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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설경구,종두-강철중-재필-김의 가상대화 [1]

˝근데요,설경구 그 놈 내년에는 북파공작원이 된다는대요˝

올해 들어 그를 목격한 것은 1월과 3월, 8월, 그리고 11월 총 네 차례였다. 신출귀몰하기로 신창원 뺨친다는 날렵함은 불행히도 가지고 있지 않으나, 반짝이는 미모로 여성들을 홀리는 재주 역시 안타깝게 소지하고 있지 않으나, 특유의 우직함과 무데뽀정신으로 무장한 이 설경구란 작자는 올해 단 4번의 출현만으로도 충무로 건설업계를 싸그리 뒤집었다. 대학로의 전설을 뒤로 하고 꽃잎박람회와 말많은 처녀들의 디너파티를 어슬렁거린다 했더니 마침내 박하사탕공장의 기차화통과 맞장떴다는 소문도 낭자하던 설경구를, 그후 짧은 시간에 이 바닥을 접수해버린 설경구를, 건전인력유통을 위한 종합주간지 <쎄네21>에서는 ‘2002년 가장 힘센 노가다 일꾼’으로 꼽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워낙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타입에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놓지 않는 설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결국 이 UFO 같은 존재가 ‘공공의 안전’을 해칠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팽배해졌고, 올해 초 ‘에미 애비 모르는’ 천하의 파렴치한을 살인죄에 마약소지죄까지 씌워서 철창신세지게 만든 ‘공공의 적 말살자’,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 형사가 이 조사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그는 설경구의 신상파악을 위해 주변인물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물론 이상한 자의 주변엔 더욱 이상한 자들이 운집해 있게 마련. 탈옥을 밥먹듯이 하다가 지난 11월 ‘부산영화제특사’로 풀려난 사기꾼 ‘재필’과 강간미수에 뺑소니로 별 여럿 달렸다가 ‘공주마마’를 만난 이후 개과천선한 철가방 ‘종두’가 먼저 거론되었다. 그중엔 지방대 영화과 교수 ‘김’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벽에 애인을 여관방에 놔두고 도망치다가 잡혀들어온 이 양반은 아침부터 마신 술로 이미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였다. 게다가 뜨끈한 경찰서로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벌러덩 누워 코까지 골며 자는 것이 아닌가. 강철중은 기가 막혔다. 당장 멱살이라도 잡아 의자에 앉히고 싶었지만 ‘민중의 지팡이’를 아무 데서나 휘두를 수는 없는 노릇. 괜스레 애꿎은 하늘에 대고 욕을 뱉어본다.

철중 | 아이씨, 마른하늘에 왜 눈은 오고 지랄이야…니미…. (재필을 보며) 이름.

재필 | 예 재, 재피리요.

철중 | 직업.

재필 | 신용관리사….

(철중, 재필의 가슴을 발로 찬다. 의자에 실려 사무실 끝까지 밀려갔다 다시 돌아오는 재필)

철중 | 직업!

재필 | (고개를 숙이며) 사, 사기꾼요.

철중 | (징그럽게 실실 웃으며) 대통령선거도 끝나고 이 형아가 좀 쉬어야 되는데 업무가 많다. 씨발 경찰이 그렇잖냐 안 그냐 이 사기꾼 새끼야. 설경구란 놈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봐.

재필 | 아이, 왜 이러시나, 나도 힘들게 산 놈인데 살살 합시다.

철중 | (얼굴 굳는다) 경찰이 된 지 올해로 십이년째. 그때나 지금이나 경찰은 똑같다. 여전히 박봉이고 여전히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차에서 자고, 골목을 달려, 거리에서 뒤엉켜 싸운다. 이런 씨발, 십이년 동안 날마다 흉터만 늘었다. 나라와 겨레에 충성하고,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에 봉사하고…. 이것이 죽거나 병신이 되지 않는 한 경찰이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다. 나 경찰이다.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 조용히 말할 때… 불어.

재필 | (쫄았다) 저… 옛날에 나 감방 살 때요, 좆나 단순해서 무슨 숟가락이 삽인 줄 알고 6년 동안 판 무석이란 새끼가 이야기해준 건데요. 설경구란 놈은 살을 붙였다 뗐다 하는 신비한 재능이 있다던데요.

철중 | 개새꺄! 무슨 살이 속눈썹이니 붙였다 뗐다 하게

재필 | 아, 이사람 속고만 살았나. 올해 초에 목격한 바에 의하면 뱃살 출렁출렁 투툼하고 목살이 두세겹으로 접힌 상태였다는데 여름에 봤을 때는 피골이 상접해서 몰골도 그런 몰골이 없었다더라구. 그런데 1달 전에 마지막으로 봤을 땐 다시 정상인이라던데. 항간엔 그놈이 일 시작하기 전에 살견적부터 뽑는다는 소문이 돕디다.

결국, 감독을 따라가야 한다

종두 |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실실 웃으며 끼어든다) 그런데 아저씨, 저는 언제까지 이러구 앉아 있어야 돼요 나, 우리 공주마마 밥해주러 가야 되는데….

철중 | 미안하다. 의자가 없다.

종두 | 아이∼ (여전히 웃으며) 씨발이네.

철중 | 욕을 하면 알아듣게 해야 되는 거거든. 못 알아들으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빠지는 거거든. 응 너 나 모르지 나 성질 좆 같은 놈이야. 난 나한테 시비거는 새끼 경찰서 안 데려가.

종두 | 그럼 어떻게 하는데… 요.

철중 | (종두의 눈을 노려보며) 죽여. 주먹질하는 새끼, 주먹으로 죽여. 연장질 하는 새끼, 연장으로 죽여. 가끔 너처럼 좆도 모르는 게 주둥이만 산 새끼. 왁! 주둥이로 죽여. 그러니까 너도 설경구란 새끼에 대해 소상히, 상세히, 아는 대로, 다불어 새꺄.

종두 | 그…그 설경구란 아저씨가요. 늘 그런 말을 했거들랑요. 작업감독 스타일이 있지, 노가다꾼이 뭔 스타일이 있냐

철중 | 그게 뭔 말이냐.

종두 | 물론 작업에 있어 노가다꾼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엔 감독을 따라가야 한다는 거죠. 자기는 감독만 믿고 간다고, 설령 감독이 틀렸다고 해도 선택한 이상 믿어야 한다고, 안 그럴 거면 아예 시작도 말아야 한다는 그런 말이걸랑요.

철중 | 그래 (흠…그게 전법인가) 그렇다면 작업감독들 중에 그 새끼를 배후조종하는 놈이 있겠군. 그놈이 같이 일한 작업감독들에 대해 까봐. 야! 야! 새꺄, 재필이! 너 조냐 어디라고 조냐 너 졸라고 비싼 세금받아 처먹으면서 난로에 기름 때는 거 아니거든. 응

재필 | (입에 침 딱으며) 아이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눈치보다) 최근부터 말할깝쇼

철중 | (중얼거리듯) 니미… 제발 니 꼴리는 대로 하세요.

재필 | 최근 광복절기념탑 건립현장에서 일했던 김상진 감독은, 흠 흠, 이 노가다 십장은 좀 젊은데 일 수완이 좋거든요. 생긴 것 같지 않게 화도 잘 안 내고 현장분위기가 좋아서 워낙 편했대요. 준비 안 한 놈은 조져야 되지만, 할 때까지 해서 안 되는 거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라 분위기 좋을 수밖에. 설경구하고는 학교 동창이라 너나들이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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