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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충무로를 뒤흔든 사건 베스트 10 [1]
2002-12-27

십대사건 일렬횡대

1. 쌍두마차(雙頭馬車)

<취화선>의 제55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이 확정되자 국내 영화계는 크게 술렁였다. 특히 공식시사 일정이 폐막식 하루 전날인 5월25일로, 경쟁부문 출품작 중 맨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수상을 점치는 이들은 크게 늘었다. 결국, 임권택 감독은 “매혹적인 추상의 경지로 인도하는 정확한 연출의 소유자”라는 현지 호평과 함께 감독상을 거머쥐며, <춘향뎐>으로 경쟁부문 대열에 서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2년 전의 아쉬움을 씻었다. 칸의 낭보에 이어 제59회 베니스영화제에서는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로 감독상과 신인여우상 등 2개 공식부문 상 외에도 국제비평가협회상과 세계가톨릭언론연맹상 등을 휩쓸어 4관왕에 올라 영화인들을 흐뭇하게 했다.

>> 할리우드의 잇따른 ‘러브콜’도 달라진 한국영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현상. 지난해 미라맥스가 <조폭 마누라>의 리메이크 판권을 ‘찜’한 데 이어 올해에도 <엽기적인 그녀>(드림웍스), <달마야 놀자>(MGM), <시월애> <가문의 영광>(이상 워너 브러더스) 등 국내 흥행작들이 줄줄이 할리우드와 리메이크 계약을 맺었다.

2. 대마즉사(大馬卽死)

제작기간 3년, 순제작비 93억원(마케팅비 포함 110억원). ‘크기’로 압도하겠다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의 전략은, 그러나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9월13일 개봉해서 2주 동안 상영되는 동안 전국 관객 15만명(서울 관객 7만700명)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성소>의 참패는 비단 투자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를 압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충무로에 몰려들었던 전체 투자자본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일각에서는 순제작비 50억원 이상을 들였으나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던 상반기의 <예스터데이>(서울 관객 12만5천명)와 <아 유 레디>(서울 관객 1만5800명)와 함께 한국영화의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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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원을 수재의연금으로 내지 그랬느냐는 말까지 들었다.” <성소>의 몰락에 대해 장선우 감독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후 튜브엔터테인먼트는 자금 압박으로 인한 해체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선우-튜브의 관계는 여전히 ‘맑음’. 투자작인 <귀여워>에 주연배우로 캐스팅하는가 하면, 차기 연출작에 대한 투자까지 약속한 상태다.

3. 난세영웅(亂世英雄)

<가문의 영광>이 아니었다면, 조폭코미디는 반짝 유행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네발가락> <패밀리> <뚫어야 산다> 등 올해 출사표를 던진 조폭코미디는 “갈 데까지 갔다”는 혹평에다 관객의 외면까지 겹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보스상륙작전>이 서울에서 30여만명의 관객을 끌었지만,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등 지난해 밀리언 편대의 승승장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하나, <가문의 영광>은 남달랐다. 엘리트 사위를 얻기 위해 애쓰는 전라도 출신 조폭들의 고군분투라는 신선한 줄거리에 김정은, 정준호, 유동근 등의 배우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이 영화는 추석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며 올해 최고의 강자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어떤 이는 ‘자식을 통한 무의식적 신분상승 욕구를 노골적으로 건드린’ 덕에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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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영광>이 소재 고갈로 모라토리엄에 허덕이던 조폭코미디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은 분명하다. 조폭코미디의 끊임없는 변주는 계속될 듯. 특정 장르 편식이라는 걱정보다는 완성도 갖춘 상업영화에 대한 독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4. 상상초월(想像超越)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집으로…>의 흥행은 기적에 가까웠다. 대형스타는커녕 비전문 할머니를 등용한 순제작비 15억원의 이 작은 영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서울 시내 중심가의 한 멀티플렉스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하는 등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이 영화는 개봉 첫주에만 전국에서 35만명을 불러모았다. 개봉 2주째 만에 전국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평균 85%라는 좌석점유율을 유지한 <집으로…>는, 결국 극장 비수기에 전국 관객 400만명의 심금을 울리며 상반기 흥행 수위를 차지했다. 스타 캐스팅을 고집해온 투자자나 이로 인해 파이낸싱에 어려움을 겪었던 제작자들에게 <집으로…>의 사례는 용기를 던져준 일대 사건이었다. 일본과 중국에 이어 할리우드 파라마운트와 판권 계약을 맺은 <집으로…>는 11월15일 미국에서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50위권을 유지하며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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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의 성공 이후 씨네2000 이춘연 대표는 한동안 충무로 호사가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애초 이정향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간 제작사가 씨네2000이었기 때문.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는 그에게 호사가들은 눈앞에서 먹이를 놓친 격 아니냐며 빈정거렸으니 그의 속이 새까맣게 탈 만도 하다.

