들이 명멸했다. 웨스턴 등 일부 장르는 사라지다시피 했고, 나머지 장르들은 모두 변화 내지 수정의 과정을 겪었다. 유독 007 시리즈는 그 오랜 기간을 살아남아 스스로 하나의 장르라고 주장할 정도에 이르렀다. 내러티브 구조도 40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본드가 M으로부터 미션을 부여받고, 악당과 연결시켜주는 낯선 여자가 나타나고, 그 전후에 악당쪽으로부터 몇 차례의 공격이 있고, 본드가 여자와 함께 악당에게 잡히고, 본드는 탈출해서 악당을 쳐부수고, 여자와 함께 누워 엔딩을 맞고…. 움베르토 에코의 말마따나 “(007의) 독자(혹은 관객)들은 각 부분과 그 부분을 결합시키는 법칙, 그 결과까지도 뻔히 알고 있는 게임에 흠뻑 빠져 별다른 진통없이 승리자가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즐거움을 맛본다”.

그 40년 사이에 국제정세도 급변했다. 냉전에서 데탕트, 다시 80년대 초의 미-소 대결국면에 이어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007은 정세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제스파이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그 변화를 다 버텨왔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세계 주류 이데올로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지키는 영국 스파이

영국 정보부 M16의 요원인 제임스 본드는 이튼스쿨,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인 순종이다. 소설과 영화에서 그는 공산주의 소련으로부터, 세계 정복의 야심에 가득 찬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서방 자본주의 국가를 보호한다. 여기에는 영국이 세계를 지킨다는 ‘판 브리태니카’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그러나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통해 제임스 본드가 탄생해 활동한 건 53년 <카지노 로얄>부터 65년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까지이다. 이 시기는 ‘대영제국’의 신화가 처참하게 무너져가던 때였다. 56년 이집트가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하자, 수에즈운하를 공격했다가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이듬해 이든 총리가 사퇴하는 수모를 겪었다.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가 미국에 맞서 지금 EC의 전신인 EEC(유럽공동시장)를 결성할 때, 미국과 유대를 지키며 따로 놀다가 뒤늦게 낸 EEC 가입신청이 63년 프랑스의 비토로 딱지를 맞는 망신도 당했다.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제임스 채프먼은 “제임스 본드 소설의 이데올로기적 목적은 ‘판 브리태니카’ 질서가 아직도 작용한다는 환상을 (영국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제임스 본드가 등장하는 영상물은 미국이 만들었다. 54년에 방영된 TV물 <카지노 로얄>에서 주역인 제임스 본드는 미국인이고 CIA 소속이었다. 원작에서 어디까지나 조역이었던 CIA 요원 레이터는 영국 요원으로 바뀌었다. 실제 미국과 영국의 역관계를 보면 이런 설정이 더 적합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은 더이상 영국인의 자존심을 밟는 일을 하지 않았다.

62년부터 시작된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작자는 뉴욕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이십세기 폭스사에서 영화를 배웠던 알버트 브로콜리이다(그의 이탈리아 조상들은 이탈리안 레이브라는 야채에 양배추를 교배해 브로콜리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는 제임스 본드의 영국 국적과 영국 신사의 귀족적 매너를 그대로 살렸다. 또 상당수의 경우 본드의 적이, 소련 등 특정국가가 아니라 무국적의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설정됐다. 대서방 외교에서 영국의 입장은 미국과 거의 같았지만, 그걸 주도한 건 아무래도 미국이었다. 적이 현실정치에서 멀어질수록, 이 전선의 첨단에 영국 첩보원을 세운 데서 오는 아이러니를 덮어두기가 쉬운 건 당연했다.

그래도 ‘힘의 미국’을 내세운 레이선 시대를 넘어가긴 힘들었다. 영국 기동부대가 포클랜드에서 아르헨티나군과 전쟁을 치르던 80년대 초반, 제임스 본드는 3차대전을 일으키려는 소련군 간부, 아프간 공산주의자 일행과 싸웠다(<옥토퍼시>, 1983). 소련이 해체된 뒤 95년 <골든 아이>에서 여자(주디 덴치)로 교체된, 본드의 상관 M은 코냑을 즐겼던 전임자와 달리 미국 테네시주의 옥수수로 만든 버번 위스키 ‘잭 다니엘’을 본드에게 권한다. “난 버번을 좋아해”라는 M의 말이, “우리가 사실상 미국을 위해 일한다는 건 이제 관객도 알지 않겠냐”는 식의, 자조적 유모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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