5. 도처극장(到處劇場)

스크린 수 1천개가 눈앞의 현실이 됐다.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멀티플렉스 건설 붐이 폭발적인 스크린 수 증가의 원인. CGV-메가박스-롯데시네마 등 3개 주요 업체들간의 불꽃튀는 경쟁도 열풍을 부채질했다. 선두업체인 CGV는 한해 동안 구로, 목동점을 오픈해서 17개관을 늘렸고, 현재까지 92개 스크린을 보유한 상황. 내년 초 개관할 수원점까지 합하면 업체들 중 가장 먼저 스크린 수 100개를 채우게 된다. 부산 해운대와 대구에 10개관 규모의 멀티플렉스를 세운 메가박스도 8월에 미국 LCE(Loews Cineplex Entertainment Corp.)로부터 21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고, 부산 해운대와 대구에 20개 스크린을 열었다. 또한 메가라인이라는 브랜드로 중소 도시에도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백화점 유통망을 활용해 이른 시간에 53개 스크린을 확보한 롯데시네마도 내년에만 대구, 안산, 일산, 전주, 영등포 등 5개 극장을 추가로 오픈해서 140개의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자체 계획을 갖고 있다. 시네마서비스가 프리머스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극장사업에 뛰어든 만큼 사이트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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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까지 국내 스크린 수는 현재보다 700여개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0여개 이상의 전국 체인망을 목표하고 있는 주요 업체들 이외에도 극장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개인 사업자들은 계속 몰려들 것이기 때문. 그러나 아직 스크린 포화에 대한 우려는 적은 편이다. 업계에선 스크린 수의 증가가 잠재 관객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6. 성기음란(性器淫亂)

“성기가 나오니 포르노그라피다!” 법적 근거없이 자체 규정만을 내세운 등급위원들의 고압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7월23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영화등급분류소위원회를 열어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했다. 제한상영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상영불가 결정. 이들은 극중 구강성교 장면에서 성기가 노출됐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와 관련, 영화인회의, 문화개혁시민단체 등의 단체들은 등급위가 기계적인 심의 잣대만을 내세워 창작자의 표현의 자유와 수용자의 볼권리를 침해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8월28일, 제작사인 메이필름은 재심을 신청했으나 등급위는 또다시 <죽어도 좋아>에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조영각, 임정희, 박상우 등 등급위원 3인이 등급위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며 사퇴함으로써 개별 영화의 등급분류와 관련해서 시작된 논란은 결국 등급위의 개혁성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로 확대됐다. 한편, <죽어도 좋아>는 등급위가 문제삼은 장면을 색보정해서 어둡게 처리한 뒤 현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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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7일 등급위 2기 위원장으로 다시 뽑힌 뒤 김수용 감독은 “성기노출 여부를 판단근거로 삼지 않겠다”고 했지만, 한달여 뒤 <죽어도 좋아>와 관련해선 “이런 영화가 상영되면… 앞으로 큰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다. 특히 재심을 앞두고서 여러 매체들을 통해 <죽어도 좋아>는 포르노그라피일뿐더러 감독의 연출력 또한 형편없다는 발언을 해 이후 200여명의 문화예술인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는 등 진땀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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